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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본질 ... 사진의 문법 / 스티븐 쇼



   사진의 문법 The Nature of Photographs / 스티븐 쇼 / 김우룡 역 / 눈빛



하나의 사진이 보여지는 어떤 특정한 맥락이, 관객이 그 사진으로부터 이끌어내는 의미를 규정한다.

사진이 가지는 평면성(flatness), 테두리(frame), 시간성(time), 그리고 초점(focus)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사진의 내용과 구조를 결정한다. 그리고 하나의 사진을 읽어 내는 '사진적 문법'의 기초가 된다. ... 사진가는 이 요소들을 써서 세상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고, 자신들의 인식에 일정한 구조를 부여하며, 그 의미들을 명료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진은 한 개의 눈으로 보는 시각이다. 일점 시선인 것이다. 두 개의 눈으로 보는 우리의 일반적 시각과는 달리 깊이를 인지하지 못한다. 3차원의 공간이 일점 시선에 의해 하나의 평면에 옮겨질 때, 사진이 찍히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관계성들이 생겨난다. 뒤쪽에 멀리 있던 사물들이 앞에 있는 것들과 병치되는 것이다. 시선에 변화를 주면 상호관계가 변한다.

야외에서 사진을 찍을 경우, 사진가가 한 발짝을 옮길 때마다 재배치되는 시각적 병치의 복잡한 그물망과 마주치게 된다. 한 걸음을 옮기면 숨어 있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다시 걸음을 떼면 전방에 있던 한 대상은 후방의 다른 사물과의 거리를 좁히면서 압축되기도 한다. 한 발자국에 의해 깊은 공간이 드러나기도 하는가 하면, 다음 발자국에 의해 그 공간이 모호하게 사라지기도 한다. 이런 형편을 감안할 때, 사진가는 하나의 장면을 구성해낸다(compose)기보다, 오히려 한 장면을 해석해 나간다(solve)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하나의 사진은 반드시 테두리(edge)를 가진다. 그러나 세상은 테두리가 없다.

사진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은 시간 속에서 흘러간다. 이 시간의 흐름이 사진에 의해 끊길 때, 새로운 하나의 의미, 즉 사진적 의미가 생겨난다.

정신적 차원은 묘사적 차원과 물론 분리된다. 그러나 정신적 차원이라는 칼은 묘사적 차원에서의 여러 형식적 결정들이라는 숫돌에 갈려 그 날이 예리하게 벼려진다.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사진을 찍었냐는 시점(vantage point), 포함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이냐는 프레임, 셔터를 누른 때가 과연 언제였느냐는 시간성, 무엇을 초점면 내에 두고 강조하려 하는가의 초점 등의 선택이 그 결정들을 구성하는 내용이다. 초점(focus)은 정신적 차원과 묘사적 차원을 잇는 다리와 같다. 렌즈의 초점, 눈의 초점, 관심의 초점, 정신의 초점 등이 이 커다란 의미의 초점을 이루는 구성원들이다.

한 사진가가 가지는 관심의 강도와 성격은 정신적 차원에서 사진에 흔적을 남긴다. ... 사진가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이 도구들에 대한 선택 방향이 결정된다. 물론 이런 선택은 의식적일 수도, 직관적일 수도, 자동적일 수도 있다.

정신적 차원은 사진가가 사진을 어떻게 정신적으로 체계화시키는가에 의해 만들어진다. 사진가들이 사진을 찍을 때, 그들은 마음속에 정신적 기준들을 가지고 있다. 그 기준들이란 세상에 대한 이해, 제반 제약 조건에 대한 인식, 통찰력 등으로부터 만들어진다. ... 대부분의 사진가에게 정신적 기준은 무의식적으로 작용한다. 만일 이 정신적 기준을 의식화시킬 수만 있다면, 사진의 정신적 차원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 장의 사진을 만들어 갈 때 사물에 대한 나의 지각력은 나의 정신적 기준에 영향을 끼친다. 동시에 나의 정신적 기준은 나의 지각력을 조정한다. 그리하여 어떤 사진적 결정을 내릴 것인가에 영향을 미친다. ... 사진은 관찰력과 이해력, 상상력과 의지력이 복합적이고 지속적이며 자발적으로 수행되어 결과되는 총체적 관계성에 의해 만들어진다.

묘사적 차원의 주제는 정신적 차원을 통해 하나의 악보로 완성된다. 이 과정을 통해 사진 이미지는 한 장의 종이로부터 유혹적인 환상이 되기도 하고, 진실의 순간이 되기도 하며, 아름다움이 되기도 한다.




사진이라는 거에 한참 재미를 붙였던 5년전.
누군가 한번 읽어보라고 권해줘서 읽게 된 책.

많지 않은 텍스트지만, 쓸 데 없는 미사여구는 모두 없애고, 어느 단어 하나 허투루 쓰지 않은,
어떤 사진사에 의해 찍힌 사진의 본질에 대한, 사진을 찍는 행위에 대한,
깊은... 성찰.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와 함께 꼭 읽어봐야 할 텍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