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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듣고/책장.넘기는.소리

엄마, 혹은 아빠 ... 도쿄타워 / 릴리 프랭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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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릴리 프랭키 작 / 양윤옥 역 / 랜덤하우스


'부모자식'은 계속해서 덧셈이지만 '가족'은 더하기뿐만 아니라 빼기도 있는 것이다. ... 뭔가 역할을 가진,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나. 부모로서의 나. 아내나 남편을 가진 나. 남자로서의 나. 여자로서의 나. 모든 것에 '자각'이 필요하다. 끔찍하게 귀찮고 무겁기 짝이 없는 그 '자각'이라는 것.

가난은 비교할 것이 있을 때 비로소 눈에 띈다. ... 착취하는 측과 착취당하는 측, 무시무시한 승부가 명확히 색깔별로 분류되는 곳에서 자신의 개성이나 판단력이 함몰되고 마는 모습에 빈곤은 떠도는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필요 이하로 비춰지는, 그런 도쿄의 수많은 이들의 모습이 가난하고 서글픈 것이다.

엄니는 부부간의 문제와 자신의 앞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여자로서', '어머니로서'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내다보고 있었을까. 기껏해야 약간의 교제 기간과 기껏해야 약간의 결혼생활을 거쳐 '어머니'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닌 인생을 보내게 된 데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었을까. 내 키는 자꾸 엄니와 비슷해져 가고 엄니는 자꾸 나이를 먹어갔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한참 떨어진 도시에서 사는 아부지는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내게는 그저 나만의 7년이 착실하게 지나쳐 갔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엄니의 그 7년은 그렇지 않았으리라. 별거를 빚어낸,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원인이 항상 엄니의 몸속에서 생생히 꿈틀거리고, 이렇게 할 걸, 저렇게 말할 걸, 하는 회한이 끊임없이 마음속을 오락가락하며 엄니의 시간의 흐름을 비뚤어지게 하고 옆길로 새게 하고 뒤로 돌리기도 하면서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쟈? 다양한 나라 사람도 있어. 다양한 사고방식이라는 것도 있고. 도쿄로 나가. 도쿄에 가면 훨씬 더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께. 그걸 보고 와."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 본 적도 없는 것들. 들은 적도 없는 음악. 맡은 적도 없는 향기. 느낀 적이 없었던 열등감. 매일 뭔가 긴장해서 손에 닿는 대로 열중했다가 녹초가 된 채로 하루가 지나갔다.

"그래? 그렇게 정했으면 됐잖여? 네가 정한 대로 해. 그렇기는 한데, 그림을 그리건 아무 것도 안 하건, 어떤 일에나 최소 5년은 걸리는 거여. 일단 시작하면 5년은 계속해. 아무 것도 안할 거라면 최소 5년은 아무 것도 안 하도록 해봐. 그 사이에 다양하게 생각을 굴려. 그것도 힘든 일이여. 도중에 역시 그때 취직했더라면 좋았다느니 어쩌느니 했다가는 너는 백수건달로서의 재능도 없는거여."

생선을 팔아 아홉 명의 자식을 키워내고 노후에는 누렇게 변색된 밥을 혼자 떠먹고 있던 외할머니. ... 잘 가시라는 것도, 고마웠다는 것도 아니었다. 뭔가 느낀 적이 없는 복잡한 심경이 도무지 말로 표현되지 않았다.

나 자신의 죽음, 다른 누군가의 죽음. 거기서부터 거꾸로 헤아려 올라오는 인생의 카운트 다운.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현실을 회피할 수도 도피할 수도 없다. 그런 때가 반드시,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누군가에게서 태어나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가는 이상, 나 자신의 손목시계만으로는 운명이 허락해 주지 않는 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 도쿄든 시골이든 어디서든 마찬가지야. 결국 누구와 함께 있느냐, 그게 중요한 일이라고.

엄니의 고함소리에 잠을 깨면 바로 옆의 부엌에서 된장국 냄새와 장아찌 향기가 났다. 엄니의 몇 개 안되는 짐 상자 속에는 엄니의 유일한 보물인 장아찌 항아리가 당연한 일처럼 들어 있었고, 이 집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매일 뒤적여주고 그날그날의 야채를 넣었다. ... 그저 평범한 일상이 성실하게 이어졌을 때 비로소 인간의 에너지는 풍성하게 생성되는 것이리라.

엄니와 나. 부모와 자식. 그 관계와 위치도가 조금씩 변해가는 가운데 이따금 엄니를 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생기곤 했다. 어머니라는 절대적인 베일을 벗어냈을 때 드러나는 한 인간으로서의 표정. 그건 엄니 홀로 좌절을 맛보았던 것, 마음속에 걸려있던 것들. 결코 완전하지 않은 한 인간의 탄식을 문득 깨닫는 일이 있었다.

어느 새, 둘이서 살아가는 우리 집은 날마다 다섯 공기씩 밥을 해댔다. 누군가 갑자기 찾아왔을 때 밥이 모자라면 안 된다면서 엄니는 항상 그렇게 밥을 많이 했다. 차츰 내가 집에 없어도 친구들이며 같이 일하는 이들이 엄니와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다. ... 찾아오는 사람마다 반드시 뭔가를 챙겨 먹였다.

희망사항이던 '언젠가'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다가오지 않지만, 몹시도 두려워하던 '언젠가'는 돌연히 찾아왔다.

엄니는 내내 아부지 앞에서는 그렇게 강한 면만 내보였던 게 아닐까. 그리고 아부지는 그렇게 강한 척하는 엄니만 보아왔을 것이다. ... 비단 아부지와 엄니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부부가 그렇게 서로의 어떤 면은 보여주지 않은 채, 서로 알아주지 못한 채,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움 속에 있는 우리들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근데, 책 표지에 있는 설명처럼 '지하철에서 읽는 것은 금물'이라는 표현은 나에게는 드러맞지 않았다.
읽는 동안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은 나는 우리 엄마를 사랑하지 않나?
나에게도 엄마는 충분히 고마운 사람이면서 귀찮기도 한 사람이지만,
나의 감상은 거기서 끝이었다.

나에게는 자식을 위해 한없이 내어놓는 엄마보다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최소한 5년은 꾸준히 해야한다고 말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보라고 말해주는 아빠쪽이 더 궁금했다.

영화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를 보지 못한(강조!!!)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누군가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를 꼭 보라는 말을 해서였고,
그렇다면 원작인 책부터 보자라는 생각이었는데,
이 영화 아무래도... 원작 때문이 아니라, 오다기리 죠 때문에 보게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