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바보들에게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 / 알퐁소(장혜민) 엮음 / 산호와진주
사실 살아 있든지 죽든지,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며, 무엇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 정의, 사랑을 위해 살고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값지고 보람된 삶입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는 생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정은 모든 사랑의 출발점입니다. 가정 안에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오래 사는 것' 보다 '기쁘게 잘 사는 것'이 더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성냄(禍) : 화내는 사람이 언제나 손해를 본다. 화내는 사람은 자기를 죽이고 남을 죽이며 아무도 가깝게 오지 않아서 늘 외롭고 쓸쓸하다.
이웃(隣) : 이웃과 절대로 등지지 말라. 이웃은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큰 거울이다. 이웃이 나를 마주할 때, 외면하거나 미소를 보내지 않으면, 목욕하고 바르게 앉아 자신을 곰곰히 되돌아봐야 한다.
사랑(慈愛) :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관용, 포용, 동화, 자기를 낮춤이 선행된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칠십년 걸렸다."
사랑은 감정이나 느낌이 아닙니다. 사랑은 의지입니다. 참된 사랑은 참으로 사랑하겠다는 결심에서 출발합니다. ... 사랑은 감정에서 시작되고 감정이 식으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의지에 속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사랑하겠다는 결심에서 출발하여 이 결심을 지키는 의지로써 지속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참으로 용서하고 사랑할 줄 모르는 근본 이유는 먼저 우리 자신이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닫지 못하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 자신이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자만이 참으로 남을 용서해 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아침이면 태양을 볼 수 있고 저녁이면 별을 볼 수 있는 나는 행복합니다. 잠이 들면 다음 날 아침 깨어날 수 있는 나는 행복합니다. 꽃이랑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눈, 아기의 옹알거림과 자연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 사랑하는 말을 할 수 있는 입, 기쁨과 슬픔과 사랑을 느낄 수 있고 남의 아픔을 같이 아파해 줄 수 있는 가슴을 가진 나는 행복합니다.
'나'를 비우는 것은 나의 뜻을 거슬러서 내가 원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일, 탐하는 일, 싫은 사람, 피곤한 시간을 맞이하고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용서한다는 것, 더욱이 어두움 속에 내던져진 채 위로도 빛도 없는 가운데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순교와 같습니다. '나'가 상처받고 죽임을 당하지 않고 비울 수는 없습니다. 참사랑은 이렇게까지 자신을 비우고 내던질 수 있을 때에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생명이 있을 수 없고 삶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겠습니까? 또 아무도 사랑하는 사람이 없을 때 그런 '나'를 참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모든 존재와 삶과 평화와 행복의 절대조건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실히 해야 할 것은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랑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실천이 있을 때에만 참사랑입니다.
그들의 눈 앞에서 죽어 갑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를 모릅니다.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들은 소경입니다. ... 나는 그들 가운데 있지만 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머리로써보다 마음으로 알고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있습니다. ... 이처럼 세상에는 우리 눈으로 보지 못해도 존재하는 것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기도 중에 하느님이 말씀할 기회를 드려본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친교' '사랑의 나눔' 또는 '대화'라고 하면서, 우리의 기도는 너무나 일방통행입니다. 하느님 앞에 와서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일어섭니다. 우리의 기도가 대부분 메마르게 된 것도 너무 일방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느님이 말씀할 수 있도록 마음을 가다듬고, 마음의 눈으로 그분을 바라보고, 마음의 귀를 그분에게 돌리면 결코 메마른 기도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고통을 많이 겪은 인생은, 어떤 때는 너무나 큰 고통을 겪어서 그 모습을 보기조차 애처롭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를 수도 있지만 대개는 인간으로서 깊이가 있고 이해심과 동정심이 많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은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으로밖에 당신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어떤 자격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사랑 자체이고 우리를 사랑에서 창조하였기 때문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것을 믿고 산다면 우리는 어떤 처지에서도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 진실이 무엇인지, 어디 있는지 깨닫게 하여 주소서. 목숨 다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입니까? 당신 도움 없이는 이 역사의 오밤중에 길을 잃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만들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의 활력 속에서 화합이 이루어질 때 창조되어집니다. 정의 또한 규격품으로 배급되어 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강물처럼 순리로 흐르고 넘치게 해야 합니다. 복지는 소외된 이웃형제들에 대한 모두의 사랑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기도. 오 사랑의 주님! 존경 받으려는... 사랑 받으려는... 칭찬 받으려는...명예로와지려는... 찬양 받으려는... 선택 받으려는... 인정 받으려는... 인기를 끌려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소서.
순진함, 부드러움은 가장 생동하는 생명의 표현입니다. ... 무력은 싸움에서 이겼을 때 적장을 사로잡아 빼앗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력이 필부(匹夫)의 마음 속 의지를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 먼저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이 전파되고 점차 확대되어 모든 사람의 꿈이 될 때에는 분명히 현실화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감동을 통해 화합하는 것이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은 정신이며 사랑입니다. 사랑이야말로 인간을 구하는 것입니다.
비록 내일 교수대에 설 사형수라고 하더라도 원하면 얼마든지 자유의 인간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유는 나의 육체에 달린 것이 아니라 정신에 내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 오직 나만이 스스로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습니다.
희망이란 내일을 향해 바라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 씨앗을 뿌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희망입니다.
사랑이 없는 고통은 있습니다. 하지만 고통과 자기희생이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인생의 의미는 배운다기보다 깨닫는 것입니다. 그 깨달음은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삶은 내가 임의로 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이해하려면 기도로써 무엇을 얻어내려는 마음을 버릴 때입니다. 한 시간이고 몇 분이고, 진정 내가 나를 하느님의 뜻에, 그 손에 완전히 내맡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기도로써 무엇을 얻어내자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어려움 중에서도 성취한 것 같은 자만심도 없어야 합니다. 더구나 누가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보아주기를 바라는 생각도 없애 버려야 합니다.
지난 겨울, 추기경님이 돌아가시고, 명동성당을 휘감았던 조문 행렬에 속해 추기경님께 인사를 하고,
그 후, 추기경님 생전에 쓰신 책이며, 말씀들을 누군가 정리해서 추기경님의 잠언집이 나왔고,
그 책을 사두고는 읽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사건들과 그 사이 감정에 휘둘리다보니,
추기경님 말씀은 그냥 '좋은 말씀'이겠지, 그렇지만 나한테는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거 같다.
깨장엘 다녀오고,
쌓여있던 책들 중에, 이 책이 눈에 띄어서 꺼내 읽게 되었다.
책도 작고, 가벼워서, 읽는데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는데
말씀들은 하나하나 가슴에 박혔다.
무엇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
실천은 무엇이고, 희망은 무엇인지,
기도는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전 같았으면 그냥 읽고 지났을 말씀들이, 가슴으로 이해가 되었다.
'진리는 불교든 천주교든 다 하나다' 라는 좀 엉뚱하다 싶은 결론까지.
이젠 하느님도 제대로 믿을 수 있을 것 같고, 108배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
자유로와진건 좋은데,
지난 주말부터 오른쪽 눈에 나타난 경련 증상은 왜 사라지지 않는지...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도 아니고, 그닥 피곤한 상황도 아닌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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