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고듣고/책장.넘기는.소리

다시 좋아질 방법이 있는 세상 ... 연을 쫓는 아이 / 할레드 호세이니


  연을 쫓는 아이 / 할레드 호세이니 / 이미선 역 / 열림원


아무리 깊이 묻어둬도 과거는 항상 기어나오게 마련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난 26년 동안 인적 끊긴 그 골목길을 줄곧 엿보고 있었던 것 같다.

"다시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단다."

그런 다음 그는, 같은 젓을 먹고 자란 사람들 사이에는 시간조차 깰 수 없는 형제애가 존재하는 법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곤 했다. 하산과 나는 같은 젓을 먹고 자랐다. 우리는 같은 마당, 같은 잔디 위에서 첫 걸음마를 뗐고 같은 지붕 아래서 처음으로 말을 했다. 내가 처음으로 한 말은 바바였다. 그가 처음으로 한 말은 내 이름 아미르였다.

"네가 사람을 죽이면 그것은 한 생명을 훔치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아내에게서 남편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고 그의 자식들에게서 아버지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거짓말을 하면 그것은 진실을 알아야 할 다른 사람의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속임수를 쓰면 그것은 공정함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알겠니?"

부기가 가라앉자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도 아물었다. 곧 입술 위쪽으로 들쭉날쭉한 분홍빛 선만 남게 되었다. 그 다음 해 겨울에는 희미한 흉터만 남았다. 그것은 묘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그해 겨울부터 하산이 더 이상 미소를 짓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하시면 기꺼이 할게요." 마침매 그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눈길을 떨어뜨렸다. 지금도 하산처럼 한마디 한마디를 진심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똑바로 바라보는 일은 힘들다.

그가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진심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 역시 진심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잘 들으세요, 아미르 도련님. 괴물은 없어요. 그냥 좋은 날이에요." ... 하산은 1학년 책도 읽을 줄 모르면서 내 마음을 잘 읽었다. 그것이 한편으로는 심기를 불편하게도 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누군가가 항상 알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도 되었다.

결단을 내릴 단 한 번의 마지막 기회였다. 내가 어떤 인간이될 것인지를 결정할 단 한 번의 최종적인 기회였다. 골목으로 걸어가서-과거에 일이 있을 때마다 하산이 내 편을 들어줬던 것처럼-하산의 편을 들어주고 나한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도망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했다. 결국 나는 도망쳤다.

바바가 나를 꼭 끌어안고 앞뒤로 흔들어주었다. 그의 품에서 나는 내가 저지를 일을 잊어버렸다. 그러자 기분이 좋았다.

"네가 날 그만 괴롭혔으면 좋겠다. 가버렸으면 좋겠어." 내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가 내 말에 대들며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 따져주기를 바랐다. 그랬다면 상황이 더 쉬워지고 좋아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몇 분 후 문을 열었을 때 그는 그곳에 없었다. 나는 침대에 쓰러져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떠뜨렸다.

"온 세상이 호마이라와 내 적이었어. 그렇지만 명심하렴, 아미르 잔. 결국에는 세상이 항상 이기고 만다. 그게 세상 이치야. ... 어쩌면 그게 최선이었을 거야. ... 그녀가 고통스러워했겠지. 우리 가족은 그녀를 절대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거야."

"하산, 네가 그 돈을 훔쳤니? 아미르의 시계를 훔쳤니?" 하산이 귀에 거슬리는 희미한 목소리로 한마디로 대답했다. "예."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몸이 휘청거리고 가슴이 쿵하며 내려앉았다. 사실을 털어놓으려다가 그것이 나를 위한 하산의 마지막 희생이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곧 끝난다는 사실이 기뻤다. 바바가 그들을 쫓아낼 것이고 조금 고통스럽긴 하겠지만 나는 계속 살아가게 될 것이다. 깨끗이 잊어버리고 완전히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다시 숨을 쉬고 싶었다. ... 알리가 하산을 가까이 끌어당기더니 팔로 아들의 어깨를 감쌌다. 그것은 아들을 보호하려는 몸짓이었다. ... 그 순간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일을 바바가 했다. 바바가 눈물을 흘린 것이다. 다 큰 어른이 흐느끼는 것을 보자 약간 겁이 났다. 아버지는 울어서는 안 되는 법이 아니던가! "제발!" 알리는 이미 문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고 하산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바바가 그 말을 하던 모습을, 그 간청에 깃든 고통과 두려움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카불은 엿듣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뉘었다. 미묘한 것은, 누가 어느 쪽에 속해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바바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상을 사랑했다. 그러나 막상 미국에서 살게 되자 그에게는 위궤양이 생겼다. ... 내게는 미국이 과거를 묻을 수 있는 곳이었다. 바바에게 미국은, 과거를 애도해야 하는 곳이었다.

"하산이 오늘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좀 더 컸을 때 나는 시집을 통해 옐다가 고통당하는 연인들이 끝없는 어둠을 참고 해가 뜨길 기다리는 밤이라는 것을 알았다. 옐다는 연인이 오길 기다리면서 지새는 별빛 하나 없는 밤을 의미했다.

남자들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하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이중잣대가 어떤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그녀와 이야기하는 걸 보았어요?"라고 말하는 대신 "저런, 그녀가 그를 못 가게 붙잡고 있는 걸 보았어요?" 라고 말할 것이다. ... 상처는 치유된다. 그러나 평판은 그렇지 않다.

"조금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지바가 처음으로 직접 편지를 썼을 때,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가 너무 기특했고 내가 정말로 가치있는 일을 한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이해해요?"

그러나 결국 문제는 항상 다음과 같이 귀결되곤 했다.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의 과거에 대해 비난할 수 있겠는가? ... 나는 그녀가 부러웠다. 그녀는 비밀을 드러내고 이야기하고 해결했다. 나도 입을 열고 내가 어떻게 하산을 배신하고 거짓말을 했는지, 어떻게 그를 쫒아냈는지, 그리고 어떻게 바바와 알리의 40년 우정을 망가뜨렸는지 그녀에게 말해줄 뻔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소라야 타헤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나보다 나은 사람이었다. 용기가 그중 하나였다.

포플러 나무들이 몸을 떨고 귀뚜라미 소리가 정원 가득 울려 퍼지는 카불의 밤하늘처럼 드넓게, 그가 마음 속으로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게 진짜 아프가니스탄이에요, 선생님. 저게 내가 알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라고요. 당신요? 이곳에서 당신은 항상 관광객이었어요. 당신이 그것을 몰랐을 뿐이죠."

"글쎄요, 저는...... 저는 그런 종류의 작가가 아닙니다."

아세프가 씩씩거렸다. 이번에는 왼쪽 아래 갈비뼈가 뚝 부러졌다. 그렇게 우스웠던 이유는 1975년 겨울 이후 처음으로 내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이었다. 숨겨진 마음 한구석에서는 내가 이것을 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 너는 잘못을 저질렀다, 아미르 잔. 그러나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너도 어렸다는 것을 잊지 마라. 불안한 어린아이였다. 그때 너는 너 자신에게 너무 가혹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네가 이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양심이나 선이 없는 사람은 고통스러워하지도 않는다. 이번 아프가니스탄 여행으로 네 고통이 끝나길 빈다. ... 우리가 살았던 당시의 카불은 진실보다는 다른 것들이 더 중요시되는 이상한 세상이었다. ... 그리고 네 아버지가 가진 좋은, 진짜 좋은 자질이 회한에서 생겨났다는 점을 네가 이해해주길 바란다. 거리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고아원을 짓고, 어려운 처지의 친구들에게 돈을 주고 했던 그의 모든 행동이 사실은 속죄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죄책감 때문에 선에 이르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속죄일 것이다, 아미르 잔. 결국 신이 용서할 것을 나도 알고 있다. 신은 네 아버지와 나, 그리고 너 역시 용서할 것이다. 너도 그렇게 할 수 있길 바란다. 할 수 있다면 네 아버지를 용서하렴. 원한다면 나를 용서하렴.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너 자신을 용서하거라.'

"아프가니스탄에는 어린이들이 많지만 유년기는 거의 없다."

나는 바바가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신은 존재하고 항상 존재했었다. 이곳 복도에 있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눈에서 나는 신을 보았다. 밝은 다이아몬드 빛과 높이 솟은 광탑이 있는 하얀 사원이 아닌, 바로 이곳이 진정한 신의 집이며 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신을 찾게 되는 곳이었다. 신은 존재하며 신은 존재해야 한다.

여전히 눈을 반쯤 뜨고 있었지만 눈빛에 활기가 하나도 없었다. 다른 어떤 것보다 바로 그 눈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모든 게 다 지겨워요. ...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요. ... 어머니와 아버지를 원해요. 사사를 원해요. 정원에서 라힘 칸과 놀고 싶어요. 다시 우리 집에서 살고 싶어요. ... 차라리 날 가만 내버려두었다면...... 그냥 물속에 절 내버려두었다면 좋았을 거예요. ... 너무 피곤해요."

사진을 원래 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러다가 뭔가를 깨달았다. 방금 전에 했던 생각에도 내 마음이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랍의 방문을 닫으면서 용서라는 것이 그런 식으로 싹트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용서란 요란한 깨달음의 팡파르와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소지품들을 모아서 짐을 꾸린 다음 한밤중에 예고 없이 조용히 빠져나갈 때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닐까?

침묵은 버튼을 눌러서 삶을 완전히 꺼버리는 것이다. 소랍의 침묵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자진해서 지키는 침묵이나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의 주장을 나타내려는 항의자들의 침묵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두운 곳에 숨어서 온몸을 어둠으로 돌돌 감고 있는 사람의 침묵이었다.

"너를 위해서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 나는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지 미소에 불과했다.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괜찮아지지도 않았고, 어떤 것도 괜찮아지지 않았다. 그저 작은 미소에 불과했다. 놀란 새가 날아오른 직후에 흔들리는 숲 속의 나뭇잎 하나에 불과했다.





영화를 개봉했을때, 꼭 보고싶었는데, 바쁜 일정 때문에 끝내 보지 못하고
지난번 와우북페스티발에 갔다가 책을 발견해서 사두고는, 휴가 때 읽어야지 생각했다가,
긴 기차여행을 준비하며 챙겨넣은 책이 이 책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분쟁지역... 그렇게만 알고 있던 아프가니스탄의 모습이
주인과 하인이자, 늘 함께 였던 친구이자, 같은 젓을 먹고 자란 형제였던 아미르와 하산의 모습으로 눈앞에 그려졌다.

역사의 소용돌이와 큰 이념 속에서 개인은 나약할 수 밖에 없지만,
그 역사와 이념도 개인의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고, 다시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위안이 된다.

태어나면서 엄마를 잃고, 그것이 본인 때문이며, 그 때문에 아버지가 자기를 미워하는게 아닐까 생각하는...
그래서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파란색 연을 가지고 꼭 돌아가야 했던...
그 골목길에서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어린 아미르.
소설은 그의 시선으로 어린시절의 카불과 분쟁이 시작된 후 달라진 카불, 그리고 미국, 그리고 다시 돌아온 카불을 보여주는데...
아미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도련님을 위해 천만번이라도 그렇게 하겠다고, 진심 밖에 말할 줄 모르는 하산.
태어나면서부터 하인이라는 신분을 받아들여야하고, 신분의 차이 때문에 모든 불합리함과 모욕을 감당해야했던,
진심으로 믿었던 아미르가 자신을 도둑으로 몰았을 때, '네'라고 대답했던,
그러면서도 다시 아미르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던, 그의 마음은...
본인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바바의 마음은...
사랑했던 여인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라힘 칸의 마음은...
그 중에서도... 모두 사라지고, 혼자 남겨진, '모든 게 지겨워져' 침묵을 선택한 어린 '소랍'의 마음은...
그들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의 다음 소설이라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도 궁금해지고,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해서도 궁금해지는...

책 표지에 이 책이 훌륭한 성장소설이라고 한 신경숙의 코멘트에 대한 생각.
한 사람이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다 자랐다고만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같은 개념에서 본다면, 세상에 성장소설 아닌 소설이 어디 있을까.
어느 소설이든 사람들은 갈등을 하고, 그 갈등을 해결하면서 상처받고 위로받고 치유하면서,
소설속 주인공도, 소설을 읽는 사람도 어느 정도는 '성장'한다는 점에서 모든 소설은 '성장소설'일 것이다.
내가 '성장소설'이라는 범주를 너무 작게만 보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냥 단순하게 성장소설이라고 하기엔 이 책엔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나의 휴가를 풍부하게 해주었던 좋은 책.

영화를 꼭 봐야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