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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람의 선한 소설 ... 잘가요, 언덕 / 차인표











잘가요, 언덕 / 차인표 글 / 살림


봉긋 솟아 있는 이 언덕은 잘가요 언덕입니다. 예부터 호랑이 마을 사람들이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모이는 작은 언덕이지요. 길 떠나는 사람이 억새풀에 가려서 안 보이게 될 때까지 호랑이 마을 사람들은 이 언덕 위에 서서 "잘 가요. 잘 가세요."를 외치며 작별인사를 해 왔답니다. 그러면 떠나는 사람은 뒤돌아보며 "꼭 돌아올게요. 우리 다시 만나요."라고 답례를 했지요.

"... 황 포수, 자네가 호랑이 산에서 백호를 찾든 못 찾든 한 가지는 꼭 기억했으면 하네. 호랑이들은 우리가 이곳에 마을을 만들고 정착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이 산에서 살고 있었네.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객인지 생각을 해 보게나. 사람에게 해가 된다고, 혹은 조금 불편하다고. 혹은 조금 이득이 생긴다고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이면 세상이 어찌 되겠는가? 설령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일지라도, 세상은 더불어 사는 것일세. 짐승과 더불어 살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과도 더불어 살 수 없는 법일세."

"세상에 안겨 길을 잃지 말고, 세상을 품고 너의 길을 가거라."

순이는 밤하늘을 수놓은 수없이 많은 별들 중에서 엄마별을 쉽게 찾아냅니다. 엄마별은 색깔이 다르거든요. 엄마별은 금색이나 은색이 아닌 따뜻한 색이니까요.

"새끼가 있었어. 한 마리...... 그래서...... 강했던 거야...... 새끼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엄마별은 사람이 띄우는 게 아니라, 원래부터 떠 있는 거래. 엄마별은 찾으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의 밤하늘에 떠오른대. 찾으려는 사람한테는 반드시 떠오르고, 한 번 떠오르면 영원히 지지 않는대. 낮이 되어 밤하늘이 없어져도 엄마별은 지지 않는대. 잠시 보이지 않을 뿐, 늘 그 자리에 있는 거래."

며칠이 지나도 아기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 "눈물샘아 열려라, 샘물처럼 터져라."

긴 세월이 흘렀지만, 만약 용이가 아직 살아 있다면, 그리고 용이도 엄마별을 볼 수만 있다면, 엄마별은 그 따스한 빛으로 용이를 위로해 줄 수 있을 테니까요.

어머니, 이곳 호랑이 마을은 아주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평화로운 곳이 있을까 할 정도로 조용합니다. 마을 사람들도 무척 순하고, 정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요즘 저에게는 큰 낙이 하나 생겼습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짙게 깔린 안개를 가르며 호랑이 마을 주변을 산책하는 것이지요. 들로, 논으로, 밭으로, 작은 언덕으로 걷다 보면 순간순간 변하는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합니다. 그리고 자연과 하나 된 나를 저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그분이 자연과 나를 지은 분이 아닐까 합니다.

공중에 떠 있는 새끼 제비는 더 이상 누가 마을 사람이고, 누가 일본군인지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흰 옷을 입은 마을 사람들이나, 짙은 색 제복을 입은 일본군이나 모두 진흙범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논바닥에는 일본군도 호랑이 마을 사람들도 없습니다. 그냥 사람들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모두들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생명일지라도, 살아 있는 하나의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단초가 되는 것입니다. 생명이란 일회성이 아닌 연속성을 가진, '살아 있음' 그 자체라는 것을 새끼 제비는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태어날 때는 모두 공평하게 똑같은 이름으로 태어나죠, 인간이라는. 그런데 죽을 때는 제각각 다른 이름으로 죽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는 군인으로 죽고, 어떤 이는 화가로 죽고......"
"순이 씨는 어떤 이름으로 죽고 싶으십니까?"
"전 엄마라는 이름으로 죽고 싶어요. 한 아이가 아닌 여러 아이들의 엄마. 아이들이 울 때 업어주고, 아플 때 만져주고, 슬플 때 안아주고, 배고플 때 먹여주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평생 살다가 아이들과 헤어질 때쯤 되면 아이들도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되겠죠."

어머니, 돌아갈 곳이 없다면 보이지 않는 길로 가겠습니다. ... 어머니, 다시 어머니를 못 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너무 보고 싶습니다. 한 번만, 딱 한 번만이라도 어머니의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비열한 일본군 장교로서 어머니의 품에 안기느니, 용서를 구하는 한 인간으로서, 죽어서라도 어머니의 마음에 안기겠습니다.

아직 살아 있다면, 용이가 이제는 엄마별을 볼 수 있게 도와주세요. 더 이상 외로운 산에서 홀로 고생하지 말고, 이제는 산에서 내려와 사람들과 더불어 살 수 있게 해주세요. 백호한테 물려서 생긴 마음의 상처를 엄마별이 이미 품고 있다는 것을 용이에게 알려주세요.

비록 칠흑 같은 어둠에 가려 밤하늘의 엄마별이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엄마별은 저 어둠 건너편에서 자신을 비추어주고 있다는 것을 믿기에, 순이는 어디로 가든 상관없습니다. 어디를 어떻게 거쳐 가든 결국에는 엄마별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용이야 이제 그만 백호를 용서해 주면 안 되겠니?"
"......"
용이가 다시 침묵합니다. 소리 없이 울고 있는 것입니다. 용이도 이미 알고 있는 듯합니다. 자신의 커다란 손이 지금보다 더 커지더라도, 긴 엽총이 더 강력하지고 칼날이 더 매서워지더라도, 자신은 결코 백호를 잡을 수 없으리란 것을 말입니다. 어린 기억 속에 버티고 있는 백호는 어떤 총과 어떤 칼로도 잡을 수 없는 신기루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용이 자신도 깨닫고 있는 듯합니다.
"모르겠어. 용서를...... 어떻게 하는 건지."
"빌지도 않은 용서를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
"용서는 백호가 용서를 빌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엄마별 때문에 하는 거야. 엄마별이 너무 보고 싶으니까. 엄마가 너무 소중하니까."

순간적으로 용이는 다 포기하고 순이 곁에 눕고 싶어집니다. 나란히 누워 손을 꼭 잡고, 이대로 잠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옆에서 함께 잠들어 순이가 꾸는 꿈을 나눠 꾸었으면 좋겠습니다. 꿈속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엄마별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엄마별이 수고하고 지쳐버린 자신의 몸을 이제 그만 보살펴줬으면 좋겠습니다. 따듯하게 품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실은, 차인표 씨가 소설책을 냈다는 말을 듣고
요즘 가수며, 배우들이며, 사진집이나, 에세이나, 종종 내는 그런 책들
유명한 이름에 기대어, 책 몇권 팔아 돈 벌려는 출판사들의 싸구려 마인드에게 기인한 그렇고 그런 책일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북 콘서트나 저자사인회 등에도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책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이 내가 생각했던 것들과 좀 달라서... '뭐가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서 읽어보게 되었다.

공중 제비의 시선, 잘가요, 언덕과 오세요, 종소리, 순이, 용이, 호랑이마을...
동화같은 시선과 동화같은 이름들과 할머니가 손자손녀들에게 읽어주는 동화책 같은 문체 속에서
'바른 생활 배우 차인표'가 그대로 느껴졌다.

선한 사람이라는 느낌.
자극적이지 않고, 그렇다고 슬픔을 가장하지도 않고, 슬픔이든 분노든 절제하고, 용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
김탁환 작가가 얘기하는 따듯한 글쓰기 라는 게 이런 글인 것 같다.

차인표 씨의 다음 작업이 기대가 된다.
글이든 연기든 그의 삶이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