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 / 정민 작 / 푸른역사
추운 겨울 새벽, 입김이 나는 찬 방 이불 속에서 사각사각 눈 쓰는 소리를 듣는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제 집 앞 쓸다 말고, 절대 궁핍 속에서도 공부에만 몰입하는 젊은이가 안쓰러워 남의 집 마당까지 쓸어주던 그 키 작은 이웃 노인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잡다한 일에 치여 공연히 투덜대다가도 이런 글과 마주하면 산란하던 마음이 화들짝 돌아온다.
인터넷 시대에 세계의 정보를 책상 위에서 만나보면서도 천하의 일은 커녕 제 자신에 대해서조차 알 수가 없다. 정보의 바다는 오히려 우리를 더 혼란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할 뿐이다. 왜 그럴까? 거기에는 나는 없고 정보만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내가 소유한 정보의 양이 늘어갈수록 내면의 공허는 커져만 간다. 주체의 확립이 없는 정보는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무릇 유람이란 흥취를 위주로 하나니, 노님에 날을 헤아리지 않고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면 머물며, 나를 알아주는 벗과 함께 마음에 맞는 곳을 찾을 뿐이다. 저 어지러이 떠들썩하는 것은 나의 뜻이 아니다. 대저 속된 자들은 선방(禪房)에서 기생을 끼고 시냇가에서 풍악을 베푸니, 꽃 아래서 향을 사르고 차 마시는 데 과일을 두는 격이라 하겠다.
옛 사람은 벗을 두고 '제이오(第二吾)' 즉 제2의 나라고 했다. 내가 품은 생각을 그가 홀로 알고, 그의 깊은 고민을 내가 먼저 안다.
만남은 맛남이다. 누구든 일생에 잊을 수 없는 몇 번의 맛난 만남을 갖는다. 이 몇 번의 만남이 인생을 바꾸고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 만남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나일 수가 없는 것이다. ... 마음 맞는 벗들이 한자리에 모여 허물없이 흉금을 털어놓는 광경은 참 아름답다. ... 바라보기만 해도 삶은 기쁨으로 빛나고 오가는 눈빛만으로도 즐거움이 넘친다.
유춘오(留春塢), 즉 '봄이 머무는 언덕'이란 아름다운 이름의 이 집은 남산 아래 있던 홍대용의 거처였다.
슬의 소리는 맑고, 금의 소리는 그윽하다. 따로 들으면 맑은 것은 맑고, 그윽한 것은 그윽할 뿐이다. 하지만 합주를 하면 맑은 것은 깊어지고, 그윽한 것은 시원스럽게 된다. 깊으면 아득하고, 시원스러우면 화합한다. 대저 뜻이 너무 맑으면 절도가 있고, 소리가 너무 맑으면 처량하다. 절도가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고, 처량한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뜻이 너무 깊으면 생각에 잠기게 되고, 소리가 너무 그윽하면 희미해진다. 생각에 잠기면 근심스럽고, 희미하면 잦아든다. 맑은 것에 맑은 것을 보태면 소리가 격해지고, 그윽한 것에 그윽한 것을 합하면 소리가 펴지지 않는다. 둘다 잘못이다. 절도 있는 것이 깊어야, 짧던 것이 화합하게 된다.
- 홍원섭의 <김생의 그림 뒤에 쓰다(題金生畵後)> 중
옛사람들의 편지글을 볼 때마다, 과연 물질 환경의 발전이 삶의 질까지 향상시킬 수 있을까 하는 회의를 지울 수 없다. 물질의 삶은 궁핍했으되, 정신의 삶은 보석처럼 빛났던 선인들의 자취를 그들이 남긴 짧은 편지를 통해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 척독(尺牘)은 지금으로 치면 엽서쯤에 해당하는 짤막한 편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인연생기(因緣生起) ... 인연 따라 살다가 인연 따라 가는 것이지. 그러고 보면 눈앞의 모든 것은 헛것이기도 한 게지. 무(無)라, 무라. 세상은 하나의 큰 향로, 인연의 불씨 따라 제 지는 품성 따라 한 모금 연기를 피워올린 후 허공으로 스러져 자취도 없게 되는 것이지. 슬퍼하지 마라. 얻으려 하지 마라.
그림자는 삶의 그늘이다. 그림자는 허상일 뿐이지만, 실체가 드리우지 않고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 그림자는 실상이 빚어낸 허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연출하기에 따라 변형과 왜곡이 일어난다. 우리네 일상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 가을밤, 국화 화분 하나 앉혀놓고 깜깜한 방안에서 등잔에 불을 붙일 때, 그리하여 일순간 쏟아져나온 빛의 무리들이 만화경 같은 세상을 벽 위에 펼쳐 보일 때, 건조하고 답답하던 삶은 문득 생기를 얻는다. 사는 일이 답답하기야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무에 있겠는가? 다만 그때 그네들이 지녔던 여유를 우리가 지니지 못했을 뿐이다. ... 그저 주는 눈길에 사물은 결코 제 비밀을 열어 보이지 않는다. 볼 줄 아는 눈, 들을 줄 아는 귀가 없이는 나는 본 것도 없고 들은 것도 없다. 워낙 환한 조명 속에 살다 보니 이제 우리는 좀체로 제 그림자조차 보기가 어렵다. 도시의 밝은 불빛 속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림자는 삶이 빚어내는 그늘이다. 그림자가 없는 삶에는 그늘이 없다. 녹슬 줄 모르는 스테인레스처럼, 언제나 웃고 있는 마네킹처럼, 0과 1 사이를 끊임없이 깜빡거리는 디지털처럼 그늘이 없다. 덧없는 시간 속에 덧없는 인생들이 덧없는 생각을 하다가 덧없이 스러져간다. 도처에 바빠 죽겠다는 아우성뿐이다.
글로 쓰여지지 않고, 문자로 고정되지 않은 들을 읽고 쓸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천하 사물은 명문 아닌 것이 없다.
위순(委順)이란, 말 그대로 순리대로 내맡기라는 것이다. 몸에 고요를 깃들이고, 마음에 허공을 담으며, 분별지(分別知)로 세상을 가르지 않고, 자연의 법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면, 마음속에 잡된 생각이 일어날 까닭이 없다. 마음을 단련한다 함은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공부를 닦는 것을 말한다. ... 부지런히 닦지 않으면 거울은 금세 더러워진다. 마음 밭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차분히 가라앉혀 침묵을 깃들여야 한다. 생각을 걷어내야 한다. 그 끝에 깨달음이 있다.
어쨌든 허균은 어지러운 세상에서 그것을 벗어난 자유의 세계, 즉 신선의 꿈을 꾸고 있었다. 두 발은 땅을 딛고 있었지만, 그의 두 눈은 끊임없이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노닐던 곳을 어른이 되어 오는 것이 한 가지 즐거움이고, 곤궁할 때 지나갔던 곳을 뜻을 얻어 이르는 것이 한 가지 즐거움이며, 혼자서 갔던 곳을 좋은 벗을 이끌고 이르니 또 한 가지 즐거움이다.
- 정약용의 <유수종사기(遊水鐘寺記)> 중
원영 언니도 그렇고, 격물치지님도 그렇고, 다들 정민 선생님의 <미쳐야 미친다>를 극찬하시길래..
전부터 위시리스트에 있던 책을 주문해서, 얼른 읽었다.
읽으면서... 늘 역사시간에 왕들의 역사만 배워서,
역사 속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조선시대에도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는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게 반갑고,
그 사람들이 남긴 흔적을 찾아서, 그 흔적의 행간까지 파악해서 이렇게 전해주는 사람도 고맙고,
옛 사람들을 통해, 오늘의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지혜와 여유를 배울 수 있음에 기뻤다.
박제가, 허균, 정약용, 홍대용 등 알려진, 혹은 알려지지 않은 옛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요즘 조선시대 일반인들의 생활상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게중 괜찮은 책 좀 더 찾아보아야할듯...
괜찮은 책 추천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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