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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에 대한 시선, 편견, 이미지에 대해서 ...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 이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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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안의 오리엔탈리즘 / 이옥순 작 / 푸른역사



서양이 동양에 대해 가진 본질적인 이미지, 서양이 상상하고 날조하는 동양을 말한다.

칸트 이래 서구 사상에서 '신비한'이란 단어는 '이성적'이란 표현의 반대 의미로 쓰였다.

이미지는 모름지기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인식의 양태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다.

내가 아닌 타자를 보는 태도는 본래 이원적이다. 하나는 타자에게 동화하는 긍정적인 시각이며 다른 하나는 '내가 아닌 그 무엇'을 보는, 곧 타인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시선이다.

가장 큰 대비점은 문명과 야만이었다. 영국 식민통치 기간의 문학 작품은 인도인을 문명국 출신의 영국인과 대비되는 비합리적 야만인으로 묘사했다. 무능하고 수동적이어서 혼자서는 변화를 추진할 수 없고 타자의 도움을 통해서만 변화하거나 발전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외부의 개입을 바라면서 무시간적 공간에 살았다.

동양은 언제나 '여성적'인 존재로 그려졌고, 이는 모든 식민지가 비슷했다.

'세포이 난'으로 우리에게 잘못 알려진 1857년의 반영운동은 자신만만하게 앞만 보고 달리던 지배자에게 깊은 심리적 상흔을 남긴 엄청난 규모의 반(反)식민주의 투쟁이었다.

영국인이 먼 이방 인도에서 느끼는 위협은 유혹적이며 관능적인 여성의 위험성과 연결되었다. 오랫동안 서양인들은 동양을 베일 쓴 여성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이 매혹적이며 신비한 베일을 벗기고 싶은 욕망(식민화)과 베일 속으로 깊이 침투할 경우 여성(식민지)에게 사로잡힐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유혹적인 인도' '감염성을 가진 인도'라는 주제로 반복 표현되었다. 대개 소설에 등장하는 요부나 집시인 인도 여성은 영국 남성을 유혹하고 (성적으로) 접촉하지만, 서로 타자인 이들의 관계는 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여 언제나 인도 여성이 불구가 되거나 죽음으로써 끝이 났다. 이러한 소설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접근 절대 불가!'

식민정부가 희생자로 여긴 여성은 인도의 상층 여성 일부에 한정될 뿐 다수 여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 주로 브라만 여성이 행하던 사티를 불법화한 식민정부는 흰두교의 성서가 인정하는 자발적 사티는 정당화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였다. 이를 통해 신민주의 체제 유지에 필요한 전통과 보수주의를 장려하여 사회적 신분 상승을 꿈꾸는 일부 계층의 여성에게 새로운 억압을 가한 것이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위상은 같지 않다. 보여지는 인도는 사진에 박제되듯이 보는 자의 기억을 통해 보존되고 절대화된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이방인은 그곳 사람들의 삶과 시선을 마치 사진을 찍듯이 바라보는 관찰자에 불과하다.

인도의 힘든 현실이나 복합적이고 갈등이 많은 사회는 미학적 이미지의 뒤로 사라지고 슬픔이나 고통은 우리와 무관한 아름다움이 된다.

사실 여행자들은 인도인과 피상적인 접촉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인도는 공식 언어가 20여개 가까울 정도로 언어 장벽이 높은데다가 19세기의 여행자가 느꼈듯이 넓고 깊고 다양한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는 고단한 일상에서 도피할 수 있는 공간, 꿈과 같은 세상이다. 직접 빈곤이나 박탈을 맛보지 않은 독자나 여행자들은 춤추고 노래하는 부족의 원시적 삶이 인도인의 진정한 행복을 보장한다고 쉽게 생각한다. 인도는 차가운 도시에서 현대 문명에 찌든 우리가 잠시 찾아가서 쉴 수 있는 '고향'이어야만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서양이 누리는 지적 권위와 지배적 위치를 탈(脫)중심화하여, 말할 수 없는 변방을 '응시'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상은 서양의 독무대가 아니라 서양과 비서양이 모두 참여하는, 중심과 변방, 계층의 구분이 없는 곳이다. 거기에서는 우리도 타자나 지배자의 눈이 아닌 동료의 시선으로 다른 동양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내가 아닌 것들에 대한 시선, 편견, 이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 책

영국으로 대변되는 서양에서 바라본 동양 인도,
같은 동양인인 우리 문학과 언론을 통해 형성된 또 다른 동양 인도,
아니,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인도의 이미지에 대해서 날이 선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고
되돌아보게한건 나쁘지 않았으나,
읽는 내내 궁금했던 건, '그래서, 인도는? 동양은? 오리엔탈리즘은?'이었다.
문학 작품이야, 읽는 사람의 여러 상황, 사고방식, 보는 눈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밖에 없으니,
다른 거 다 빼고 인도에 대한 표현에만 중점을 두어 비판한다면 틀린 말들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실제했던 사건에 대한 언론의 사실보도에까지 그런 잣대를 들이대는 건 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유럽에서 폭염으로 사람들이 죽어갈 때,
중국에서 폭설로 물가가 치솟고 사람들이 갖혀있을 때,
그건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사실 보도이고, 이러한 보도를 통해 이미지가 형성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보도 자체를 하지말아야한다?, 혹은 이런 보도를 다르게 해야한다? 그건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고 내가 언론의 보도행태에 대해 만족한다는 건 아니다. 뉴스를 보지 않을 정도로 짜증이 난다.)

세상을 보는 시각 혹은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많은 문학과 언론이 영향을 주는 건 사실이다.
언론은 사람들이 균형잡힌 시선을 가질 수 있도록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보도를 해야하지만,
책을 읽고 신문을 보고 뉴스를 보며, 취사선택을 통해 균형잡힌 시선을 만들어 가는 건
최종은 개인의 몫일 테니.

이 책을 통해,
인도와 이슬람, 흰두교, 식민역사를 가진 다른 나라들, 다른 시대의 사람들
나 아닌 다른 것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같은 저자가 쓴 인도에 관한 책이나 이슬람에 관한 책 좀 읽어봐야겠다.

푸른역사라는 출판사 괜찮은거 같다.
나름 객관적인 시선에서 씌인 책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지난번 '유대인 이미지의 역사' 도 그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