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개정판) / 박상훈 / 폴리테이아
1강 정치는 중요하다 (정치는 왜 중요한가...)
누가 정치를 부정하는가? 누가 가난한 사람들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가?
선관위가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처럼 단순히 선거와 관련된 사무만 본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 국가기구 가운데 예산과 인원이 가장 많이 늘어난 대표적인 조직이 선관위다. 조직만 커진 게 아니라 권한도 막강해졌다. 그동안 정치와 관련된 제도가 이렇게 저렇게 바뀌는 데 가장 핵심적인 구실을 해왔다. ... 정치 활동에 대한 과도한 규제와 대중 참여를 불온시한 것의 결과는 투표율의 급락으로 나타났다. ... 투표율의 이런 계층 편향적인 결과만큼 한국 민주주의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 선거 자금을 모으는 데 있어서, 불법의 한계를 최대로 확장해 넣은 정치자금법도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무엇보다도 돈 없는 후보들의 출마를 배제하는 효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정치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다만 정책의 우선순위와 방향을 약간만 바꾸더라도 부조리한 현실을 개선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 그것이 정치로부터의 온정적 시혜가 아니라 민주정치가 책임성을 발휘해야 할 과업이자 시민의 정당한 권리로 인정된다면, 더 나은 사회를 향한 공동체적 토대는 좀 더 튼튼해질 것이다. ... 정치가 중요하다는 것은 정치가 모든 것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상황 내지 인간이 만든 사회문제를 개선하는 데 있어서 매우 유력한 수단이자 방법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이 집권할 수 있을 때, 사회적 약자 집단도 무시당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온정에 의존하지 않는 주체적 시민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도 커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체제가 민주주의라면, 그 과업은 자기희생적 운동을 통해서가 아닌, 정치가 좋아지는 것을 통해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 ... 어떻게 하면 선거가 다수 시민의 열정을 집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좋은 후보와 좋은 정당을 만들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선거에 참여하고 당원이 되고 정당이 주도하는 다양한 직능 모임에 참여해 압력도 행사하고, 지지자가 되고 후원금도 내고, 선거운동원이 되어 몸으로 뛰기도 하는, 그런 열정을 갖게 할 수 있을까
좀 더 평등하고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평화로운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
2강 정치는 누가 어떻게 하는가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의 특징, 정치를 하는 사람이 감당해야할 윤리적 문제와 자질...)
정치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지향하면서도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강제력이라는 요소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다.
선한 목적과 도덕적으로 의심될 만한 수단을 결합해야 하는 정치의 운명을 기꺼이 감수하고자 하는 담대한 인물, 그러면서 목적과 수단의 불편한 조합을 통해 유익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유능한 인물만이 윤리적 기준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정치의 현실을 이끌 수 있다는 것, 베버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한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당에서도 결국 지도자가 중요하다. "지도자와 그 추종자는 모든 정당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기본 요소"이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이성에 대한 자각을 통해 인격적인 깊이를 갖는 정치가로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3강 정치의 기술, 실천의 기술 (어떤 정치적 실현을 해야하는가... 정치의 방법들...)
미국의 빈민 지역 운동을 이끌었던 사울 알린스키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유권자를 동료 시민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만이 민주주의의 가치에 상응하는 정치가가 될 수 있다.
"변화의 정치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전제 조건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세상을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 그것의 법칙대로 일해야 한다." (알린스키) ...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받아들이면 ... 변화와 개혁의 의지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고 바로 그 부분에서 한 개인이 갖는 내면의 강함을 더 깊어진다는 것이다.
"갈등은 자유롭고 개방된 사회의 본질적인 핵심이다."
"권력의 부패는 권력 자체에 있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 있다. ... 권력을 알고 이해하며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것은 권력을 건설적으로 이용하면서 통제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는 끊이지 않는 갈등 그 자체이며 갈등은 간헐적으로 타협에 의해서만 멈추게 된다." (알린스키)
정치가는 스스로 자긍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자 신뢰"이다. ... 정치가가 할 일은,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 그래서 사람들이 알고 싶고 참여하고 싶게 이끄는 '다리 놓기'를 하는 것이지, 대중의 무관심과 무지를 탓하며 스스로 민주적 가치를 버리는 데 있지 않다.
분노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실천적 에너지로 전환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 설령 옳은 일이라 해도 모든 것이 다 따져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의 구조가 스스로 드러나길 기다렸다가 적절한 시점에 관여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때가 많다. ... 말의 내용은 단단하고 행위의 결단은 견고하더라도 그 말의 방법은 부드러워서, 차이를 갖는 여러 사람들이 머물 심리적 공간을 넓히고, 그러면서 함께 일을 만들어 가는 즐거움과 행복함의 경험을 쌓아 가야 한다.
"... 이 사람들은 나의 일부다. 내가 사랑하는 미국의 일부이기도 하다. ... 우리가 알고 있고, 우리가 눈으로 확인하듯 미국은 변할 수 있다. ...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 (오바마 2008년 대선레이스 중 필라델피아에서 했던 인종 문제 연설)
4강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것들 (민주주의 초기 과정에서 진보파들이 겪었던 정치적 경험... 현실적 실천 가능한 정치론)
민주주의 하에서 인간 공동체의 통합과 연대를 책임지는 것은 정치의 역할이다. 체제 전체를 이끌어 가는 것은 공익을 위해 여러 정당들이 경합하는 정치의 영역이 감당해야 할 역할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철학이다. ... 정치는 인간이 천사가 되지 않는 한 언제나 꼭 있어야 하는 불가피한 것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길은 정치를 선용하는 방법을 찾는 데 있지 정치 없는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대표되고 있지 못한 세력이 있다면, 그리고 그들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정당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 정당을 만들기 어렵다면 각자의 요구를 담은 선거 강령을 내걸고 투표 권력이라도 조직해야 한다.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면 시민 주권은 없다.
현대 정당에 대한 많은 연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리더십의 발전없이 정당 조직을 통합할 방법은 없다는 데 있다. 거대한 규모의 정치조직을 제도나 추상적인 규칙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현실이 아니다. ... 정치와 정당 역시 추상화된 원리나 가치에 맹목적으로 따라야 하는 생기 없는 무대가 아니라 인간들이 살아 움직이는 현실의 공간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 진보적 관점의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강력한 합의 가운데 하나는 "강한 정당의 부재는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축소하고 선거를 중간계급 위주의 것으로 만든다"라는 것이다. ... 그간 한국의 진보 정당은 보수정당과는 달리 '인치의 과잉'이 아니라, 사회적 기대와 대중적 열망을 응집시킬 수 있는 '인치의 부족', 즉 리더의 부재 때문에 더 많은 문제를 낳았다.
현실에서 정치란, 권력을 어떻게 선용할 것이가 하는 '적극성'의 문제와, 권력을 다투는 사람들에게 책임성을 어떻게 부과할 것인가 하는 '제한성'의 문제 사이에서 고통스럽게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있다. ... 정치가를 키우고 지키는 일의 중요성
5강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싸움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법, 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관점과 시각에 대한 비판)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이고, 대의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거가 영향력이 있는 정치과정으로 자리 잡는 것이며, 그때의 핵심은 좋은 정당을 만드는 문제에 있다.
현대 민주주의는 '시민의 직접 지배' 체제가 아니라 '시민의 동의에 의한 지배'체제다. ... 시민은 단순히 유권자이기만 해서는 안되며, 당원 내지 특정 정당의 적극적 지지자로도 활동해야 민주주의가 좋아진다.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갈등의 사회화' ... 민주주의에서 사회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전달하는 것은 정치의 기능이다. 그리고 현대 정치의 핵심 기구는 정당이다. 갈등이 공적 영역에서 정당에 의해 조직되면 갈등의 규모는 커지지만 갈등의 수는 줄어든다. 민주정치의 비결은 여기에 있다. ... 우리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정치를 부정하지만 정치 갈등의 격렬함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 정당을 통해 갈등의 수를 줄이되 갈등의 규모는 사회화해서, 가장 바람직한 공익이 무엇인지를 정당들이 서로 달리 대표하게 하고, 그렇게 형성된 두 개 내지 세 개 정도의 대안이 선거에서 경합하게 하는 것, 그것이 좋은 민주주의의 조건이라는 말이다.
시민이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정당 대안이 있는 정치체제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 하는 문제. 자신의 정당 대안을 갖는 시민만이 주권자로서 권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깨어나지 못한 시민이 아니라 이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정치 세력에 있다는 생각의 전환은 왜 어려운 것일까. 그런 전환을 억압하면서 시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알리바이 담론은 언제쯤 사라지게 될까.
과거나 지금이나 좋은 통치자를 뽑는 것이 정치의 중심 문제이지 시민이 직접 정치를 책임지게 하는 것은 아니다. ... 한국 정치에서 주기적 운동의 분출은 보수 독점적 정당 체제의 다른 얼굴이라는 사실이다. ... 운동은 자발적 항의의 표출이며 민주주의를 활력 있게 만들 수는 있지만, 정치체제의 운명을 결정할 국민적 위임과 같은 절차적 정당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 광장의 춧불 집회 그 자체에 민주주의의 상상력을 묶어 두려는 것, 대중을 선거와 정당, 의회와 같은 정치의 세계로부터 떼어 놓으려는 것, 그것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민주주의, 집권할 수 없는 민주주의, 정치라는 가능성의 세계를 버리고 갈 수 있는 민주주의가 있다고 고집하는 것은 실제로는 가장 강력한 보수적 정치관으로 기능하기 쉽다.
"민주주의 사회가 존속할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잠재된 갈등들에 대해 우선 순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간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사적 갈등에서는 강자들이 승리하는 반면 공적 영역에서는 약자들이 자기방어를 위해 세력을 규합한다는 것이다. ... 문제는 대중 권력의 한계를 감안하면서도 그것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정치체제를 조직하는 방법이다." (샤츠슈나이더)
6강 정치의 고전 강독 1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읽기 (정치의 본질에 대한 가감 없는 이야기들...)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분명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행해야 한다며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바를 등한시한다면, 그는 파멸로 이끌리게 될 것이다."
"강력한 국가를 가지고 있으면서 민중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군주는 어떤 공격에도 안전하다. ... 민중이 군주를 방어하기 위해 자신의 집과 재산이 약탈되었고, 그 결과 이제 군주가 자기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은 더욱더 군주를 중심으로 뭉치게 된다.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자신이 받은 은혜는 물론 자신이 베푼 은혜에 의해서도 유대가 강화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버이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받아야할 유산을 빼앗긴 일은 좀처럼 잊지 못하는 존재이다. ... 어떤 상황에서든 선한 행동만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그의 파멸은 불가피하다."
"비난은 받되 미움은 섞여 있지 않은, 인색하다는 평판을 듣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다."
"인간의 모든 행동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특히나 군주의 행동에 관하여 사람들은 결과에 주목한다. ... 그러므로 군주가 나라를 얻고 잘 유지하면 그 과정에서 사용된 수단은 명예롭고 칭송받을 만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반 대중은 외양과 사태의 결과에 의해 설득되기 때문이다."
"지혜를 갖고 있다면 다양한 위험을 평가하는 방법을 알게 되는데, 올바른 대안은 가장 해악이 작은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
결국 마키아벨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지도자가 정치의 본질을 깨닫고 담대하고 과감하게 운명을 개척해 간다면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 전환기의 대과업을 완수하고자 한다면 그리 하라. 자신의 선한 의도나 진정성만 앞세우지 말고 성과를 내라. 제대로 된 정치 세력을 조직하라. 집권하라. 개혁을 완수하라. 부디 그 일을 하라. 그게 제대로 된 군주, 즉 지도자다.
7강 정치의 고전 강독 2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 읽기 (정치가가 감당해야할 윤리적 딜레마)
"사람들이 그에게 복종하는 것은 전통이나 법규 때문이 아니라 그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이들은 (소명이라는) 그 말이 갖고 있는 가장 본래적 의미에서 '소명'을 가진 정치가들이다."
"정치를 자신의 직업으로 삼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그 하나는 정치를 '위해'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에 '의해' (혹은 정치에 의존해서) 사는 것이다. ... 정치를 '위해' 살고자 하는 자는 경제적으로 '속박되지 않아야' 한다. 달리 말하면 '여유가 있어야' 한다. ... 정치는 '명예직으로' 수행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정치는 흔히 말하듯 '남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즉 자산가나 특히 금리생활자에 의해 수행된다. 그러나 재산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정치적 지도층의 길을 열어 주고자 않다면 이들은 보수를 받아야 한다."
"정치 지도자, 즉 지도적 역할을 하는 정치가의 명예는 자신의 행위에 의해 전적으로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이 자기 책임을 거부할 수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할 수도 없으며 또 해서도 안된다." (막스 베버)
베버에 따르면, 카리스마적 지도자도 필요하고 유능한 머신도 필요한 것이 근대 민주정치인데, 여기에서 성공할 수 있는 핵심은 결국 제대로 된 정당에 있다.
"정치가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다음 세 가지 자질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열정, 책임감, 그리고 균형적 판단이 그것이다."
"권력을 향한 야심은 그가 일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이다. 흔히 '권력 본능'이라고 불리는 것은 사실 정치가에게는 정상적인 자질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런 권력 추구가, 전적으로 '대의'에 대한 헌신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성을 결여한 순전히 개인적인 자기도취를 목표로 하는 순간, (정치가라는) 그의 직업이 갖는 신성한 정신에 대한 죄악이 시작된다. 왜냐하면 정치 영역에서는 궁극적으로 두 종류의 치명적 죄악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객관성의 결여와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흔히 이것과 동일시되는) 책임성의 결여가 그것이다."
"정치가가 권력을 추구하고 또 권력을 활용해서 헌신하고자 하는 그 대의가 어떤 성격을 가져야 하는가는 신념의 문제이다. ... 어떤 종류의 것이든 항상 신념이 있어야 한다."
"그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폭력/강권력이라는 이 특수한 수단과 순을 잡는 자는 - 정치가라면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인데 - 누구든 그것이 가져오는 특수한 결과에 좌우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종류의 것이든 정치를 하겠다고 하는 사람, 특히 정치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런 윤리적 역살을 자각하고 있어야 하고, 또한 이 역설들의 중압에 압도되어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치가는 모든 폭력/강권력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분명 정치는 머리로 하는 것이지만, 결코 머리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막스 베버)
"정치란 열정과 균형적 판단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 뚫는 작업이다. 만약 이 세상에서 불가능한 것을 이루고자 몇 번이고 되풀이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마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하지 못했을 거라는 말은 전적으로 옳고 모든 역사적 경험에 의해 증명된 사실이다. 그러나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지도자이면서 또한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영웅일 수밖에 없다. 지도자나 영웅은 아니라 해도, 모든 희망이 깨져도 이겨 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의지를 갖추어야 한다. 지금에라도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오늘날 아직 남아 있는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해 내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확신을 가진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 (막스 베버)
8강 정치적으로 생각하고 글쓰기 (정치적으로 글을 쓰고 발언하는 문제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지켜지는 개인 삶이 튼튼할 때 민주주의가 사회 속에 뿌리내릴 수 있듯이, ... 돈이 진보 정치를 타락시킬까 두려워하고 그래서 그런 문제를 없애기 위해 저임금을 강요하는 것은 곤란하다. 돈은 인간의 경제행위를 사회적으로 조직하는 데 꼭 필요한 존재이다. 돈을 잘못 다뤄서 인간이 타락하는 것이지 돈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정치를 지배한 용어 하나를 꼽으라면 필자는 '진정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앞서도 여러 번 지적했듯이 '도덕의 언어'가 강조된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가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 생각하고 발언하고 책임성을 갖는 '정치의 언어'를 발전시키는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 진정성에 의존하는 정치는 문제가 있다. ... 진정성은 인간의 윤리적 삶을 이끄는 매우 중요한 내면적 가치가 아닐 수 없다. ... 그러나 그런 내면적 가치를 자신의 외양으로 삼을 때 혹은 자신이 옳기 위해 그런 윤리성을 동원해 타인의 행위를 제약할 때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 정치의 세계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권력 현상을 이해하고 그것의 긍정성을 선용하는 동시에 권력이 자의적이 되지 않도록 책임성을 부과하는 문제에 더 관심을 갖는 게 훨씬 좋은 일이라고 본다.
노동의 권리가 폭넓게 인정될수록 전체적으로 높은 수준의 산업 평화가 유지된다. ... 노동을 축소해야할 생산 비용으로 간주하고 참여로부터 배제하려고 할 때 그것은 단순히 노동만 배제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사회 전체를 배제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는다. ... 가끔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느냐'를 따져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민주주의가 밥 먹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정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경제적 분배 효과가 계층별로 달라질 때, 민주주의는 안정된다. ... 정치를 누가 하든 자신들의 삶이 달라질 게 없다고 한다면, 민주주의는 참여의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말이 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고 가는 주범은 다른 것이 아닌, 노동 배제적이고 하층 배제적인 사회 그리고 그 위에 서있는, 노동 없는 정치가 가난한 보통 사람들을 절망으로 이글고 있다는 데 있다 할 것이다.
어찌됐든 한국 정치에서 명실상부한 제1당은 무당파가 되었다. 누가, 왜 투표하지 않을까? 샤츠슈나이더는 ... 투표 불참자의 수는 결국 그들이 "기대하는 대안이 억압된 크기"를 말해준다고 보았다. ... 유권자에게 표를 요구하는 정치 세력들이 먼저 우리 사회가 해소해야 할 '역사적 긴장들' - 남북 관계와 평화 체제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압축적 경제성장의 부정적 효과를 개선하는 문제일 수도 있고, 급격히 심화되어 온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 에 대해 선택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을 충실히 해야 할 것이다. ... 지난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사명을 "목소리 없는 사람에게 목소리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 누가 목소리 없는 다수 유권자들에게 목소리를 갖게 할 수 있을까?
시민이 통치자를 선발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시민 주권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시민들은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누군가 통치자가 된다고 할 때 그 결과는 어떨까가 알려져야 한다.
여론조사는 유권자의 판단을 돕는 '소극적 지식'이어야지, 여론조사가 선거 과정을 압도하거나 지배하게 되면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한다. ... 정당과 후보의 정책과 능력, 자질을 신뢰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할 때 유권자는 시민 권력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민주주의에서 통치자에 대한 시민적 통제의 가장 이상적인 방식은 통치자 선발 과정이 곧 그런 효과를 갖게 하는 데 있다. ... 적극적인 정치 대안을 갖지 못하는 한, 궁극적으로 시민은 정치 계급들과 사회 기득 세력의 이익 추구에 휘둘리고 동원되는 무력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주기적 선거만으로 민주주의는 불충분하다. 좋은 정당 대안, 후보 대안이 있어야 한다. 노동을 포함해 사회의 중요한 집단 이익도 정치적으로 조직되고 대표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대표되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피터 마이어가 강조하듯, 민주주의의 발전은 보수적인 정당 간의 교체를 넘어 그 밖에 있는 진보적인 정당도 집권할 수 있을 정도가 될 때 완성된다. 그럴 때만이 민주주의는 잘못된 통치의 책임을 일상적으로 추궁하고 실질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전망을 갖게 된다.
9강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진보의 길 (전체 결론)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면서 자기 자신과 타인의 과거 경험으로부터 지혜를 얻고자 하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정치는 확실한 진리가 지배하는 곳이 아닌 불확실성이 존중되어야 하는 세계다. 틀릴 수 있다고 가정해야 하는 세계다. 틀릴 수 있다고 가정해야 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울 수 있어야 하며, 어제보다 더 나은 실천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하며, 그렇게 해서 나날이 진보할 수 있기를 희망해야 하는 곳이 정치다. 동시에 좋은 선택과 그렇지 않은 선택의 결과가 거의 재난에 가까운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곳도 정치다.
권력의 문제를 끌고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진보라면 사회운동이나 사회봉사 내지 종교적 헌신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권력의 기능과 역할이 선한 방향으로 발휘되어 성과를 내야 하고 그와 동시에 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되지 않도록 하는 데 고민이 있어야 하는데도, 자신은 권력적이지 않다는 것을 강변하거나 권력에 물들지 않고 낮은 곳에 임하는 '아름다운 진보' 만을 반복해서 말하는 것으로 자신의 도덕적 권세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한가한 습속은 자제되어야 한다고 본다. ... 정치적으로 성과를 내고 권력을 선한 목적으로 사용할 강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내면이 단단해야만 변명이나 알리바이에 의존하지 않고 정치의 현실을 헤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정당도 필요하고 좋은 정치가도 필요하고 좋은 지지자도 필요한 것이 현대 민주주의이다. ... 정치에서 사람도 중요하지만 돈도 중요하다. 돈 문제에 관심 없다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 말은 곧 무능력한 정치가가 되겠다는 뜻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당비의 형태든 후원금의 형태든 돈을 만드는 문제에서도 유능해야 한다. 정치에서의 비극은 돈 때문이 아니라 돈의 위력에 압도되어 늘 변명을 찾는 인간의 나약함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인간 사회에서 지배와 통치, 폭력의 요소를 부정한다면 그건 인간 사회의 정치가 아닐 것이다. 인간이 천사가 아닌 이상 정치는 필요하고 그 위험한 분야를 담대하게 다룰 사람도 필요하고, 그만한 기술과 역량 그리고 지식도 필요하다.
정치적인 것의 가치를 이해할수록, 정치적인 것의 위험성을 깊이 수긍할수록, 그리고 권력이나 지배 같은, 정치 현상의 불가피한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그는 반드시 인간적이 되고 신중해지며 말하는 내용도 풍부해진다. ... '자신의 무지에 대한 자각' 없이는 넓게 협력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야 한다. 인간의 한계에 대한 깊은 인식만이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협력하도록 나를 이끌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성을 갖춘 사람은, 앞서 끊임없이 강조했듯이 늘 내가 틀릴 수 있고, 그래서 타인으로부터도 배워야 하고, 내가 다루는 무기들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책임감 있게 자각하는 사람들이다. 협력과 공존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도 이들이다.
정치적 이상이란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에 대한 존중, 무지의 가능성에 대한 자각, 진보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닌 이념과 가치의 다원주의, 누구든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의 존중, 타인에 대한 인간적 정중함과 관용 등을 내용으로 한다. ... 정치에 주목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허용하고 있는 정치라는 가능의 공간을 지금보다 더 활짝 열어야 한다.
당신은 어떤 정치가이길 바라는가? ... 당신은 어떤 정치의 지도자를 바라는가?
추가로 읽어봐야할 책들...
사울 알린스키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정치가 우선한다 : 사회민주주의와 20세기 유럽의 형성>
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나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이후, 작년 8월 무상급식 주민투표 말고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투표를 해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인 줄만 알고 있었다. 먼가 수동적이지만, 어쩔 수 없지...
정치라는 단어에서는 먼가 부정적이고 혐오스러운 느낌이 있고,
정치를 아무나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정치를 한다고 나서면 갑자기 싫어지는 이율배반적인 느낌도 있었다.
내가 투표를 해온 이래, 우리나라의 정치가 맘에 들었던 적이 거의 없었고,
간혹 그래도 쫌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도 처참하게 실패하거나, 변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이상 기대할게 없다는, 정치에서 무언가를 기대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느낌이 많았고,
그런 상황에서 어떤 정당에 가입한다는 건, 생각해본적도 없고, 반감도 많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원래의 정치는 그런게 아니란 걸 알게되었다.
정치란 갈등을 사회화해서 그 갈등을 해소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대의민주주의라는 말의 본래 의미처럼 정당은 개인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하며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요구가 정당하다면 정당으로 정치세력화 할 수 있어야 하며,
시민들이 주권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선택할 정당 대안이 있어야 하고,
투표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의 가장 소극적인 방법이며,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선택할 정당 대안이 생기려면, 조금 더 적극적인 수준의 정치 참여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나는 정당이 나를 대변하게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누구나 마음껏 일하고, 사랑하고, 꿈꾸는 나라"를 희망하는 '청년희망플랜'에 당원 가입을 하였고
이미 열두번도 넘게 포기했지만 그래도 더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민주통합당'의 후보자경선 선거인단 신청을 했다.
나는 이제 조금 더 적극적인 수준의 정치 참여를 할 것이다.
나를 대변하는 정당, 내가 스스로 참여해서 만들어나갈 것이다.
청년희망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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