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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듣고/책장.넘기는.소리

실패한 인생, 단 하나의 성공 보장 ... 자살가게 / 장 튈레


   자살가게 / 장 튈레 / 성귀수 역 / 열림원


한쪽에는 자살가게, 다른 쪽에는 실패한 삶을 사셨습니까? 저희 가게로 오십시오. 당신의 죽음만큼은 성공을 보장해드리겠습니다! 라는 문안이 새겨진 쇼핑백이다.

"벌받고 있는 겁니다. 학교에서 자살자에 대한 질문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근데 쟤가 뭐란 줄 아십니까? 아 글쎄, '자, 살자!'고 하는 사람이라나 뭐라나, 그랬다는 거 아닙니까!"

"... 그동안 동물들을 팔아서 조금 문제가 있었거든요. 무슨 문제인고 하니, 사람들이 워낙 외롭다 보니까 우리가 판 동물들한테 필요 이상으로 애착을 갖더라 이겁니다. 근데 참 신기한 것이, 동물들이 그걸 느끼고는 사람을 물지 않더라는 거예요. ... '드니즈가 내게 사는 맛을 다시 찾아주었다니까요......' "

"엄마! 왜 저더러 방울뱀처럼 입안에 독을 머금으라고 시키셨죠! 왜요?! 왜?! 그렇게도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세요?" "그건 말이다, 우리가 하는 일이 워낙, 좀 그렇다 보니까, 앞날이란 걸 내다본다는 것이 말이다, 말하자면 단기간 벌어질 일에 보다 익숙해져 있는 거지."

그러고 보니 완연한 황혼이다. 자갈들이 푸르스름해진다. 세상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실감나는 저녁, 누군가에겐 여전히 으스스 어깨 움츠러들 만한 시각이다. ... 하나의 평행봉으로부터 모든 균형이 이루어졌을 때, 미시마는 철사줄 위에서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꼈다. 그런데 막상 알랑이 사라지자, 균형을 맞춰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뤼크레스, 아릴린, 미시마, 뱅상, 그 모두에게 알랑의 존재가 아쉽다. 마치 삶의 의미가 아쉬운 것처럼...

"삶이란 있는 그대로의 삶 자체를 말하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의 가치가 있는 것이죠! 서툴거나 부족하면 서툴고 부족한 그대로 삶은 스스로 담당하는 몫이 있는 법입니다. 삶에 그 이상 지나친 것을 바라선 안 되는 거예요. 다들 그 이상을 바라기 때문에 삶을 말살하려 드는 겁니다!"

"식사 안 해요, 미시마?" "응, 배고프지 않아..." 그러고 보니 사람노릇도 참 오래 해왔다. 모든 걸 단념한지도 참 오래다. "... 잠이나 좀 잘래." 어차피 내일이면 또 살아야 할 테니까...

날이면 날마다 인간의 머리를 꿈으로 가득 채우는 이 어린 소년은 세상 만물을 기분 좋게 적시며 졸졸 흐르는 한 줄기 시냇물과도 같다. 그는 우리를 미증유의 신천지로 이끄는 저 아름다운 수평선과도 닮았다. 두 발은 이불 속에서조차 모험 충만한 경주를 하듯 뒤첮이는데, 방에 가득한 이 향기는... 아이들의 몸에서 나는 상큼한 향기다. 그의 잠은 기발한 발상이 톡톡 튀는 기적 같은 현상으로 가득 채워져 있음이 틀림없다. 오, 아이의 머릿속이야말로 온갖 신기한 동화가 움트는 요람이거늘!

뤼크레스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통해 바로 그러한 부재의 능력, 갑자기 자기 앞 아주 먼 지점을 응시하는 듯한 처신방법을 터득해주었다. 그것은 유치원 마당 벤치에 홀로 앉아 한도 끝도 없이 엄마를 기다리던 때처럼 머릿속에 커다란 구멍 하나를 만들어놓는 일이다. 그러면서 스스로 돌이 되어가고, 살아있는 자기 몸뚱어리를 더는 느끼지 못하며, 심지어 숨도 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 상태에 머무는 일이다. 그러다 엄마가 나타나면 이미 딸은 살아 있지 않은 무언가로 거기 앉아 있는 것이다.

지금 보이는 저들 모두의 행복과 미래에 대한 갑작스런 신념, 저 얼굴들에 빛나는 환한 웃음이야말로 알랑의 일생일대 걸작이나 마찬가지다. 2미터가 남자 누나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린다. 튀바슈 부인은 난데없이 어린 시절 유치원 마당에 들어서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듯 가까워지는 아들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제 알랑의 임무는 완수된 것, 순간... 그는 손을 놓는다!



연예인들의 자살로 한참 시끄러웠던 지난달,
휴가때 읽었던 책이 이 책이다.

실패한 인생의 단 한가지 성공이 보장된 자살.
자살 사이트도 생기고, 커뮤니티도 있다던데... 정말 조만간 이런 가게가 생기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 이런 가게가 이미 있을지도...

그런데... 가족들에게 모두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었던 알랑은...
왜 마지막 순간... 손을 놓고 자살을 했을까?
다... 아무 소용 없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