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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을 세워야하는 30대 여성 직장인'으로 다시 시작하기 ... 매일매일 자라기 / 김진애

  매일매일 자라기 / 김진애 / 서울포럼


의식도 철학도 내 일상의 한부분이다.

삶의 체험을 풍요롭게 하고 이미지를 풍부하게 해주는 체험은 바로 길을 잃어보는 데서 나온다. 길을 잃자. 그리고 우리의 몸으로 도시와 건축을 느껴보자.

건축 보기의 가장 좋은 눈은 '일상의 눈'이다. 즉 그 건축을 매일 접하고 쓰는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홀로 도시를 기웃거리는 즐거움 그 전략 ... 하나, 공간에 점찍기. 볼 것을 지도에 꼭꼭 찍어둔다. 둘, 공간에 선 그리기. 꼭 걸어보아야 할 거리를 표시해둔다. 셋, 공간에 면 표시하기. 산책삼아 걸어 다닐 동네를 표현해 놓는다. 넷, 시간에 점찍기. 꼭 필요한 시간들이 있다. 모든 시설의 개장 시간들이다. 다섯, 시간의 매듭 남겨놓기. 중간 여유 시간을 남겨놓는 일이다.

과정을 보면서 완성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 현장이 진행되면서 조정해야 할 것을 미리미리 발견하고, 시행착오를 적시에 고쳐 가는 능력이다. 고쳐야 할 것을 정확히 적시에 고칠 줄 아는 것, 그것이 진정한 현장 감각이다.

그림 그리기에는 세 가지 목적이 있다. 자기생각 발전,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프리젠테이션. ... 컴퓨터의 역량은 빠른 복제, 빠른 취합, 빠른 생산에 뛰어난 반면, 생각하기에는 그리 뛰어나지 못하다. ... 컴퓨터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생각을 도와주고 인간의 시간을 아껴주는데 그 역할이 있다.

길을 알려주기 위한 것, 구성을 알려주기 위한 것, 당신의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한 것, 주요한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것,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 등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다양한 다이어그램을 그려보라. ... 현실에서는 이런 상세한 작업을 거꾸로 돌려보는 눈, 즉 단순화 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디테일에 주눅 들지 말고 전체의 맥을 단순화시켜 보는 노력이 다이어그램적인 사고의 시작이다.

도면 베끼기란 아이디어를 손으로 익혀본다는 뜻이다. 손으로 익히면 몸에도 익는다. 몸으로 익히면 머리에도 또 가슴에도 익는다. 말로 아무리 해도 소용없다. 직접 손으로 많이 해볼수록 효과가 커진다. ... 작업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프로젝트 초기에 한 번은 손으로 직접 베이스 도면을 베끼며 그려봐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설계할 건물만 달랑 그리는 것이 아니라 주변까지도 직접 그려보면 감이 달라진다. 훨씬 더 체험이 구체적이 되는 것이다. ... 결국 우리는 만들기 위해서 도면을 보고 또 베껴보는 것이다.

인간은 좋은 신처럼 하늘 위 뿐 아니라 인간의 눈높이를 가지려는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

모형은 손을 쓰게 만든다. 비유하자면, 바둑을 두는 고단수 기수, 실물 제작을 하는 목공, 구조를 세우는 시공자, 재단과 봉제를 하는 패션 디자이너처럼 손과 눈을 같이 가게 하는 이점이 있다. 그러니 부디 자신의 손으로 모형을 직접 만들어보라.

땀나는 작업을 꼭 해보자. ... 땀의 귀중함을 배우며 디테일을 익혀가자.

건축인이란 다르다. 전체를 보면서 부분을 보고 부분을 보면서 전체를 보는 것이 그 역할이다. 세부 부문의 기술적 사항에 대해서는 특수 전문가를 못 따라가더라도 여러 부문들과의 접합, 서로의 상관관계, 전후좌우를 살펴가면서 교통정리를 잘 해주는 역할이 건축인의 기능이다. 건축인이 되어가는 훈련이란 바로 조정, 통합, 지휘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 부디 손과 머리를 같이 쓰자.

지식의 양을 과시하지 말라. 내가 아는 것은 대개 남도 이미 안다고 가정하는 것이 옳다. 물론 지식에 있어서다. 생각에 있어서는 다르다. 자기가 상대방보다 더 많은 지식이 있다고 전제하지 말라는 뜻이다. 지식의 양으로 승부하기에는 요즈음 세상에는 지식의 양이 너무도 풍부하다. 다만 아는 것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면 완전히 다르다. 바로 '지혜'다. 남이 한 말을 되풀이하지 말라. 원론에서 맴돌지 말라. 상투적인 이론이나 개념적인 단어를 쓰지 말라.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되 자신의 해석을 하라. 지식의 함정에서 벗어나라. 지식은 넓되 또 깊어야 한다. ... '객관적 설득력을 가진 주관적 해석'이 있을 뿐이다. ... '객관과 주관, 사실과 해석의 사이'에서 적절한 줄타기를 해보자.

'기능, 프로그램, 공간, 건축요소, 물리적 형태, 기술적 요소'로 도시와 건축을 보지만 말고 그 안에 담겨있는 삶의 이야기로 풀어보는 습관을 가지자. ... 자신의 일상, 사진이 속해있는 사회를 읽고 느낄 수 있을 때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묻기에는 적재, 적소, 적기가 있다. 아무때나 묻는다고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누구에게 무엇을 물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 리듬을 읽는 기술을 익히기 위해 끊임없이 물어보라. 질문 자체에 답이 숨어있다. 좋은 질문을 하면 좋은 답을 이끌어낼 수 있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뜻은 결국 '우리가 되기'를 좋아한다는 뜻일 것이다. ... '사람 만나기'와 '사람' 자체를 적극적으로 좋아하는 것, 이것이 사람을 대하는 첫째 자세일 것이다.

모든 만남에서 자신이 '하나의 사람'으로 비춘다는 사실을 의식하자.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새 사람일 뿐 아니라 우리 역시 항상 새 사람으로 비치며 언제 어디서 그 사람을 더 깊은 계제로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것을 알고 행동하자. ... 언제 어디서나 그 누군가 나를 보고 있음을 의식하자. 깜짝 놀랄 때가 그 언젠가 내가 쓴 글을 읽은 사람들, 방송을 듣거나 본 사람들이 나를 평가할 때다.

우리사회의 사람관계란 '우리'와 '남'을 뚜렷이 구분하는 특성이 강하다. ... '우리'라는 개념이 보다 합리적인 개념, 본질적인 '인간 대 인간' 개념으로 넘어가는 단계에 있는 것으로 믿고 싶다.

사람이란 그 모두다. 무한한 자원이자 또 무한한 걸림돌이다. 사람과의 '연'을 만드는 자신만의 방법을.

우리는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다시 우리를 만든다.

'자신의 역사가 자신'이라는 말은 확실히 진리다. ... 기록이란 그래서 자신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자신이 어디에 서있는지, 자기가 한 일이 무엇인지를 기록하는 것이다. ... 건축가 렘 쿨하스의 <Small, Medium, Large, X-Large> 결과로서가 아니라 과정으로서, 어떤 회의를 했고, 자신은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개념을 가졌으며, 어디에서 전례를 찾았으며, 어떻게 개념의 발전을 가져왔나, 그림과 글로서 채운 것이다. ... 특히 전문인으로서 '작업의 기록'이란 무척 중요하다. 자신의 발전을 알기 위해서 필요하고, 자신의 변화를 알기 위해서 필요하며, 또 남에게 자신의 작업을 설득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사람이 있을 때 어떠한 공간의 변화가 일어날지 상상해보자. 특히 '제 눈으로' 볼 때까지 진정한 판단은 유보할 일이다.

카메라의 부담에서 벗어나면서 여유가 생기고, 시간의 여유가 생김에 따라 이른바 '마음의 눈'이 따라서 뜨이는 것을 느낀다. 카메라가 있을 때는 항상 '촬영 헌팅'을 다니는 듯한 느낌인데, 카메라가 없으면 '보기를 즐긴다'는 느낌이 편하다. 그러니 가끔씩은 카메라에서 벗어나서 온전히 우리의 눈만 믿고 다니자. 그러나 찍기도 겁내지 말자. 많은 이미지를 보고, 담고, 또 머리에 찍어놓자. 비로소 많은 경험이 쌓인 뒤에야 자신의 가슴에도 의미 있는 이미지가 새겨진다.

'작업 목록' 또는 '작업기록'으로서 자신의 작업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자료가 포트폴리오다. ... 목록만을 보여주지 말고 자신이 활동한 역할을 꼭 쓰라는 것이다. ... 이력서를 통해 상대가 알고 싶은 것은 경험의 구체성임을 잊지 말자. ... 젊은 날의 하루하루란 마치 빠르게 자라는 덩굴과도 같다. 부디 그 덩굴이 자라는 모습을 담아라.

자신의 체계를 잡는 것, 이것이 책을 읽는 나의 기본자세다.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제대로 안다? 뼈대가 튼튼해서 판단력과 분별력이 생기고 새로운 지식이 들어와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내부에서 비판 기능이 작용함을 뜻한다. 바로 '틀'이다. 지식의 틀, 판단력의 틀이다. 책보기, 특히 초심자의 책보기는 틀 세우기에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 '어떤 책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진정한 창조란 궁극적으로 지적인 파워에서 나온다. 고민이 많아야 나온다. 책읽기란 해법을 찾기 위해서라기보다, 고민을 키우고 의문을 생생하게 하는 지적 파워를 기른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의 전문 분야에서 자신의 생각을 세우기 위해서 읽어야 하는 책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통상 건축인은 인간. 사회.정치.경제.자연.기술.문화.예술 등, 인간사 전 분야에 대한 눈을 갖추어야 한다고 한다. ...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 인간사회를 이루는 역학에 대한 기본 시각을 가지는 것은 필요하다. 삶의 즐거움을 위해서 또한 전문 분야에 대한 안목을 키우기 위해서도 그러하다.

자신의 테마를 정하라.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세우기 위해서 필요한 테마를 정하고, 그에 대해 세 권의 책읽기를 계속한다면 일하며 사는 우리 인생은 충분히 의미 있으리라.



지난 봄.
타의에 의해 정치적이 되어버린 내가 자주 들르던 사이트가
다음의 '블로거뉴스', '김종배의 토씨'(지금은 '미디어토씨'가 된...), '김진애의 사람, 공간, 그리고 정치'였다.
종종 토론프로그램에 나와서 질끈 동여맨 머리에, 안경을 쓰고, 남자들을 압도하는 큰 목소리로,
시원시원하게 말할 줄 아는 아줌마 정도로 알고 있던,
그리고 그 아줌마가 내가 관심있어하는 건축일 하는 사람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던
'김진애'의 블로그를 자주 들르게 된건
그 당시 답답하던 마음을 그나마 뚫어주는 포스팅을 부지런히 올려주셨기 때문이었다.
종종, 그때 당시는 거의 매일 들러, 새로 올라온 포스팅을 읽고 부지런히 달아주시는 댓글도 읽다가 
본인이 쓰신 책을 선착순으로 사람들에게 선물할 수 있도록 보내주시겠다는 공지글을 보게 되었다.
보고싶은 책을 선물받는 일은 내가 참 좋아하는 일인데,
물론 아쉽게도 내가 받을 수 있는게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에게 선물할 수 있도록 보내주시겠다는 거지만,
그래도, 가까이 있는 누군가에게 선물하면 나도 빌려 읽을수 있겠다 싶어서 
회사 후배에게 '매일매일자라기' 책을 선물해달라고 메시지를 남겼고,
곧 사무실로 그 선물이 배달되어 왔다.

선물받은 후배가 책을 읽으면서... 내용이 참 좋다고... 지하철 타고 왔다갔다 하며 읽는데... 그렇게 읽기 참 좋다고,
목차를 보니 또 마음에 들어서...
더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책을 사버렸다.

사회생활 벌써 10년.
워커홀릭 소리도 듣고, 성깔있는 노처녀 소리도 들으면서,
이 일을 계속 해야하나 자주 고민도 하고, 종종 슬럼프에도 빠질 때도
기껏 할 수 있는 일은 말 통한다 싶은 사람들과 술한잔 마시며 울고 웃고 그렇게 푸는 게 다였다.
어떻게 해야 일을 잘 하는 건지, 내가 하는 일이라는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같은 고민은 계속 쌓여있기만 했다.

세상을 보는 시각, 일을 하는 자세, 그리고 실질적인 기술, 책 읽는 방법 등
이런 책이 나의 대학시절에 있었다면 참 좋았을 거 같고,
이런 선배가 나에게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 같지만,
'중심을 세워야하는 30대 여성' 직장인으로 사회생활 10년인 나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새로운 힘을 낼 수 있는 용기, 새로운 방향성, 다시 시작하는 설레임 등.


실은, 고백하자면,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지난 7월.
이 책을 읽고, 얼마 안되어 사회생활 10년동안 최고로 힘들었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완전히 그로기 상태가 되어버려, 
이 책을 읽었던 기억도, 이 책을 읽으며 설레었던 느낌도, 에너지를 받았던 느낌도 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얼마전, <인생은 의외로 즐겁다>를 읽으며,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다시 되돌아왔다.


김진애 선배!
좋은 선배로 계속 남아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