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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듣고/책장.넘기는.소리

의식 속의 나 따라가기 ... 뉴욕 3부작 / 폴 오스터



   뉴욕 3부작 The New York Trilogy / 폴 오스터 / 황보석 역 / 열린책들


산보를 나갈 때마다 그는 마치 자신을 뒤에 남겨두는 듯한 느낌이었고, 거리에서의 움직임에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자신을 하나의 눈으로 축소시킴으로써, 생각을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중에, 그 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시간이 있을 때, 퀸은 어떻게든 그녀와의 만남을 재구성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억이 하는 일인데, 그가 알기로 기억된 일이란 사실을 뒤엎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그는 기억된 일이라면 어느 것도 분명하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자신의 의식이라는 짐을 지고 이리저리 걸어 다닐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유년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눈은 그대로 남는다. 그래서 눈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론적으로는 사진에 나와 있는 소년의 눈을 보고 노인이 된 뒤의 그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외부 세계에 휩쓸려 들어 바깥 세상에 몰두함으로써 발작적으로 엄습하는 절망감을 어느 정도는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배회는 마음을 비우는 행위였다.

이제 스틸먼은 어디론가 사라져 그 도시의 일부가 되었다. 하나의 반점, 마침표, 끝없는 벽돌담 속의 벽돌 한 장이 되고 말았다.

제 생각으로는 돈키호테가 일정의 실험을 했었던 것 같아요. 자기 친구들이 얼마나 잘 속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던 거죠. 그는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세상에다 대고 아주 확신에 차서 그러는 것처럼 거짓말과 허튼소리를 늘어놓는 일이 가능할까? 풍차들은 기사들이고, 이발사의 대야는 투구고, 인형은 진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들이 자기의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그 말에 동의를 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자기의 말을 재미있어 한다면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어느 정도까지 참아 낼까? 그 대답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얼마든지 다 참아 낸다는 겁니다. 우리가 아직까지도 그 책을 읽는다는 게 그 증거지요. 그 책은 지금도 여전히 아주 재미있어요. 그리고 결국은 그것이 - 재미가 - 누구나가 책에서 얻어내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밤과 낮은 상대적인 단어에 불과할 뿐, 절대적인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 어느 때건 밤과 낮은 동시에 있기 마련이니까. 우리가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동시에 두 곳에 있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길 건너편에서 블랙을 염탐하는 일이 블루에게는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 같고, 그래서 자기가 그저 남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삶의 속도가 그처럼 극적으로 느려져 있어서 블루는 이제 전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놓쳐 버렸던 것들까지도 볼 수 있다.

다음 순간 블루는 문든 자기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아차리고 자기가 왜 그처럼 감상적이 되었는지, 그 오랜 세월 동안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던 이 모든 생각들이 왜 연달아 계속 몰려오는지 궁금해한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는 자기가 그처럼 된 것에 당황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이야기를 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법이니까.

그 만남은 이 사건의 일부인가 아닌가? 본질적인 것인가 부수적인 것인가?

다음에 다시 걸면 되지 뭐. 그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다. 얼마 뒤에 곧.

더 깊이 관련될수록 그만큼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를 궁지에 빠뜨리는 것은 관련이 아니라 단절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일은 영원히 계속 이어지게 돼. 블루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 일은 바뀔 수도 없고 다른 어떤 일이 될 수도 없어.

그녀가 아는 한 그는 죽었을 수도 있는데 그가 어떻게 그녀를, 살려고 애쓴다는 이유로 탓할 수가 있을까? 그는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느끼지만 슬픔보다는 자기가 그런 짓을 했다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 자신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고, 그렇다면 정말로 그 일이 끝의 시작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어느 쪽이건 간에 사건 해결의 열쇠는 행동이라고, 그는 할 수 있을 때마다 계속해서 이것저것 들쑤여야 한다. 그래서 마침내 구조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할 때까지, 언젠가 이 불쾌한 일 전체가 와해되고 말 때까지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쪼아 나가야 한다.

글을 쓰는 건 혼자 하는 일이니까요. 그게 삶을 다 차지하죠. 어떻게 본다면 작가에게는 자기의 삶이 없다고도 할 수 있어요. 설령 있다고 해도 실제로는 없는 거죠. 또 다른 유령이로군.

이후로 블루는 자기가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건 그 친구가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오. 블랙이 여전히 외면을 한 채로 대답한다. 그 친구는 내가 자기를 감시해 주었으며, 자기가 살아 있다는 걸 내가 입증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거요.

내가 하기로 되어 있는 일을 나 자신에게 떠올려 주기 위해서. 내가 어느 때건 고개를 들기만 하면 당신이 거기에 있었지. 언젠가 보이는 곳에서 눈길을 내게 고정시킨 채 나를 지켜보고 나를 미행하고 하면서. 당신은 나한텐 이 세상이나 다름없었어, 블루. 그리고 나는 당신을 내 죽음으로 바꿔 놓았고, 당신은 변치 않는 유일한 존재, 모든 것을 뒤바꿔 놓는 유일한 존재지.

진실은 내가 그랬으면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는 아주 일찍부터 자아를 형성했고, 우리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쯤에는 이미 명확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 어른이 되기 전에 이미 자기 자신이 되었다는 뜻이다.

나는 팬쇼와 그토록 가까웠고, 그처럼 열렬히 그를 찬미했고, 또 그와 같아지기를 그토록 간절히 원했지만, 다음에는 느닷없이 그가 나랑 걸맞지 않으며, 자기 안에 갇혀 사는 그의 생활 방식이 내가 살아야 할 방식과 절대로 맞아떨어질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 들곤 했다.

어떻게 본다면 가장 큰 고통을 받은 것은 팬쇼였다. 다만 팬쇼에게는 자기의 고통을 겉으로 드러낼 기회가 없었던 것 뿐이다.

이번에도 그것은 순전히 우연하게 이루어진 일이었다. 거기에 파놓은 구덩이가 하나 있었고, 팬쇼는 그 구덩이가 자기를 부른다고 느꼈던 것이다. 예전에 누군가가 말했듯이, 이야기는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생겨나는 법이다. 경험 역시 아마도 그와 마찬가지로,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생기는 모양이다.

소피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마치 다른 모든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내가 진실로 있어야 할 곳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어느 곳이었으며, 설령 그곳이 내 안에 있다 하더라도 거기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곳은 자아와 비자아 사이에 있는 작은 틈이었고, 난생 처음으로 나는 그 어디인지 모르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의 정확한 중심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떠나고 싶었던 것이며 떠나고 말았다. ... 죽은 사람이 공식적으로 사망선고를 받기까지는 7년이 걸리는데,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삶은 계속되기 마련이오.

마치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때문에 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기만이다. ... 누구도 경계를 넘어 다른 사람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누구도 자기 자신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바로 그 간단한 이유로.

삶은 대체로 이리저리 갑작스럽게 방향을 바꾸며 떠다밀고 부딪히고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 한 방향으로 나아가다 중도에서 갑자기 방향을 틀어 옴짝달싹 못하거나 이리저리 떠돌거나 다시 출발을 하면서. 알려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원래 가려고 했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에 이르고 만다. ... 하나하나의 삶은 그 삶 자체 이외의 다른 어떤 것이로도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이며, 그것은 곧 삶이란 이치에 닿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죽음은 행복의 유일하고도 참된 중재자(솔론의 말)일 뿐 아니라 삶 그 자체를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척도이기도 하다.

팬쇼를 죽이는 일은 아무 의미도 없을 터였다.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그를 찾아내어 살아 있게 내버려두고 떠다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제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가면을 쓰고 있을 필요도, 끝없이 혼자 바쁜 척 부산을 떨면서 소피를 속일 필요도 없었다. 제스처 게임은 이제 끝났고, 드디어 나는 있지도 않은 책을 버릴 수 있었다.

사흘째가 되자 나는 내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그 집에서는 혼자일 수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팬쇼가 거기에 있었다. 내가 아무리 그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느낄 수 없었다. 삶의 감각이 내게서 빠져나갔고, 그 자리에는 기적과도 같은 행복감, 혈관을 흐르는 달콤한 독, 인사불성 상태에서 풍기는 것이 분명한 냄새가 대신 들어섰다. 이제 내가 죽음을 맞는 순간이로군.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금이 바로 내가 죽는 때야.

내 계획은 언제나 가만히 앉아서 시간이 다 가도록 하는 거였는데.




서점엘 가면 스테디셀러란에 늘 있는 책 중 하나.
남들 그렇게 많이 읽는 책이라면 나도 한번 읽어보자 싶은 마음에 사두고는 그것도 다른 책들 읽고 나서 읽기 시작했는데,
시작 부분이 심상치 않았던...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아닌, 사람의 머리속 생각을 따라 가는 서술.
그리고, 일어나는 사건들이 일상인듯 하면서도 비현실적인,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정말 폴 오스터일까 라는 의문이 생겼던.
정말 이 글을 쓴 사람은 폴 오스터라는 필명을 쓰고 있는... 퀸, 혹은 블랙, 팬쇼가 아닐까 싶었던...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이 과연 내가 원한 것인가.
내가 원하는 삶이 정말 이런 것인가.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이라는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았던가, ... 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했던,

몇 년 쯤 뒤에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또 다른 느낌이 들 것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