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2
씨네큐브 광화문 2관 60번
시 Poetry (2010)
이창동 감독 / 윤정희, 김희라, 안내상, 이다윗 출연
내가 젤 좋아하는 게 머라구? 알아, 몰라?
알아.
뭔데?
종욱이 입에 밥 들어가는 거
그렇지.
운동하래.
의사가 그러는데, 시도 열심히 쓰래
아플 때도 있고, 괴로울 때도 있지만, 행복해요. 행복합니다.
살구는 원래 땅에 떨어져 있는게 맛있어요.
이제 이대로 다 끝난 건가요?
시를 쓰는 게 어려운 게 아니고,
시를 쓰겠다는 마음을 먹는게 어려워요.
시를 쓰는 마음.
<하녀>는 오래전부터 전도연이 주연하는 임상수 감독의 영화라고... 홍보가 대단했는데,
<하녀>가 개봉하던 그 주에 갑자기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를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창동 감독이 누구누구와 이런 영화를 찍는다더라 소문이 없어서 너무 급작스러웠는데
게다가 제목이 '시'라니... 그것도 時 가 아니라, 詩
<밀양>처럼 오랜 시간 앉아서 보는 것이 힘들것 같아서,
실은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그저께 투표하고나서야 겨우 볼 마음을 먹었다.
몇 년 전에 카메라를 들고다니는 취미가 생기면서...
그 전엔 그냥 흘려보던 것들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렇게 보다 보니,
이쁜 것도 보이고, 더러운 것도 보이고,
쓸쓸한 것도 보이고, 아픈 것도 보이고,
세상도 보이고, 나도 보이고,
그렇게 그 전엔 못ㅠ봤지만 이제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을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물론 내 눈에 보이는 것들만...
지금은 전처럼 카메라를 늘 들고 다니지도 않고,
그전처럼 그렇게 사진을 찍지도 않는다.
아마도 어느 순간부터
보이는 것을 찍는 것이 아니라,
찍기 위해 억지로 보려고 했던 것 같고,
그렇게 해서 찍은 것들이 나에게도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기 때문인 듯하다.
이 영화 시를 보면서... 보는 것... 을 다시 생각해봤다.
보고싶을 때, 보고싶은 것만, 보고싶은대로
나조차도 그렇게 보는 것에 익숙해져있었으면서
그렇게 보는 남들만 나쁘다고 옳지 않다고 비판했던 것 같다.
보기 싫어도, 보고싶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보는 것에 관한 영화
그래서 였는지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불편함이 있었다.
딸과 전화통화할 때 나오는 윤정희의 날아갈 듯한 웃음 소리,
욕조에 앉아 윤정희를 바라보는 김희라의 눈빛,
멍하게 TV를 보고 있는 손자의 표정,
정신없이 맨발로 왔다갔다하는 엄마 옆에 쓰레빠를 들고 있는 남자아이,
깻잎을 한 장 한 장 다듬으며 살짝 웃는 아줌마...
어느 누구하나 과하지 않고, 힘을 뺀 듯한 연기...
실은 배우 윤정희라는 사람도, 김희라라는 사람도 관심이 없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나니, 우리나라에 이런 배우들이 있다는 것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시사인 고재열 기자가 윤정희 선생님과 인터뷰를 했는데, 윤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단다.
"나는 90세가 되어도 좋은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배우라는 직업은 인생을 재현시키고 표현해 내는 사람이다. 그것이 꼭 젊음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주름살에도 아름다움이 깃들 수 있다" 고...
부디 오래오래 살면서 주름살에 깃든 아름다움을 보여주시기를...
그리고, 이 모자와 스카프와 치마...
영화를 보는 내내 작은도바니님이 생각이 났는데,
의외로 큰도바니님께서 이런 치마를 입고 싶으시다고...
그 얘기를 듣고 이 치마를 입은 큰도바니님을 떠올려보려 애를 썼는데, 잘 안된다.
저 꽃도 꽃이지만, 저 하늘하늘한 하늘색은 정말이지... ㅋㅋㅋ
근데, 좋은 영화에 괜한 딴청을 좀 부려보면...
김용택 시인의 이름을 구지 '김용탁'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을까?
바꾸더라도... 김용탁은 좀 너무한듯해...
수준이 <접속>의 야동버전 <접촉> 만도 못한 느낌...
이창동 감독님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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