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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가족의 의미는 없었다. 다만, 그녀 ... 즐거운 나의 집 /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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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 공지영 / 푸른숲


이상하게도 약한 모습을 자꾸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을 뭐랄까, 사랑하게 된다. 걱정하게 되고, 에잇, 왜 그렇게 못난 거야, 하면서도 머릿속에서 내쫓을 수가 없게 된다.

세상에 좋은 결정인지 아닌지, 미리 아는 사람은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어떤 결정을 했으면 그게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노력하는 일 뿐이야.

엄마는 정말 엄마에게 주어진 그 모든 운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들을 즐길 수가 있었던 것일까.

엄마라는 사람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 뭐랄까, 격의 없는 것, 자신이 나에 대해 가지는 사랑이 하늘로부터 받은 천부적 권리임을 굳게 믿는 자의 당당함 같은 것.

"어떤 순간에도 너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을 그만두어서는 안돼. 너도 모자라고 엄마도 모자라고 아빠도 모자라......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자람 때문에 누구를 멸시하거나 미워할 권리는 없어. 괜찮은 거야. 그 담에 또 잘하면 되는 거야. 잘못하면 또 고치면 되는 거야. 그담에 잘못하면 또 고치고, 고치려고 노력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수가 있는 거야. 엄마는...... 엄마 자신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냈어."

과거의 불행 때문에 나의 오늘마저도 불행해진다면 그건 정말 내 책임이다.

우리가 보는 것들 이면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감추어져 있는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때로 그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얼마나 치명적인가.

삶이란 건 참 이상하다. 어느 것도 지속되지 않는다. 슬픔도 기쁨도 노여움도 그리고 웃음도.

이상한 일이다. 무엇이든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가진다는 것은 세상을 바꾸어버리는가보다.

사랑하고 결혼하고 너희 같은 아이들 낳고 울고 웃고, 그리고 혹여 나쁜 결과가 오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어 ... 나중에 알았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는데 그건 시간이었어. 그 사람이 그 일을 당한 것과 나중에 훌륭한 은수자가 된 그사이의 시간. 우리에게는 베일에 싸여 있는...... 그러나 그가 온전히 혼자 견디어야 했을 그 시간."

엄마와의 생활이 익숙해지자 우리는 조금씩 틈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로에 대한 조심스러움, 서로에 대한 호기심, 서로에 대한 기대들이 어느 정도 충족되거나 그렇게 될 가망이 없다고 포기하자마자, 비로소 생활이라는 것이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괜찮다. 위녕,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아.

내가 그냥 나여도 된다는 그런 안도감은 아니었을까.

유치한 것이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한다. 밥이 그렇고 잔돈이 그렇고 아주 작은 따돌림이 그렇다.

실은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심판이 아니라, 때로는 정의보다는 사랑이고 이해라는 것

울고 웃고 죽고 살고. 산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이렇게 한순간에도 수많은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다. 뭐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싸우고 화해하고 근심하고 기뻐하며 울다가 웃는다...... 하지만 겪는 사람에게 그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었다.

"... 누가 그러더라구, 집은 산악인으로 말하자면 베이스캠프라고 말이야. 튼튼하게 잘 있어야 하지만, 그게 목적일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그게 흔들거리면 산 정상에 올라갈 수도 없고, 날씨가 나쁘면 도로 내려와서 잠시 피해 있다가 다시 떠나는 곳, 그게 집이라고. 하지만 목적 그 자체는 아니라고, 그러나 그 목적을 위해서 결코 튼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라고. 삶은 충분히 비바람 치니까, 그럴 때 돌아와 쉴 만큼은 튼튼해야 한다고..."

사랑한다고 해서 그걸 꼭 내 곁에 두고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란 걸 나는 이제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최선을 다해 존재함으로써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목적은 그다지 순수하지 않다.
문학작품으로서의 즐거운 나의 집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이 책이 나온다는 소식과 함께 몇번째 남편인가가 소송을 할꺼라는 기사들과
세번의 이혼을 하고 성이 다른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공지영의 사생활을 훔쳐보기 위함이었다.

책의 카피에 써있는...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처럼
대단한 가족의 의미를 원한다면, 영화 <가족의 탄생>이 훨씬 완성도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책을 순수하게 문학작품으로 읽은 사람들에게 가족을...
글의 시점인 큰딸 위녕이 표현하는 '그렇게 쉬운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라고 표현한 부분은 어느 정도 동감한다.

작가 공지영에 대해서 한가지 고백하자면...
내가 공지영을 탐탁치 않게 봤던 건... '잘난척'하는 것처럼 보여서였다.
다른 작가들의 책을 읽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녀의 책을 읽으면서는 왜 이렇게 잘난척하지? 라는 느낌을 받은건...
내가 느끼기에 '너희는 이런거 모르지?' 라는 느낌의 문체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정 부분, 내가 인정할 만한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마찬가지로 '또 잘난척 하는군' 이라는 느낌은 없지않지만,
이제, 그녀를 이혼을 세번 했다는 이유로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제멋대로 살았다고 욕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녀는... 나는 아직 한번도 하지 못한 결혼을 세 번이나 했고,
세 명의 아이를 낳아 키울만큼 뜨겁게 사랑하며 살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덧붙임.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에서 작가로 나오는 엄마가 언니랑 너무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디 글 안쓰는 데 가서 살고 싶다고 하거나,
하느님한테 기도한다고 하면서 큰소리 치며 따지는 거나,
말도 안되는 말로 어이없게 하는거나,
잘 웃고, 잘 울고 하는거 다...

내가 이 말을 했을때, 언니는 버럭 화를 냈다.
'내가 이혼 세 번한 여자처럼 보여?' 라고...
어찌나 유치하신지...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