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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듣고/책장.넘기는.소리

기다려지는 그의 다음 이야기 ... 장진 시나리오집 / 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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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 시나리오집 / 장진 / 열음사



<킬러들의 수다>

사람에겐 자기가 놓칠 수 없이 좋아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정우 형은 무스를 좋아했고 달리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오늘 어떤 여자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게 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킬러가 사람을 죽여야 되는 것도 참 당연한 일이다. 정우 형은 당연한 일들에 관해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이를 미워하는 만큼 누군가를 좋아한다. 그건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도망가는 상연의 눈에 어느 새인가 알 수 없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자신의 눈에 눈물샘이란 샘물이 있다는 걸 안 지 며칠 안 되어 형은 처음으로 눈물이란 걸 흘렸다. 눈물을 흘린 이유가 무섭거나 슬퍼서는 아니었던 거 같다. 형은 자기가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직업이 이렇게 누추할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고, 자신에게 소원을 말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건 사람이 세상을 사는 가장 큰 이유를 잃어버린 순간에 나는 눈물과 조금은 비슷하다.

사람들은 우릴 필요로 한다는 거... 그리고 우리 역시 그 이유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거... 사람들이 왜 그렇게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하는지는 아직도 난 잘 모른다. 어쩌면 영원히 알 수 없을지 모르겠지. 하지만 세상에서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며 산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아는 여자>

후... 이 지긋지긋한 놈의 코피... 만날 혼자 있을 때만 터진다.

눈 앞에 보이는 이연... 이는 동물원에서 사자우리에 이유 없이 들어가서 놀고 있는 토끼를 보듯... 마지막 재산을 털어 로또를 5만원어치 산 뒤 숫자를 맞춰보는 듯한 깊은 관심의 시선으로... 치성을 바라본다...

생긴 걸로 어떻게 그걸 아느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원래가 그렇다. 한 동네에서 오래 산 친구는 생긴 거나 스타일이나 말투나 상상력이나 모두가 닮아간다.

멋지잖아 임마... 우린 아웃카운트 잡으려고 던지는데... 동치성은 사랑 때문에 볼을 던졌잖아...

그녀는 그를 뚫어지게 쳐다봤고 그래서 둘은 사랑하기 시작했다. 뚫어지게 쳐다보기에... 사랑이라 믿었다.

그는 차가 생겼고 새로운 여자가 생겼고... 새로운 인생이 생겼다. 하늘이 두 쪽 나지 않는 이상... 해가 서쪽에서 뜨지 않는 이상... 그의 삶은 그렇게 원하는 대로 행복하게만 펼쳐질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날.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지고... 갈라진 하늘의 서쪽에서 해가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의 삶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벌어놓은 돈들이 없어져 가기 시작했고... 사랑하는 여자가 그를 떠나갔다. 그는 분노했고... 상처 받고 아프기 시작했다.

노래한다. 이연의 귀에다가 대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울음을 멈추게 하려는 의도인지 노래 잘한다 뽐내려는 의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치성의 노래가... 이연이 귓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눈물이 멈추고... 이연, 커진 눈 고스란히... 치성의 노래를 듣는다.

석 달밖에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고통은 그 석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거룩한 계보>

화장혀서 여수 뻘에 뿌렸어... 시간 잘못 맞춰가꼬 썰물에 가가지고... 밀물 될 때까장 대여섯 시간을 내가 모시고 지다렸다... 후후...
나도 울 아부지랑 고라고 오래 있어본 적 없는디... 고맙다야.

얼굴 상한 게 빠지라고 이 씨벌놈아...


<아들>

눈이 맑습니다. 눈곱이 안 낀 것을 보면 오늘도 울지 않은 모양입니다. 다행입니다. 한동안은 자면서 너무나 울어 그 눈물이 말라붙어 잠에서 깨어도 눈꺼풀이 안 떨어지곤 했습니다. 그럼 참 많이 속상합니다. 뭐 그리 후회되고 아플 것이 더 있어... 나조차도 모르는 시간에 통곡하고 울어대는 걸까...

무기수에게 가장 큰 고통은 기다릴 것이 없다는 겁니다.

달, '내가 바로 달이다'라고 외치듯 동그랗게...


<공공의 적 1-1 강철중>

아버지가 걱정하는 건 니가 말 안 통하는 놈들한테 얘기하는 법을 배우라고 학교에 보냈는데... 말 대신 손에 든 걸 휘두르면 뭐든지 쉬워진다는 걸 배울까봐... 그게 걱정이다.



장진 희곡집이 나왔을 때처럼...
이번 시나리오집도... 나오자 마자 바로 구입...

내가 좋아하는 그의 영화 <킬러들의 수다>와 <아는 여자>의 시나리오가 들어 있는...

<아는 여자>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기억나지 않는 장면이 있어서 다시 봐야겠고,
<킬러들의 수다>는 언제 다시봐도 늘 재미있으니... 전에 사둔 DVD로 다시 봐야지...


그의 다음 이야기가 또 기다려진다.

본인이 감독을 하면 흥행이 안되서 걱정이라던 장진이지만,,,
그래도 난 그가 계속 감독을 했으면 좋겠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의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사람은 그 밖에 없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