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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관계에 대한 고민 ... 공중 정원 / 가쿠타 미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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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정원 / 가쿠타 미츠요 / 임희선 역 / 작품


에리코와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게 된 것은 한 5년 전부터다. 커뮤니케이션이란 몸과 마음이 밀접하게 결부되어 이루어지는 행위라고 난 생각한다. 5년 전에 에리코는 나와의 육체관계를 거부했다. 언젠가는 풀리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냥 그대로 5년이 흘렀다. 그러면서 대화도 맞물리지 않게 되었다. 에리코는 대화를 나누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바로 그런 착각이 커뮤니케이션 부재를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사랑을 받지 못하면 사람은 무슨 짓을 할 지 모르잖아.

그게 선입견이라는 거야. 그런 선입견을 갖고 있으면 진짜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야.

말할 필요가 없어서 입 밖에 내지 않는 일이라면 많이 있다.

그리고 또 밭도 보이지? 그 파란색도 건전한 이미지를 주거든. 빛과 녹음, 이것만 있으면 사람들은 예외없이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안심하게 되어 있단 말이야. 특히 집에 관해서는 더하지. 안전하고 아늑하다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어쩌면 그건 환상일 뿐이고 사람이 정말로 필요한 것은 빛도 아니고 녹음도 아니고 사람들이 아닐까 하고...

가족들끼리 서로 감추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가훈을 만든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내가 만든 가정은 우리 친정어머니가 만든 저 비참한 집과는 다르다. 내가 만들어낸 가정에는 숨겨야 할 창피한 일도, 나쁜 일도, 부끄러운 일도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건 다른 가족들에게 털어놓자고 나는 몇 번이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 있는 내 남편은 내가 치를 떠는 친정어머니랑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똑같은 짓을 하려 하고 있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숨겨야 할 일'을 일부러 내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이 남자가 지키려고 하는 것은 비밀을 만들지 않는다는 우리 집의 가훈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렇다. 내가 열심히 만든 것이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해, 환하게 빛나는 미래를 위해. 찬란한 현재를 위해.

또 옆으로 이동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위로 쌓이는 것이 없는 생활.

어린 아이는 정말 힘없는 존재다. 부모가 아무리 멍청하고,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도 거기밖에 의지할 데가 없으니까 전심전력을 대해서 부모를 사랑한다. 그렇게 사랑하는 것으로 사랑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가족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한다. 마치 전철에 함께 탄 사람들 같은 관계. 내 쪽에는 선택할 권리가 없는 우연으로 함께 살게 되어, 숨 막히는 공기 속에서 짜증을 내고, 진절머리를 내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래도 일정한 기간 동안 그것에 계속 있어야만 하는 관계. 따라서 믿는다거나 의심한다거나 착하다거나 악하다거나, 그런 개인적인 성품은 전혀 관계가 없다. 이 차에 함께 있게 된 사람 전부를 믿을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앞으로 몇 분 후에 내 바로 앞에 서 있는 스케이터로 보이는 남자가 갑자기 확 돌아서 칼을 휘두를 가능성과, 중학교 3학년짜리 성실한 남학생이 아빠의 애인인 줄도 모르고 가정교사를 러브호텔로 유혹할 가능성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비슷하다.

이 실내의 이런 느낌이 무엇인가와 비슷하다고 처음 여기서 이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했을 때부터 줄곧 생각했었는데, 그 무엇인가가 도대체 뭔지, 고우가 거실 전체에 붙여놓은 장식을 보고서야 알았다. 학예회다. 다카시 부인의 지나치게 명랑한 목소리와 태도, 모래사장 놀이터가 문제라고 중얼거리던 고우가 내보이는 자기 말과는 정반대로 보이는 천진함. '생일 축하합니다'라고 쓰인 초라한 포스터, 실내 전체를 싸구려 세트로 바뀌게 만드는 티슈로 된 꽃장식.

역 자동 잠금장치. 아까 들었던 고우의 말이 생각났다.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집에 외부 인간에게는 닫혀진 자동 잠금장치 문이 존재한다. 고우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 자물쇠는 바깥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걸려 있는 것이 아니다. 집 안 사람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잠겨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식탁을 둘러싼 이곳에는 다섯 개의 문의 있다. 튼튼한 자물쇠가 달린 똑같이 생긴 방문들. 다섯 개의 문 안쪽에는 각각 징그럽고 보기 싫고, 하지만 남들이 보면 치사하기 짝이 없는 비밀들이 왕창 우글거리고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번식하며 살아 있을 것이다.

이건 좀 이상한 것 같다. 혼자 있을 때는 비밀이 되지 않는 일인데 가족들이랑 같이 있으면 숨길 필요가 생긴다. 하지만 만약에 내가 잘못해서 사람을 죽였다면 어떨까? 그러면 가족한테만은 털어놓을지도 모른다. 체포될 생각이 정말로 없다면 가족한테만은 사실대로 말하고 제발 숨겨달라고 울며 부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건, 어느 시대였건, 어느 장소였건, 아무튼지 간에 지금처럼 이렇게 우리는 사람들과 같이 무리를 이루면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지. 그렇잖아?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데도 우리는 미움이라는 걸 알고 있고, 특별히 외로운 것도 아닌데 외로움이 어떤 건지 알잖아.



<좋지 아니한가> 라는 영화가 있다.
김혜수가 추리닝에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나오고, 이기우도 나오고, 정유미도 나오는...
혈연으로 이루어져있기는 하나,
내 고민을 이야기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이해를 구하기도 어려운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한 고찰? 이라고 해야하나...
잘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어떤 과정을 통해서 각자를 인정하고 다시 함께 살아간다는 얘기로 끝이났던거 같다.
아무튼,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해, 펼쳐 놓는 모습이 비슷해서,
어쩌면 이 책이 원작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족이란 정말 어떤 관계일까?
함께 살아야하고,
모든 것을 이해해야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하느님과 같은 사랑을 베풀어야하는?
그러나,
가끔은 함께 사는 것이 답답하고,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고,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있고,
가끔은 하느님과 같은 사랑은 커녕 남만도 못하기도 하는?

잘은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의 시작이 가족인 것 같기는 하다.

베스트셀러 라고 읽어볼만하다고 해서 읽어보긴 했는데,
기대만큼은 아니었던, 그러나 생각해볼만한 책. ^^

<좋지 아니한가>와
파란을 일으키면 대종상 작품상을 받아낸 <가족의 탄생>과 함께 비교해서 보면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