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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쓸쓸한 여자 이야기 ... 나에 관한 너의 이야기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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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관한 너의 이야기 (The Hour of Ther Star)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 추미옥 역 / 이룸



진실은 진실이니까 누구든 자기 안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하나이고 다 같은 사람인 것을.

인생을 살면서 자연히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인생을 살아 본 사람은 안다.

그녀를 자기 자신의 존재와 맞닥뜨리게 하는 것이 나의 의무이다.
인간에게는 외칠 권리가 있으니.
나는 외칠 것이다.
동정을 갈구하지 않는 단순한 외침을.

'난 누구지?' 라는 질문은 갈망을 불러일으킨다. 갈망을 어떻게 채우겠는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은 곧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세상은 나의 밖에 있어요. 나 역시 나의 밖에 있어요.'

개가 스스로 개인지 모르듯이 여자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도 자각하지 못했다. 여자에게 유일한 욕구는 살아 있는 것이었다.

참을성을 갖고 기다리면 고통은 곧 지나간다.

여자는 물론 말을 할 수 있었지만 할 말이 별로 없었다.

하느님! 사람보다 동물과 함께 있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어쩌면 북동부 여자는 삶이 고해라고 이미 결론 내렸을지도 모른다. 마치 육체와 딱 들어맞지 않는 정신 같은.

그때는 행복했다고 생각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 그들은 다른 것도 가지려고 한다. 사람에게는 보통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싶은 욕심이 있다. 사실 어느 것도 가질 권리가 없지만 모든 것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이다.

여자는 내가 피하고자 애태웠던 진실을 대변하는 존재다. 누구를 탓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책임이 있다.

지금까지 아무도 자기를 억압한 사람은 없으며 자기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고. 발버둥 쳐 봤자 부질없는 짓이다. 뭐 하러 발버둥 치는가? 여자가 언젠가는 사랑과 이별을 경험하게 될까? 나는 자문해 본다. 언젠가는 사랑과, 사랑이 주는 거짓을 경험하게 될까? 여자는 사랑의 황홀함을 자기 나름의 소박한 방식으로 경험하게 될까? 모를 일이다. 세상은 어디나 다소 슬프고 외롭다는 단순한 사실을 어떻게 감출 수가 있겠는가?

여자는 문득 딱 하루만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그랬다고, 여자가 이렇듯 아무렇지 않게 부탁하는 태도가 슬며시 수상쩍다.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특별한 상황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왜 진작부터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을까?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도 이제는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여자는 만족했다. 하지만 가슴이 아픈 건 왜일까.

남자와 여자는 빗속에서 서로를 바라보았고, 북동부 출신인 서로를, 숨길 수 없는 동일성을 공유한 같은 종족인 서로를 알아보았다.

"너는 비만 몰고 다녀!" "미안해요."

남자 : 왜 그렇게 놀라? 넌 사람 아냐?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한 얘기들을 한다고.
여자 : 미안해요. 근데 난 내가 사람이라는 생각이 그다지 들지가 않아요.

"난 걱정할 게 없어요. 성공할 필요도 없고요." 여자가 올링피쿠 지 제수스에게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신에 대해 잊고 사는 것이 습관이 되었던 그녀였다.

"... 우리는 살아 있음에 기뻐해야 한다고요. 난 기뻐요. 그리고 아름다운 노래도 들었는데 울 뻔했어요."
... '우나 푸르티바 라크리마(Una Furtiva Lacrima 남몰래 흐르는 눈물)'는 마카베아의 삶에서 단 하나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이었다. ...
그녀는 제 목소리를 듣고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여자가 우는 것은 처음이었고 자기 눈에 그토록 많은 물이 고여 있는지 처음 알았다. 여자는 울면서 코를 풀다가는 어느새 자기가 왜 우는지를 잊었다. 자기가 사는 방식 때문에 우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삶의 방식을 모르는 여자는 자신의 삶이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자신이 마카베아인 것처럼.
여자가 우는 것은 그 노래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여자는 노래를 들음으로써 다른 감정들도 있다는 것을, 보다 섬세한 형태의 삶과 순수한 정신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여자는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많은 것들을 인식했다.

첫 만남에서 올링피쿠는 마카베아를 '아가씨'라고 불렀고 그때 그녀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특별한 사람이 된 이상 핑크색 립스틱 하나쯤 사는 것도 당연하게 여겨졌다.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내 생각에 난 조금...... 뭐라고 할까? 솔직히 난 내가 어떤지 모르겠어요."

누군가의 얼굴이 아무 생각 없이 바로 마음에 와 닿으면 그 얼굴에서 모든 것을 읽을 수 있다.

신문의 부고란에 난 생판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이었다. 부고란을 읽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에게도 그런 약점이 있었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한두 가지씩의 약점은 있게 마련이다.

마카베아의 삶은 맨 빵에 버터를 바른 것보다도 심심했다.

그녀는 가망이 없는 존재였다. 슬픔도 돈 많은 사람들,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 달리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누리는 특권이었다. 슬픔은 사치였다.

그녀는 스스로 단순한 생물이 되었다. 그녀는 단순하고 진실한 것들에게서 장점을 발견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녀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 좋아했다. 그녀는 시계가 없었고, 아마도 그 때문에 시간의 무한함을 음미했던 것 같다.

아무도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갈 수는 없다. 마카베아는 글로리아와 대화는 했지만 진정 자신의 마음을 열지는 않았다.

마카베아가, 자신은 세상에 설 자리가 없는데 글로리아는 어떻게 그토록 후할 수 있는지 그 이유를 깨닫게 된 순간이 있었는데, 글로리아의 집에 전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도 그랬다.

그의 소망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만큼 돈을 버는 것이었으며, 그 하고 싶은 것이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자신이 절박하다는 사실을 스스로는 몰랐지만, 그녀에게서 그런 과감한 행동이 나왔던 것은 순전히 절박해서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필시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으며 완전히 지쳤던 것이리라.

그녀의 삶을 바꾼 것은 말이었다. 모세의 시대 이후 말은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늘 그랬듯이 그녀를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서 있기만 했다. 단, 이들은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봄으로써 그녀가 존재함을 인정하고 있었다.

나는 이 어린 소녀를 죽임으로써 이야가를 쉽게 끝내고 빠져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그 이상을 원한다. 나는 생명을 원한다. 독자도 스스로 복부를 주먹으로 쳐 보고 기분이 어떤지 느껴보길 마란다. 생명은 배를 주먹으로 맞는 기분이다.

산다는 것은 사치다.
어느덧 모든 게 끝났다.



작년 가을... 와우북 페스티발에서...
순전히 제목에 이끌려 샀던 브라질 작가의 책.
어떤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남자 작가의 시선으로 (정작 글을 쓴 작가는 여성!!!) 혼자 이야기하듯이 써내려간
구성과 문체가 너무나 독특했던...
그런 구성과 문체 때문이었는지...
그녀의 쓸쓸한 삶이, 나와 다르지않음이 너무나 잘 느껴졌다.

읽은 건 한참 전인데... 이제야...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