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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듣고/책장.넘기는.소리

열정, 그 자체에 대한 솔직한 기록 ... 단순한 열정 /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Passion Simple /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 최정수 역 / 문학동네


어느 날 오후, 차를 몰아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는 30분 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때 문득 교통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곧 '내 삶이 여기서 끝나게 될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종종 내가 저지르거나 당할 다소 비극적인 사고나 질병을 상상해서 그것으로 내 욕망을 저울질해보는 버릇이 있었다. 이는 상상을 통해 내가 그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알아봄으로써, 내 욕망이 운명에 대항할 만큼 큰지 그 정도를 측정해보는 방법이었다.)

나는 얼음을 가지러 부엌에 들어가서 문 위에 걸려 있는 벽시계를 쳐다보며 "두 시간밖에 남지 않았어" "이제 한 시간......" 혹은 "한 시간 후면 저 사람은 가고 나만 혼자 남게 되겠지" 하는 말들을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도대체 현재란 어디에 있는 걸까?" 하고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가끔 이러한 열정을 누리는 것은 한 권의 책을 써내는 것과 똑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면 하나하나를 완성해야 하는 필요성, 세세한 것까지 정성을 다한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몇 달에 걸쳐서 글을 완성한 후에는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이 열정이 끝까지 다하고 나면-'다하다'라는 표현에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겠다-죽게 되더라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

내 지출 목록에 그 사람을 기다리며 꿈꾸듯 보내버린 시간과, 매번 그것이 마지막인 것처럼(마지막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며 쇠잔해져버린 내 육체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 관계에서 그런 시간적인 개념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그저 존재 혹은 부재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내 열정을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정당화되어야 할 실수나 무질서로 여겨질 수도 있다. 나는 다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 A는 지금도 이 세상 어디엔가 살고 있다. 나는 그 사람의 신분을 드러낼 수도 있는 예민한 정보에 대해서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없다. 그 사람은 이제 '그의 삶'을 살고 있다. 다시 말해 지금의 그에게 자신의 삶을 값지고 성공적인 것으로 이끄는 일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의 입장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그 사람의 신분을 밝힐 수 없게 만든다. 나는 그 사람을 내 존재를 위해 선택한 것이지 책의 등장인물로 만들기 위해 선택한 것은 아니다.

나는 우리가 서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환상일 뿐임을 깨달았다.

그런 시간상의 차이 때문에 나는 마음놓고 솔직하게 이 글을 쓸 수가 있다. ... 나중 일을 미리 두려워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겪은 일을 글로 쓰는 사람을 노출증 환자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노출증이란 같은 시간대에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병적인 욕망일 뿐이니까.)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을 예감하면서도, 지금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의 일정을 알면 안심이 되었다. 그 사람이 어떤 시간, 어떤 장소에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면서 그 사람의 부정(不貞)에 대비했다. (이렇게 집요하게 상상을 하는 것은, 내 아들들이 파티에 가거나 바캉스를 떠났을 때 내가 그 장소를 알고 있으면 사고나 마약, 또는 익사의 위험에서 그들이 보호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과 흡사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내가 마치 글을 쓰듯이 피렌체에 나의 열정을 새겨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를 걸을 때나 박물관을 둘러볼 때나 A의 영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모든 것을 그 사람과 함께 보고, 그 사람과 함께 식사하고, 그 사람과 함께 아르노 강가에 있는 시끄러운 호텔에서 잠을 잤다.

어느 날 밤, 에이즈 검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내게 그거라도 남겨놓았는지 모르잖아.'

날이 밝아도 일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아무런 계획이 없는 무의미한 하루가 내 앞에 버티고 있었다. 시간은 더이상 나를 의미 있는 곳으로 이끌어주지 못했다. 그것은 나를 늙게 할 뿐이었다. ... 만약 이달 말까지 그 사람이 내게 전화를 해온다면 자선단체에 500프랑을 기부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 작년에 그 사람과 마주쳤던 장소-치과나 교수 모임 등-에 다시 가게 되면 그때 입었던 옷을 꺼내 입었다. 같은 상황이 같은 결과를 불러와 그 사람이 저녁에 전화를 해줄 거라는 기대에서였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낙심하며 잠자리에 들면서 비로소 내가 하루 종일 그 사람이 정말로 전화해줄 것으로 믿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선택하는 문제에서부터 립스틱을 고르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향해 이루어졌던 그때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페이지부터 계속해서 반과거 시제를 쓴 것은, 끝내고 싶지 않았던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시절'의 영원한 반복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예전의 기다림이나 전화벨 소리, 만남을 대신하고 있는 나의 고통을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번은 갑자기 17구에 있는 카르디네 거리에 가보고 싶은 격렬한 욕망이 일었다. 그곳은 20년 전 내가 낙태수술을 받은 곳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거리, 그 건물을 다시 보고 그 일이 있었던 방에 올라가봐야 할 것 같았다. 옛날의 그 쓰라린 고통이 지금의 아픔을 덜어주리라는 막연한 희망 때문이었다. ... '그때 내가 여길 지나갔지' 하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 말레브르 역에서 다시 지하철을 탔다. 이런 행동으로 아무것도 달라지진 않았지만, 이 일을 해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 또한 한 남자에게서 비롯된, 완전히 버려진 것을 되살려낸 일이라는 점에서 나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가끔 그 사람에 대한 세세한 기억들, 그 사람이 했던 말들이 문득 되살아나는 일이 있다. ... 그럴 때면 잠시 동안 거대한 고요함이 내 안에 가득 차오르는 기분이 된다. 마치 그를 만나는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선 몰랐다가 깨어난 순간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느끼는 기분과 비슷하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듯한 느낌, "이제는 모든 게 좋은" 그런 느낌이다. ... 남들과 이야기 하는 도중에 갑자기 A의 어떤 태도를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우리 관계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제 그것들이 서서히 스러지기 시작한다. 살아 있는 텍스트였던 그것들은 결국은 찌꺼기와 작은 흔적들이 되어버릴 것이다. 언젠가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겠지. 그런데도 나는 그 사람을 끊임없이 기다리고 갈망했던 지난해 봄 그 사람을 떠날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그 사람에게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글에는 자신이 남겨놓고자 하는 것만 남는 법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읽힐지도 모른다는 고통을 연장시키는 것과 같다.

돌아오는 길에 데팡스 터널을 지나며 문득 '내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 거야' 하고 다짐했다.

나는 그 남자를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 그 사람이 돌아왔었다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거의 실재하지도 않았던 일인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은 내 열정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주었고, 지난 2년 동안 내가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열정에 사로잡혀 지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재,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그 사람은 "당신, 나에 대해 책을 쓰진 않겠지"하고 말했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 이것은 그 사람이 내게 준 어떤 것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김탁환 선생님의 <천년습작>을 읽고 나서 읽게 된 책.

지난 주말 토요일 1시 버스를 타고 울진에 출장 가는 길,
오전에 영화 하나 보고 출발하면 좋겠다 싶어서 집에서 일찍 출발한다고 나왔는데,
CGV강변에 도착하고 보니 영화 시작 시간을 5분 넘기고 도착.
그래서 영화를 못보고 테크노마트에 있던 서점에 들러 몇 권의 책을 둘러보다가
아주 얇은 그러나 양장본으로 된 이 책을 발견했다.

너무 얇기도 하고 두 시간 정도 시간 여유도 있어서 서점 바닥에 앉아서 그냥 읽기 시작했는데,
누군가 곧 사가게 될 새 책에 밑줄을 그을 수가 없어서 작은 수첩에 옮겨 적다 보니
시간이 너무 걸리고, 생각보다 옮겨적게 되는 문구가 많아져서 안되겠다 싶어 책을 사버렸다.

책 제목 그대로 '단순한 열정' 그 자체를 보여준다.
아주 솔직하게, 내면의 심리를, 감정을, 생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나에게 이런 열정이 있었던가?
종종 부분부분 내가 느꼈던 감정과 같은 부분도 있고,
어느 부분... 열정의 끝엔 저런 감정도 보이겠구나 싶기도 하고,
그 끝까지 가보지 않은 나는 그 당시 또 무언가에 주춤대고, 망설이고 있었구나 싶기도 했다.

집착이 아닌 순수한 열정.
요즘 세상에 무관심해지는 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