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좀 도와줘 : 노무현 고백 에세이 / 노무현 / 새터
박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 '박해받지 않는 사람', 그건 정말 참기 어려운 또하나의 고통이다.
당시 그들의 싸움은 내게 사뭇 신선하게 느껴졌다. 우선 투쟁의 목표가 임금이나 직장 보장 문제 같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게 아니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자는 것이었다.
어느 잔인한 봄날에 벌어졌던 나의 의원직 사퇴 파동은 이렇듯 봄바람처럼 해프닝으로 지나가 버렸지만, 나의 자존심을 할퀸 상처는 여전히 깊게 남아 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 상처 자국을 어루만지며 고뇌한다. 과연 정치인이 해야 할 진정한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지를......
아무리 멋있게 생긴 고양이라 해도 쥐를 잡지 못하면 더이상 고양이라 할 수 없듯이, 현실 정치에서 실제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정치 지도자의 자질'보다 '훌륭한 두목으로서의 자질'이 더 절실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상도 높고 합리적이며 많은 경륜과 통찰력을 겸비한 사람, 그리고 한 나라를 이끌고 나갈 지식과 지혜를 갖춘 사람, 그런 사람이라 해도 권력을 놓고 승부를 가르는 싸움판에서 이겨낼 수 있는 두목다운 자질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적어도 '머리'라고 하면 세계관과 철학, 그리고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 중에서도 지식은 언제 어디에서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빌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철학은 그렇지 않다. 철학은 남에게 빌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 '철학'이 없는 정치인은 '두목'이라는 말은 들을 수 있어도 '지도자'라는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
나는 훌륭한 정치 지도자의 3대 요건으로 '권력 장악 능력'. '살림살이 능력', 그리고 '역사의식'을 꼽는다.
호랑이 잡겠다고 큰소리 쳐놓고는, 오히려 호랑이의 양자가 되어 호랑이 굴을 상속받아 여전히 동네의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이다.
"너무 큰 기와집을 짓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불안해하지도 마십시오. 20년쯤 지난 선배로서 내게 결혼이 뭐냐고 묻는다면 그냥 '신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성 문제는 여성의 권익 신장, 사회 진출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사회제도 전반에 관련을 갖는 문제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성의 권익이 신장되어 온 역사를 보면 노동운동의 발전에 힘입은 바 크다. 결국 여성 문제만 따로 떼어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회 전반의 문제와 함께 해결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 이제 여성들이 나서야 한다. 그것도 여성의 권익, 여성의 정치적 사회적 진출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환경, 소비자 문제, 교육, 의료. 노인 복지 등 사회보장 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눈을 크게 뜨고 나서야 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나는 상당히 반항적이었고 한편으로는 열등감이 심했던 것 같다. 그리고 가슴에 한과 적개심을 감추고 있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오히려 쉽게 좌절하기도 했다.
이젠 개인의 문제보다 공동체 의식과 시민 정신을 교육해야 할 때가 아닐까.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미래의 문제, '나'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를 이야기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아이들이 납득할 수 있는 아버지, 존경받는 아버지, 나는 그것이 자녀 교육에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여건이 어렵더라도 그래서 당장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더라도, 적어도 고민을 하는 자세는 필요할 것 같다. 적어도 아이들한테 위선만은 보여주지 않도록...... 요즈음 교육에 관하여 이야기가 나오면 대화를 많이 하라고 한다.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대화를 많이 한다는 것이 이야기 횟수나 시간이 많이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고 인정할 줄 아는 정서의 교감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 내가 의도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는 주로 옛날에 실수한 이야기, 잘못한 이야기들이다. 실수한 이야기가 배울 것도 많고 설득력도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보고 배운다. 아이들 교육에 위선만큼 해로운 것도 없을 것이다. ... 그런 의미에서는 내 아이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갔으면 싶다. 그리고 세상도 많이 달라져서 정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어들면 좋겠다. 보다 좋은 세상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위하여.
줄을 잘 서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기회주의의 시대, 나는 그러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본보기를 만들고 싶었다. ... 과연 정치에서 옳고 그른 것은 무엇인가? 옳고 그름이 없다면 굳이 내가 정치를 해야할 이유는 무엇인가?
아내는 나를 보고 웃는다. 정치를 그만 두고 변호사를 하면 될 일을 왜 사서 고생하느냐는 것이다.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나에게는 그만한 대가를 치를 만한 가치가 있는 이상과 포부가 있다.
버려진 사람들에게 도덕적 성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신들이 존재와 역할에 대한 뚜렷한 의식과 자부심이야말로 모범적 행동의 기초가 된다. 이런 점에서 그들을 사회의 책임 있는 주체로 참여시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관심과 배려에 달려 있지 않을까.
졸지에 아들을 잃은 슬픔이나 그 아들에 대한 경제적 기대감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 아들이 동료 노동자와 함께 어떤 명분을 가지고 싸우다 죽었다면 가족적 이기심에 앞서 그 명분도 최소한 존중해 주었으면 싶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어릴때부터 책을 좋아하기는 해도, 위인전 종류는 '쇼팽' 외에는 읽어본 적이 없다.
(스무살 넘어 읽은 책들도, 전태일 평전, 스콧 니어링 평전, 이중섭 평전 정도.)
위인 혹은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이 모두 훌륭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어릴때부터 했던 거 같고,
위인전에 씌여진 것처럼, 모든 점이 뛰어나고 훌륭한 그분들이, 나와 같은 '인간'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느꼈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그들에게 진정성을 느낄 수 없어서였던거 같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나오는 자만심인지...)
그래서, 어린이들한테 종종 하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이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우리 아빠' 였다.
내가 실제로 보고, 말씀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요즘은 정치적인 견해가 좀 달라서 가끔 답답하다고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도 당신이 살아오신 세월을 내가 감히 인정할 수 있는... 우리 아빠.
노무현 대통령님이 돌아가시고,
그제서야, 그분의 흔적을 찾아보기 시작하면서 주문한 책이 '노무현의 리더쉽이야기'와 '여보, 나 좀 도와줘'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아빠 생각이 났다.
요즘도 엄마가 아빠한테 가끔 화를 내시는 가장 큰 이유는, 엄마의 표현을 그대로 따르자면, '다른 사람들한테 쓰잘데기 없는 말'을 해서이다.
엄마가 말하는 아빠의 '쓰잘데기 없는 말'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바른 말'이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고 해도 듣는 사람이 듣기 싫어하는 말이면 엄마는 하지말고 좋게좋게 넘어가라는 쪽이고,
아빠는 당신 스스로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만큼, 사람들이 당신이 믿는 하느님의 말씀에 어긋난 행동을 해서 뭔가 문제가 발생하면,
입바른 말씀을 꼭 하셔야 하는, 어떻게 보면 융통성이 없으신 분이어서
그런 문제가 발생할때마다 엄마와 아빠는 한번씩 크게 싸우신다.
바른 말씀은 꼭 하셔야 하고, 유머러스하신 아빠의 모습에 자꾸 노 대통령님의 모습이 겹쳐졌다.
언젠가 지금처럼 또 후회하게 되겠지만,
미리미리 효도해야지.
아빠한테 말로는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말...
'아빠, 사랑해요.'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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