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다른 말, 마음과 같은 말, 말로라도 상대의 가슴에 비수를 꽂으려는, 어리석지만 탓할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한 의도의 말, 그래서 내게 되돌려지는 아픈 말, 생각보다 먼저 튀어나오는 말, 상처받았던 말, 머뭇대다 내뱉는 말, 머뭇대다 끝내 삼켜버리는 게 훨씬 나았을 거 같은 말, 그러나 끝내 토해버린 말 같지도 않는 말, 오해를 주고 오해를 후는, '아' 다르고 '어' 다른 말이 갖는 오만 가지 생기와 신비로움! 말로 글을 쓰는 드라마 작가란 직업을 사랑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 말은 마음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오늘도 차기 작품을 준비하며 내가 고민하는 것은 말보다 마음이다. 그런데 참 묘한 건 내 맘이든 그의 맘이든 들여다보려 하면 할수록 사람의 마음이 제법 아름답단 거다. 그래서 나는 말을 탐색하고, 마음을 탐색하는 드라마 작가로 사는 게 더없이, 많이 행복하다.
: 대본집을 펴내며 / 노희경
1부 적(敵)
(준기) 니가 그래달란 적이 없어서, 나는 힘들었어.
(준영N) 진짜 중요한 건 지금 그 상대가 적이다. 동지다 쉽게 단정짓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쯤은 진지하게 상대가 아닌 자신에게 물어볼 일이다. 나는 누구의 적이었던 적은 없는지.
2부 설레임과 권력의 상관관계
(지오N) 그러나, 이렇게 일이 주는 설레임이 한순간에 무너질 때가 있다. 바로 권력을 만났을 때다. 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강자이거나 약자라고 생각할 때 사랑의 설레임은 물론 사랑마저 끝이 난다. 이 세상에 권력의 구조가 끼어들지 않는 순수한 관계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설레임이 설레임으로만 남아 있는 그런 관계가 과연.. 있기는 한 걸까? ... 일을 하는 관계에서 설레임을 오래 유지시키려면 권력의 관계가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강자이거나 약자가 아닌, 오직 함께 일을 해 나가는 동료임을 알 때, 설레임은 지속될 수 있다.
3부 아킬레스건 :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을 위한 몇 가지 제안
(지오모) 소 밥, 서방 밥 차리다 내 인생 끝나네, 끝나.
(지오) 싸우자. 연희랑은 못 그랬거든. 서로 말을 너무 안 했어. 싸울 일이란 게 늘 너무 작은 일이잖어. 쪼잔하고, 쪽팔리고, 괜히 존심 상하고, 근데 그래서 말 안 함.. 나중에.. 정말 돌이킬 수 없게 일이 크게 되는 거 같애.
(준영N ) 새로운 사랑은 지난 사랑을 잘 정리할 수 있을 때에만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지 않았다. 다만, 고맙다고 했다. 아마도 그는 그로 인해 내가 얼마나 많이 성숙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4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녀들의 이야기
(지오) 엄마 나랑 서울 가서 살래?
(지오모) 너보다 니 아버지가 좋은데?
(지오N) 이상하다.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 이 말은 엊그제까지만해도 내게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였는데,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준영일 안고 있는 지금은 그 말이 참 며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더 얘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지금 몸 안의 온 감각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 아니구나. 또 하나 배워간다.
5부 내겐 너무도 버거운 순정
(준영) 인간은 인간을 통해서 성숙해지는 거라고, 모든 만남 뒤에 이별은 넘 자연스러운 거라고 이제 좀 당당히 말할 때도 되지 않았어요? 언제까지 유아적으로 이래야 돼요? 언제까지?
(서우) 난 인간이 순정에 허덕이는 건 본능이라고 본다. 순정에 대한 무수한 향수. 너무들 착하고 싶은 거지.
(민철) 저기 있잖아. 내가.. 있어도.. 딴놈 만나도 돼. 나도 이제 세상 살 만큼 살았고, 그 정도는.. 그냥 자주는 나도 싫고, 일주일, 아니 한 달에 두어 번 만나서 밥이나 먹자.. 어머니 폐가 많이 안 좋다드라. 맘 준비하고 있어. 그리고, 일단 만나보자. 만나보고, 나도 뭐 니가 만나보니 별로일 수도 있잖아, 그럼 그때 또 안 만나면 되지 뭐. 비싸게 굴지 마, 늙어서. 참, 이거 아직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전화할께.
(준영N) 생각해보면 나는 순정을 강요하는 한국 드라마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단 한 번도 순정적이지 못했던 내가 싫었다. 왜, 나는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더 상대를 사랑하는 게 그렇게 자존심이 상했을까? 내가 이렇게 달려오면 되는데, 뛰어오는 저 남자를 그냥 믿음 되는데, 무엇이 두려웠을까?
6부 산다는 것
(지오N)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산다는 건, 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인생이란 놈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절대로 우리가 알게 앞통수를 치는 법은 없다고. 나만이 아니라, 누구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그러니 억울해 말라고. 어머니는 또 말씀하셨다. 그러니 다 별일 아니라고. 하지만, 그건 육십 인생을 산 어머니 말씀이고, 아직 너무도 젊은 우리는 모든 게 다 별일이다. 젠장.
(준영모) 저 아줌마밖에 나랑 아무도 안 놀아주잖아.
(윤영) 많이 위급하다고 해도 안 믿었는데.. 나만큼 독하니까, 독하디독하게 정말 오래 살 줄 알았..
7부 드라마트루기
(준영N) 갈등 없는 드라마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최대한 갈등을 만들고, 그 갈등을 어설프게 풀지 말고, 점입가경이 되게 상승시킬 것. 그것이 드라마의 기본이다. ... 드라마국에 와서 내가 또 하나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얘기는 드라마는 인생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드라마와 인생은 확실한 차이점을 보인다. 현실과 달리 드라마 속에서 갈등을 만나면 감독은 신이 난다. 드라마의 갈등은 늘 준비된 화해의 결말이 있는 법이니까, 갈등만 만들 수 있다면, 싸워도 두려울 게 없다. 그러나 인생에선 준비된 화해의 결말은커녕, 새로운 갈등만이 난무할 뿐이다.
(규호) 니가 진짜 착함 왕따랑 놀아줘야지, 임마. 남들이 왕따 하는데 같이 왕따 하면서.. 인간성 좋은 척.. 웃기지 않냐?
(민철) 니들은 조직이 뭘로 보여? 나는 이런 조율 하고 싶어 하냐? 말이라곤 죽어라 안 듣는 놈의 새끼들 데리고, 이리 빌고, 저리 빌고.. 조직이 왜 있어? 지 좋은 일만 할 거 같음 조직이 왜 있어?! 니들 맘대로 하고 싶음 조직 떠나! 근데 못 떠날 거 같음, 말 들어야지, 아니냐?!
(지오) 가난한 예술가가 되기에 난 부적격자거든. 심심산천 촌구석에 장남으로 태어난 죄지. 너 그거 아냐? 웬만한 천재들은 대부분 먹고살만했단 거?
(지오) 울 엄마가 좋아하니가, 이젠 좋아. 새벽에 일어나 소죽 쑤고, 밭에 김매고, 채소 팔러 시장 가고, 다시 밥 짓고, 그렇게 365일 낙이라곤 없는 양반이, 요즘은 내 드라마를 마르고 닳게 보느라, 재미나댄다. 그럼 됐지 뭐.
(지오) 정말 돈 많이많이 줌 나 방송국 나갈라고, 그래서, 니네 엄마 맘에.. 들고.. 싶다..
(지오) 기분 정말 엿 같다. 더럭 겁도 나고. 다른 누구보다 주준영한테 멋있게 보이고 싶은데, 어쩌면 걔한테 내 멋진 모습을 그 어느 때도 보이긴 힘들겠구나 싶은 게, 성질나요. 난 왜 이렇게 지지리 못살고 지랄인 건지..
8부 그들이 외로울 때 우리는 무엇을 했나 : 규호 이야기, 늙은 배우들의 이야기, 민철의 이야기
(수진) 왜 살긴 왜 살어? 그냥 사는 거지, 왜, 왜 그런 거 따짐 못 살어.
(윤영) 너는 단 한 번도 날 안 믿지? ... 김민철. 너는.. 내가 널 사랑하는 건 안중에도 없지? 나만 날 좋아하는 거 같지? 너만 나한테 의리가 있고, 너만 나 땜에 괴롭고, 슬프고, 너는 일하고 난 웃음 팔고, 너 가끔.. 내가.. 몸도 판다고 생각하지?
9부 드라마처럼 살아라 1
(지호E) 니 작품이 왜 그렇게 다 차가운지 아냐? 인간에 대한 이해심이 없으니까 그런 거야? 엄마도 이해 못하는 놈이, 무슨 드라마 속 인간을 이해해!
(준영N) 정말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었다. 어려서 엄말 피해 드라마를 봤는데, 더이상 엄마를 피하면 내 드라마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고? 절대 그럴 리 없다. 드라마는 드라마고, 인생은 인생이다. 근데 아빠도 그런 식으로 말한 거 같다. 시처럼 인생을 살아라. 돌아버리겠네. 아, 모르겠다. 정말.
(민철) 아우 부런 새끼, 부런 새끼. 몸은 늙지만 마음은 안 늙는다는 걸 인류에게 증명해주는 산증인 같은 놈.
(준영N) 왜 어떤 관계의 한계를 넘어야 할 땐 반드시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고 아픔을 공유해야만 하는 걸까? 그냥 어떤 아픔은 묻어두고 깊은 관곌 이어갈 수는 정말 없는 걸까? 그럼 나는 이제 정지오와의 더 깊은 관곌 유지하기 위해선, 정말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엄마에 대한 얘길 해야만 하는 걸까?
(윤영) 첨이 어렵지. 눈 딱 감고 한 번 하고 남 그 담부턴 쉬워.
(준영N) 아빠는 내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의사가 되길 바랐지만, 내가 드라마를 한다고 했을 때, 아름다운 드라마를 찍는 사람이 아니라, 아름다운 드라마처럼 사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10부 드라마처럼 살아라 2
(윤영) 말해봐, 사랑이 먼저야, 믿음이 먼저야?
(민철) 사랑
(윤영) 아, 그래서 당신은 날 안 믿는다고 말할 때도 그렇게 당당하구나. 그게 별거 아니라서. 근데 어쩌냐, 난 믿음이 먼전데.
(지오부) 농사꾼 중에 절반이 쥐병 걸려!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병이야! 니 애미는 뭐든 약이야! 관절염에 한 웅큼, 머리 아프다고 한 웅큼, 위장 아프다고 한 웅큼! 맨날 그 쓰디쓴 양약을 입에 달고 사는데, 거기다 아프지도 않은데 그놈의 독한 약을 그럼 또 맥여!
(지오) 아까 거기 있잖아, 남자애가 여자 집에 부모 만나러 갈 때, 너무, 약하지 않나? 있잖아, 당당하게 하자. 웃기지도 않는 말도 하고, 막 도망치고 싶지만, 더 당당하게, 주눅 같은 거 들지 말고, 사내자식이 말이야, 죄송합니다부터 하니까, 넘 약해 보이지 않,
(서우) 아무리 드라마래도, 죽을 날 받아논 애가 어떻게 당당해. 미안하지.
(지오) 왜 못해? 이판사판이란 심정도 있잖아! 막말로 그 여자 아님, 걔가 누굴 사랑할 건데?
(서우) 계면쩍어 방글방글 웃은 게, 오바라고 생각함 어쩌지? 지금 그 생각하지? 준영일 안 준다고 함 어쩌지? 주준영이 만났던, 그 애의 엄마가 좋아하는 강준기보다 내가 정말 잘났나, 자꾸 되물어지지?
(지우N) 준영아, 내가 너한텐 드라마처럼 살라고 했지만, 그래서 너한테는 드라마가 아름답게 사는 삶의 방식이겠지만, 솔직히 나한테는 드라마는 힘든 현실에 대한 도피다. 내가 언젠가 너에게 그 말을 할 용기가 생길까? 아직은 자신이 없다. 그런데, 오늘 불현듯 너조차도 나에겐 어쩌면 현실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드라. 너 같이 아름다운 애가, 나 같은 놈에겐 드라마 같은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준영아, 아니라고 해줄래? 너는 현실이라고.
11부 그의 한계
(지오N) 아이에서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이 배신 당하고 상처 받는 존재에서 배신을 하고 상처를 주는 존재인 걸 알아채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른어른인가? 나는 내가 배신하고 상처 주었던 때를 분명히 기억한다. ... 어른이 된 나는 그때처럼 어리석게 표 나는 배신은 하지 않는다. 배신의 기술이 더욱 교묘해진 것이다. ... 그러고 보니 배신을 당했다고 말하든 했다고 말하든, 그 어떤 순간도 난 초라해지는 게 싫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참 초라한 느낌이 든다.
(민철) 날 미치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나중에 덜미 잡힐까봐, 좋단 표현도 못하지. 너는?
(서우) 이제 이해가 간다. 자기 엄만 먹고사느라 쥐병까지 걸려가며 일하는데, 돈 많은 유한마담 같은 주인공이 잛은 애랑 그러는 거.. 찍기 그렇구나? 정지오. 돈 많다고 안 외로운 거 아니고, 일 많다고 안 외로운 것도 아니고, 인간 다 외로워.
(지오N) 정작 그 어떤 것도 헤어지는 데 결정적이고 작합한 이유들은 될 수 없다. 모두, 지금의 나처럼 각자의 한계일 뿐.
12부 화이트아웃
(준영N) 화이트아웃 현상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모든게 하얗게 보이고 원근감이 없어지는 상태. 어디가 눈이고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세상인지 그 경계를 알 수 없는 상태. 내가 가는 길이 길인지 낭떠러지인지 모르는 상태. 우리는 가끔 이런 화이트아웃 현상을 곳곳에서 만난다. 절대 예상치 못하는 단 한 순간, 자신의 힘으로 피해갈 수 없는 그 순간, 현실인지 꿈인지 절대 알 수 없는, 화이트아웃 현상이, 그에게도 나에게도 아느 한 날 동시에 찾아왔다. ... 그렇게 눈앞이 하얘지는 화이트아웃을 인생에서 경험하게 될 때는, 다른 방법이 없다. 잠시 모든 하던 행동을 멈춰야만 한다.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도 이 울음을 멈춰야 한다. 근데 나는 멈출 수가 없다. 그가 틀렸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지오N) 내가 지금 얘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눈도 아파 죽겠는데, 나는 왜 얘랑 헤어져서.. 더 외롭게 내 무덤을 파는 건지,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젊어서 힘이 남아돌아 쓸데없는 짓 한다 하시겠지. 근데 어떻게, 난 젊은데.
13부 중독, 후유증 그리고 혼돈
(민철) 고친답시고, 용쓰다, 힘들다고 투덜대지 말고, 관둬, 내가 너한테 맞추고 살테니까.
(민숙) 재산, 명예, 인기 있음 다 행복해? 누가 그래? 인생이 그렇게 단순하다고? 돈 밖에 없고, 살가운 자식은커녕 속 썩이는 자식도 하나 없고, 맬 쇼핑밖에 할게 없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인간에 대해 편협해서, 무슨 인생을 논하는 드라말 만들겠다고..
(지오N) 두 사람이 만나 두 사람이 헤어지고 나면 모든 게 제로로 돌아가야 하는데, 실제는 그렇지가 않다.
(지오) 니까짓 게 무슨 걱정이 있냐? 잘 나가는 아버지, 이쁜 애인, 승승장구하는 드라마 인생, 대체 뭐가 불만이야?
(규호) 아버지가 잘 나가서 걱정이고, 애인이 너무 이뻐서 TV에 얼굴 디미는 게 걱정이고, 드라마 인생은 승승장군데, 내 인생은 엿같아서, 걱정이지.
(지오N) 내 자존심을 지킨답시고, 나는 저 아일 버렸는데, 그럼 지켜진 내 자존심은 지금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14부 절대로 길들여지지 않는 몇 가지
(민숙) 인생 별거 있어. 다 유치뽕짝이지.
(지오N) 그런데 정말 길들여지지 않는 건 바로 이런 거다. 뻔히 준영의 맘을 알면서도 하나도 모르는 척, 이렇게 끝까지 준영의 속을 뒤집는, 뒤틀린 나 자신을 보는 것. 사랑을 하면서 알게 되는 내 이런 뒤틀린 모습들은 정말이지 길들여지지 않는다. 그만하자고, 내가 잘못했다고, 다시 만나자고, 첨엔 알았는데 이젠 나도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안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왜 나는 자꾸 이상한 말만 하는 건지.
15부 통속, 신파, 유치찬란
(준영) 본인 같음 어떡할 거 같애. 자신보다 잘났고, 자신보다 영리하고, 자신보다 순수하고, 자신보다 사랑에 진지한 여자... 솔직히, 버겁고, 쪽팔려, 도망가고 싶지 않어? 조태일처럼 진솔하게.. 그렇게 못하지? 조태일은 환상이지? 드라마가 환상인 것처럼? 그지?
(준영N) 이쯤에서 우린 어쩌면 모두 백기를 들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냉정한 현실 앞에서, 사랑이란 건 차라리 철없는 유치찬란임을, 가십이 필요한 사람들 앞에서 이해를 바라는 건 더더욱 구차한 신파가 되는 것을, 세련되고, 쿨하고, 멋진 인생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것조차도, 우린 이제 인정해야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편한 건지. 아직도 너무 어린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 어느 한쪽에서 여전히 드라마처럼 인생의 반전을, 그와 나의 반전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지오) 사랑받는 만큼 욕먹는다. 인과응보의 논리는 어디서나 작용한다는 윤영선배 명언이지. 이겨낼거야.
(준영N) 그때 알았다. 예정된 통속이 유치가 신파가 때론 절대적으로 필요한 순간도 있다는 걸.
(지오) 잔인할 땐 잔인해야 돼요.
16부 드라마처럼 살아라 3
(수경) 내가 준영이 팼어요.
(민숙) 정떨어지게 잘했네.
(수경) 고마워. 쪼잔하다고 욕 안 해줘서요.
(윤영) 나 다신 안 만.. 나줄 줄 알았는데.
(민철) 그게 니 수준이야.
(윤영) 그럼 니 수준은.. 어떤데?
(민철) 이 정도론.. 안 끝나는 수준.
(준영N) 언젠간 지오선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모든 드라마의 모든 엔딩은, 해피 엔딩밖엔 없다고. 어차피 비극이 판치는 세상, 어차피 아플 대로 아픈 인생, 구질스런 청춘, 그게 삶의 본질인 줄은 이미 다 아는데, 드라마에서 그걸 왜 굳이 표현하겠느냐, 희망이 아니면 그 어떤 것도 말할 가치가 없다, 드라마를 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이 말하는 모든 비극이 희망을 꿈꾸는 역설인 줄을 알아야 한다고, 그는 말했었다. 나는 이제 그에게 묻고 싶어진다. 그렇게 말한 선배 너는 지금 어떠냐고. 희망을 믿느냐고.
동북아 다녀와서, 좀 말랑말랑한 영화나 말랑말랑한 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집어든게, 그사세 대본집이었다.
등장인물 어느 하나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 없는 노희경의 드라마를 좋아해서
그사세도 빼먹지 않고 보려고 애쓰긴 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기억나지 않는 장면이 많았다.
(특히 15, 16부는 정말 못본게 분명하다. 다시 찾아서 볼 것)
지우와 준영으로 나온 현빈이나 송혜교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음에도 드라마를 보는 동안 두 사람이 참 이뻤고,
규호와 해진도 참 이뻤지만,
무었보다 최고는 윤영(배종옥)과 민철(김갑수)
나도 드라마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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