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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느낌 ... 퍼레이드 / 요시다 슈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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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 요시다 슈이치 / 권남희 역 / 은행나무


변화가 없으면 원래의 그 지루한 시간이 다시 찾아온다.

요즘들어 신야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가능성을 감추고 있었는지, 그가 어떤 식으로 살았고 어떤 식으로 죽었는지, 그가 버스 안에서 내게 무슨 말을 해주었는지, 그런 것들을 누군가와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지금 내게는 그런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없다. ...... 어쩌면 이 집의 공동생활은 그런 것들을 끌어들이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지도 모른다.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이야기해도 괜찮은 것만 이야기하기 때문에 이렇게 순조롭게 살아갈 수 있는지도.

요스케는 왠지 히라가나의 '후(ふ)'라는 글자와 잘 어울렸다. 특별히 축 처진 어깨도 아니고 얼굴에 '후'라고 쓰여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도 요스케를 보고 있으면 이유도 없이 '후'라는 글자가 떠오른다.

그런데 갑자기 스피커가 고장나 조명이 환하게 켜진 댄스플로어에서 "네게는 괴로움은 없다. 그러나 진정한 기쁨 또한 없다"라는 악마인지 천사의 것인지 모를 목소리가 나의 내면에 울려 퍼졌다.

도쿄에 가서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인생에서 내게 유일하게 괴로움이란 걸 알게 해준 마루야마 도모히코와의 사랑을 다시 찾고 싶었다.

사장 아들에게 머리를 굽실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은 아니라고. 세상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 실은 당연하지 않은 일이 너무나 많다고.

다음날 아침 요스케의 말을 들어보니 그것은 나오키의 꿈에 나오는 조그만 요정 이야기라고 했다. 요스케는 그 요정을 불러내는 주문까지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처음부터 착한 얼굴을 하는 사람을 난 어릴 때부터 신용하지 않아.

고토는 어릴 적부터 누구에게나 예쁘고 귀엽다는 칭찬을 들으며 자랐고, 학교에서는 남학생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고토에게는 확실히 그런 인생을 살아온 여자만이 가질 수 있는 낙천성이 있다.

익명이라는 악마...... 세상 사람들은 대체로 익명을 부여받음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만약 내가 익명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면 나는 절대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과장에 과장을 덧붙인 위선적인 자신을 연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살고 있는 나는 틀림없이 내가 만든 '이 집 전용의 나'이다. '이 집 전용의 나'는 심각한 것은 접수하지 않는다. 따라서 실제의 나는 이 집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에 함께 사는 요스케, 고토, 나오키, 사토루가 나처럼 '이 집 전용의 자신'을 만들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도 실제로는 이 집에 존재하지 않고, 결국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만약 이곳이 '무인의 집'이라면 아무 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굳이 '이 집 전용의 나' 따위를 만들어낼 필요도 없고, 나는 나로서 당당하게 거리낌없이 지낼 수 있다. ......아니, 그렇지않다. 당당하고 거리낌없이 살 수 있는 이유는 여기가 무인의 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이 무인의 집이 되기 위해서는 여기에 '이 집 전용의 우리'가 존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 집 전용의 우리'가 존재해야 한다. ...... 실제로는 꽉 찬 만실(滿室)이면서도 텅 빈 공실(空室). 그러나 비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꽉 찬 상태.

문턱 낮은 천국에 입장할 때 제출하는 신청서 성별란에는 '남'과 '여' 뿐만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쓰인 난도 있다.

"해도 상관없지만 어차피 전부 꾸며낸 얘길 텐데요"하며 웃었다. 나는 순간 '지금부터 거짓말을 하겠습니다' 하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웃지마! 난 말이야 ...... 누군가 나에게 의지할 때 ...... 진심으로 나에게 의자하려는 누군가가 있을 때 사람들은 그걸 눈치채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아니 의식은 하겠지만, 그 사람이 얼마나 진지하고 절실하게 기대고 싶어하는지는 알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모두가 알고 있는 사토루는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야. 그런 사토루는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어.

나 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녀의 눈에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는 오늘밤 내 모습을 사랑니를 뺀 탓으로 간단히 정리하고 싶지 않은 아주 모호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이 모호한 거리감이 어렵다. 우린 버럭 화를 낼 수 있을 만큼 가깝지도 않고, 눈앞에서만 짐짓 걱정해주는 척하며 끝낼 만큼 멀지도 않은 사이였다.

오늘밤 고토의 일만 해도 그렇지만, 누가 상담을 요청해도 나는 진심으로 걱정을 해준 일이 없다. 그런데 그런 무심한 듯한 모습이 다분히 삐뚤어진 구석이 있는 그들에게는 일종의 이해심으로 느껴지는지, 본의 아니게 나의 주가만 올라갔다. 상대에게 동정심을 표시하지 않는 것으로, 어느 틈엔가 나는 그들의 좋은 큰형님역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이런 제멋대로인 배려에조차 만족하는 그들은 대체 세상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방을 밖에서 바라보는 느낌은 참으로 기묘했다. 그곳에 아무도 없어서가 아니라 그 속에서 우리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기묘했다.

내가 저지른 행위 따위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간섭받지 않는 자신에게 너무 익숙해져 버릴 것 같아 "야!"하고 거칠게 사토루의 어깨를 잡아챘다.

나 따위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했다. 그때였다. 이 녀석들, 정말 알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피부에 와닿았다. 정말로 알고 있었구나, 하고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소파에 앉은 요스케가, 사이좋게 나란히 앉은 고토와 사토루가, 텔레비전 앞에 서 있는 미라이가, 나를 무시하고 웃고 있다. 아직 심판도 용서도 받지 못한 나는 그대로 입구에 세워져 있다. 마치 그들이 나 대신 이미 후회하고 반성하고 사죄한 것처럼. 네게는 아무것도 줄 수 없어. 네게는 변명도 참회도 사죄할 권리도 주지 않을 거야. 왠지 모르게 나 혼자만 이들 모두로부터 몹시 미움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묘한 느낌의 책.
동경만경 은 좀 별루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읽는 내내 이 책을 영화로 만들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님이 주신 책 ...... 땡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