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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지 않다 ... 생물과 무생물 사이 / 후쿠오카 신이치













생물과 무생물 사이 /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무언가를 정의할 때 속성을 열거하며 기술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그러나 대상의 본질을 명시적으로 기술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 루돌프 쇤하이머(Rudolf Schoenheimer). 그는 생명이 '동적인 평형 상태'에 있음을 세계 최초로 밝힌 과학자였다. 즉 생명체인 우리 몸은 플라스틱으로 된 조립식 장난감처럼 정적인 부품으로 이루어진 분자 기계가 아니라 부품 자체의 다이내믹한 흐름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같은 종류의 바이러스는 반드시 똑같은 모양이었다. 거기에는 크기나 개성 같은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이러스가 생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물질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 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방황하는 그 무엇이다. 만약 생명을 '자기를 복제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린다면 바이러스는 틀림없이 생명체다. 바이러스가 세포에 달라붙어 그 시스템을 이용하여 스스로를 증식시키는 모습은 기생충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바이러스 입자 단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것은 무기질적이고 딱딱한 기계적 오브제에 지나지 않아, 생명으로서의 움직임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DNA는 자외선이나 산화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배열이 깨지는 경우가 있다. ATAA라는 부분 배열이 없어졌다 해도 상보적인 다른 한쪽의 사슬에 TATT라는 구조가 보존되어 있다면 자동적으로 구멍을 메울 수 있다. 사실 DNA는 일상적으로 손상되고 있으며 일상적으로 복구되고 있다. 이렇게 정보를 보유하고 유지하기 위해 생명은 일부러 DNA를 쌍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가장 노련해진 부분은, 내가 얼마나 일을 정력적으로 해내고 있는지를 세상에 알리는 기술이다. 일은 원숙기를 맞이한다. 모두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새는 참으로 우아하게 날개를 펴고 창공을 날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때 새는 이미 죽은 것이다. 이제 그의 정열은 모두 다 타버리고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수치, 도표, 현미경 사진, X선 필름...... 확실히 과학 데이터는 객관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데이터 A'를 보고 있는 모든 관찰자가 똑같이 '객관적인 사실 A'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조개껍데기는 분명히 조개의 DNA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조개껍데기를 보면서 느끼는 질감은 '복제'와는 또 다른 그 무엇이다. 자갈도, 조개껍데기도 원자가 모여 만들어낸 자연의 조형이다. 모두 아름답다. 하지만 작은 조개껍데기가 발하는 광택에는 자갈에는 존재하지 않는 미의 형식이 있다. 그것은 질서가 창조하는 아름다움이며, 동적인 것만이 발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즉 농도가 진한 쪽에서 약한 쪽으로 입자의 흐름이 진행되고, 이는 입자가 골고루 분포될 때까지 계속된다. 입자의 불규칙한 운동은 그 후에도 계속되지만, 그것은 불규칙을 휘저어 다시 불규칙을 만드는 행위의 반복일 뿐이다. ... 불규칙성 속에서 질서가 생긴다는 것은, 사실은 이런 방법으로 집단 속에서 어떤 일정한 경향을 보이는 원자의 평균적인 빈도의 결과인 것이다. ... 생명현상에 참가하는 입자가 적으면 평균적인 행위에서 벗어나는 입자의 기여, 즉 오차율이 높아진다. 입자의 수가 늘어나면 늘어나는 만큼 평방근의 법칙에 의해 오차율을 급격히 저하시킬 수 있다. 생명현상에 필요한 질서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원자는 그렇게 작아야 할', 즉 '생명은 이렇게 커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우리의 몸은 가운데로 척추가 지나가고 그 척추를 중심선으로 좌우 대칭 구조를 하고 있다. 척추에는 분절 구조가 있고, 신경 배선도 이 분절을 따라 분류되어 있다. 이것이 척추동물의 기본 구조다. 그러나 무척추동물인 곤충이나 지네, 거미 혹은 지렁이 같은 생물 역시 중앙선을 따라 분절 구조로 되어 있다. 기본적인 디자인은 같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 즉 생명은 '현존하는 질서가 그 질서 자체를 유지하는 능력과 질서 정연한 현상을 새로 창출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말이 된다.

생명이란 요소가 모여 생긴 구성물이 아니라 요소의 흐름이 유발하는 효과인 것이다. ... 모래는 어느 순간, 성 어느 곳인가의 일부였다가 다음 순간에는 성에서 흘러내리고 나중에 실려 온 모래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마치 너무나 맑아 흐르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계곡물에 잉크를 떨어뜨린 것처럼 산호 가루는 그 흐름과 속도를 가시화해 주었을 뿐이다. ... 즉 여기에 존재하는 것은 흐름, 그 자체뿐이다. 우리는 자신의 표층, 즉 피부나 손톱이나 모발이 끊임없이 생성되면서 옛것을 밀어내는 것을 본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표층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신체의 모든 부위, 장기나 조직에서뿐 아니라 언뜻 보기에는 고정적인 구조인 것처럼 보이는 뼈나 치아에서조차 그 내부에서는 끊임없는 분해와 합성이 반복되고 있다. ... 모든 원자는 생명체 내부를 흐르며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 육체라는 것에 대해 우리는 외계와는 격리된 개별적인 존재로 느낀다. 그러나 분자 차원에서는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다. 우리들 생명체는 우연히 그곳에 밀도가 상승하고 있는 분자 '덩어리'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빠른 속도로 대체되고 있다. 그 흐름 자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항상 외부로부터 분자를 흡수하지 않으면 빠져나가는 분자와 수지가 맞지 않게 된다. ... 쇤하이머는 자신의 실험 결과를 근거로 이를 '신체 구성 성분의 동적인 상태(The dynamic state of body constituents)'라 불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생물이 살아있는 한 영양학적 요구와는 무관하게 생체고분자든 저분자 대사물질이든 모두 변화하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이란 대사의 계속적인 변화이며, 그 변화야말로 생명의 진정한 모습이다.' ... 자기 복제가 생명을 정의하는 주요 개념인 것은 확실하지만 우리들의 생명관에는 다른 믿음이 있다. 비록 우리가 말로는 표현하지 못해도 선명한 조개껍데기 장식에는 질서의 미학이 있고, 그 질서는 끊임없는 흐름에 의해 만들어진 동적인 것임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 질서는 유지되기 위해 끊임없이 파괴되지 않으면 안 된다.

생명이란 동적 평형상에 있는 흐름이다. 생명을 구성하는 단백질은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파괴되기 시작한다. 이는 생명이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생명은 끊임없이 파괴되면서도 어떻게 원래의 평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그 답은 단백질의 형태가 몸소 보여주는 상보성에 있다. 생명은 그 내부에 얽히고설킨 형태의 상보성에 의해 지탱되며 그 상보성으로 인해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동적인 평형 상태를 유지한다. ... '유연한' 상보성은 공학적으로 보면 결합력이 좋은 견고한 조립에 비해 내구성 면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조각 자체가 항상 새로 생성되고 바뀐다는 점도 비효율적, 소비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질서를 파괴해야만 한다. 즉 시스템 내부에 불가피하게 축적되는 엔트로피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선수를 쳐서 앞의 것을 파괴하고 배출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단백질적인 언어로 설명하자면, 늘 합성과 분해를 반복함으로써 상처가 난 단백질, 변성된 단백질을 제거하고 이들이 축적되는 것을 방어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합성 도중 오류가 생겼을 때 수정 기능도 발휘할 수 있다. ... 조각들은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서로의 상보성을 찾아 아주 짧은 밀회를 즐기고는 순간적으로 사라져버린다. 수억 장이나 되는 인슐린이 온몸의 혈액을 돌며 모든 세포 표면에 있는 수억 장의 인슐린 수용체와의 사이에서 모든 미분적인 시간 동안 명멸을 반복한다. 그리고 그런 상보성의 연결고리는 생물학적 숫자에 의해 다중으로 폭주하고 있다.

세포는 내부에서 만들어진 단백질을 세포 밖으로 운반하기 위해 직접 세포 피막을 열었다 닫는 위험을 피하고자 했다. 그러면 내적 환경이 외부 환경에 노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세포는 미리 세포의 내부에 또 하나의 내부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소포체다.

생명현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불필요한 짐을 짊어지고 있는 생물은 그만큼 생존경쟁에서 불리하다. 생물은 진화하면서 가능한 한 효율적인 시스템을 선택해 왔다는 견해가 바로 그로 인해 나온 것이다. ... 중대한 착오란 단적으로 말하면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미천한 인식이다. 그리고 간과했던 것은 '시간'이라는 단어였다. 생명이란 텔레비전 같은 기계가 아니다. ... 동적인 평형 상태는 가능한 한 그 결함을 메우기 위해 자신의 평형점을 이동시켜 조절하려 한다. 그런 완충 능력이 동적 평형이라는 시스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평형은 자신의 요소에 결함이 생기면 그것을 메우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과잉 상태가 되면 그것을 흡수하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 생명현상에는 사전에 다양한 중복과 과잉이 준비되어 있다. 유사한 유전자가 여럿 존재하고, 같은 생산물을 얻기 위해 다른 반응계가 존재한다. ... 치명적인 결여가 아니라 그 결여에 대한 보충이나 우회가 가능한 경우, 동적 평형계는 어떻게 해서든 그 자리를 메워서 시스템을 최적화하는 응답성과 가변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동적인' 평형의 특성이기도 하다. 이는 때때로 생명현상이 보여주는 관용 혹은 허용성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평형은 모든 부분에서 항상 분해와 합성을 반복하면서 상황에 순응하는 유연성을 발휘한다. ... 생물에는 시간이 있다. 그 내부에는 항상 불가역적인 시간의 흐름이 있고, 그 흐름에 따라 접히고, 한 번 접히면 다시는 펼칠 수 없는 존재가 생물이다. 생명이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생명이라는 동적 평형이 어느 순간에 GP2의 결여를 교묘하게 보완한 결과다. 눈앞에 보이는 '정상'이란 결여에 대한 다양한 연쇄적 응답과 적응, 즉 반응의 귀추에 의해 만들어진 또 다른 평형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는 한 개의 유전자를 잃은 마우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낙담할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워해야 한다. 동적 평형이 갖는 유연한 적응력과 자연스러운 복원력에 감탄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을 기계적으로 조작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생명이라는 이름의 동적인 평형은 그 스스로 매 순간순간 위태로울 정도로 균형을 맞추면서 시간 축을 일방통행하고 있다. 이것이 동적인 평형의 위업이다. 이는 절대로 역주행이 불가능하며, 동시에 어느 순간이든 이미 완성된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에 혼란을 야기하는 인위적인 개입은 동적 평형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힌다. 만약 표면상으로는 동적 평형이 크게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이는 유연하고 부드러운 동적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조작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는 무언가가 변형되고 무언가가 손상을 입었다. 생명과 환경의 상호작용은 이미 접힌 색종이라는 의미에서, 이 개입이 일회성 운동을 다른 길로 인도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자연의 흐름 앞에 무릎 꿇는 것 외에, 그리고 생명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사과와 내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과학적으로 증명해주는 책.

경향신문에서 내가 젤 좋아하는 기사, 그러니까 찾아읽는 기사가 매일 1면에 나오는 '책읽는경향'이다.
사회 유명인사? 들이... 책을 소개해주는 코너
메모해 두었다가, 혹은 책 주문하기 전 확인해보고 주문리스트에 포함하는...
나에게는 비교적 높은 신뢰도를 얻고 있는...

깨장엘 다녀온 후여서 아마 이 책이 눈에 띄었을거다. 원래 난 과학엔 관심이 없으므로...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것,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과학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순간순간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증명해주는...
이 세상의 수많은 생명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확인해주는
소설책 같은 과학책


너무나 놀라운 건...
스스로의 오류를 다양한 방식으로 극복하는 생명의 시스템.
자연에 속해있으면서도 그것을 제 손에 쥐고 컨트롤하려는 인간의 오만방자함에 대한 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