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원고지 : 어는 예술노동자의 황홀한 분투기 (2000-2010 창작일기) / 김탁환 / 황소자리
중요한 건 이야기의 구조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살아내고 있는 등장인물들이다. 사람에게 천착할 것. 소설기술자가 될 수는 없다.
왜곡이란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나. 그러나 과연 그런 '사실'이 존재할까? 모든 것은 말로 옮겨지는 순간 벌써 사실이 아닌 것이다.
강한 인간이어야 강한 글도 쓸 수 있는 법.
삶이란 결국 지 꼴리는 대로 우기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 물론 아름다운 문장은 좋은 것이지만, 그 때문에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된다. 나는 아름답게 쓰지 않고 정확하게 쓰고 싶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뛰어다니는 것도 소중하겠지만 때로는 의도적으로 시간을 늦추며 앉아 있기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전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할 때, 그 말의 절반 정도는 그저 날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의 힘겨움을 감추는 것이리라.
<불멸>을 쓸 때 놀란 것은, 임진년의 전쟁 당시 왜군이 미처 도달하기도 전에 조선의 백성들이 엄청나게 많이 죽었다는 것이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기아와 질병이었다. 일상적인 삶이 무너지는 순간부터 배고픔이 찾아들고, 뒤이어 전염병이 돌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엄청난 피난민의 행렬이라니. ... 전쟁은 너무나도 많은 이들의 삶을 앗아간다. 조용히, 소리 소문도 없이.
잠이 줄어드는 것이 징후다. 몸을 학대하면 정신이 맑아지니까. 그 맑은 정신으로 이번 장편소설에서 어디가 틀렸는가를 예리하게 느끼려는 것이다. 괜찮아 보이는 문장을 꼬집어 더 나은 것으로 바꾸는 감각. 그건 자기 학대 없이는 찾아오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읽고 싶은 책은 많고 시간은 없다. 오전에는 글 쓰고 오후에는 글 읽는 나날을 꿈꾸면서도 번번이 실패한다. 쓰고 싶은 욕망을 줄여야 한다. 쉽지 않다.
무엇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문장이 나를 먹어버리고, 문단이 내 옆구리를 마구 찔러대던 시절. 그래서 나는 스물다섯 살 그 언저리로 돌아가기 싫다. 그 힘겨움과 나약함. 그리고 내가 나를 배신하던 순간들은 한 번으로 족하다. ... 매설가. 난 이 세 글자가 점점 좋아진다. 이야기를 팔긴 하되, 그 값을 돈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받고 싶다. 한 장의 엽서라든가 한 곡의 노래라든가 한 순간의 웃음 같은 것.
삶에 대하여 거창하게 논하는 새끼들 말, 전부 거짓이다. ... 삶을 바꾸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서른 살을 넘으면 불가능에 가깝다. 누가 내 삶을 충고하면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그래도 삶을 바꾸어야 한다면 아, 그 깨달음의 무게는 얼마나 클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대부분 '진심'이라고 하는 그 무엇. 나를 변함없는 나로 만들게 하는 그 무엇. 그리고 그 무엇에는 항상 눈물이 따른다.
시간이 쌓인다는 것(전통)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합주의 핵심은 옆에서 함께 연주하는 다른 악기들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허공에 스러지는 불꽃은 아름답다. 내용 없이도 아름다울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권 3을 다 읽었다. 수염을 기르기로 했다.
자살은 어리석은 일이었으나 그 절망은 진실이므로.
독자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이,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나요?"라는 거다. 나는 종종 이렇게 답한다. "글과 함께 손가락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죠."
혼자 기쁨을 줄이고 슬픔을 누르는 법을 익혀야 한다.
사람들은 다 무엇인가를 기다린다. 내일을 기다리고, 새로운 해를 기다리고, 또 새로운 느낌과 기억들을 기다린다. 기다려봤자 늘 똑같은 것들일 때도 있지만, 기다림은 그래도 그 짧은 공허의 순간을 이기는 힘이 된다.
소설 쓰기란 바로 밑 빠진 독에 시간 붓기.
시끄러운 도심에서 조용히 홀로 걸을 수 있는 이 길...... 여기가 내 숨구멍입니다.
나는 비극작가다. 아무리 우스운 이야기를 해도 그 속에는 생의 슬픔이 묻어 있다고 믿는.
이렇게 평생 공포만 만들면, 킹은 행복할까? 평생 슬픔만 만들면, 나는 행복할까? (불행을 만드는 작가는 행복해도 되나? 시인은 행복해도 되냐고 이성복이 황동규에게 물었다고 하더니, 그 즈음에 와 있을까? ...)
근데 요즈음 너무 혼자 밥 먹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글이 자꾸 부드러워지고 산만한가보다.
소설 쓸 때, 거짓말 하지 말 것.
정확한 논리만으로 생을 정리할 수 있다면, 벌써 삶에 대한 매뉴얼이 나왔을 것이다.
"그래 그땐 누구나 전성기지. 44년 전에 친구들이랑 본 영화를 또 보게 될 줄이야."
보이는 대로 믿지 말 것. 뒤로 밑으로 위로 만지고 깨물고 팔 것.
무엇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한다는 뜻이다. 무엇을 한다는 것을 무엇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상을 명쾌하게 해석하고 바꿀 하나의 완벽한 틀이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지났다.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바뀐 지금, 남은 것은 정의롭고자 하는 느낌뿐이다. 저 거창함과 이 초라함이 연결되지 않는다. 사물 하나하나마다 스며들던 시대정신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은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더욱 서글픈 것이다.
나는 지금 실패하고 울며 상처받은 이들에게 먼저 눈이 갔다. 그들을 바라보고 어루만지는 이가 이야기꾼 아닐지.
코미디가 현실이 되는 것만큼 비극은 없다고 했던가. 입 조심 글 조심 하지 않으면 이꼴 난다는, 국민을 향한 무언의 협박이다.
최선을 다해 걷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록도 또한 중요하다.
이제 지식이나 테크닉 따위 가르치지 않겠다. 나는 내 자세를 보여주고 또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자세를 보여주고 그리하여 내 이야기를 듣는 이들의 자세를 살필 예정이다. 이것이면 족하다.
페터 한트케는 왜 자기 자신에 관한 소설만을 쓰는가 (아니 에르노처럼)
무엇인가는 완성되고 무엇인가는 끝나고 무엇인가는 사라진다.
마지막 밤에도 무희는 춤 연습을 하고 소설가는 글을 쓰고 화가는 그림을 그린다. 그뿐이다. 마지막 날까지 이 일을 하는 것 외에 무엇이 더 있겠는가.
다만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트친들의 표정만 또렷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웃고 있었다. 그 미소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힘을 준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언제나 시작을 이야기할 때마다 떠올릴 수밖에 없는 도시.
이 책 덕분에 알게된 김탁환 선생님의 일상들...
그 덕분에... 하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ㅠㅠ
- 존 바에즈와 밥 딜런이 함께 부른 노래 들어보기
- 방각본살인사건 다시 읽기
- 4.19에는 신동엽 그림자 밟기 : 신동엽 무덤 -> 신동엽 생가 -> 신동엽 시비 -> 신동엽이 나온 부여초등학교 -> 부여에서 공주까지의 금강 드라이브
- 남해 이락사(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남해 관음포 앞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사당) 가는 길
- 쑤퉁의 <눈물> 읽기
-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열린책들)
- 대학로 공간 후 찾아가보기
- 페터 한트케의 <소망 없는 불행>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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