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깊은 집 : 문학과 지성 소설 명작선 15 / 김원일 / 문학과지성사
신문팔이를 마치고 돌아온 그날, 어머니는 길수의 저녁밥을 굶겼다. ... 어머니는, 거지도 아닌데 거지 새끼처럼 왜 위채에서 밥을 얻어먹었냐며 지청구만 놓을 뿐 길수의 설움을 달래주지 않았다. ... 전쟁 와중에서 겪은 쓰라린 체험은 어마니를 그렇게 정없이 메마른 여자로 바꾸어놓았던 것이다.
"내 누구한테도 그 말 안 할 테이 다시는 그런 짓 말거래이. 설령 점심밥을 굶어 배가 쪼매 고푸더라도 사나이 대장부가 될라카모 그쭘은 꿋꿋이 참을 줄 알아야제. 너거 어무이는 물론이고 성제간도 그렇게 참으미 이 여름철을 힘겹게 넘기고 안있나. 내 아무한테도 이 말 안 하꾸마." ... 안씨 충고에는 도둑이란 말이 한마디도 들어 있지 않았음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내 초롱턴 눈이 아주 가는 모양이데이. 벌씨러 이 나이에 바늘귀를 제대로 몬 꿰다이. 길남아, 니 다음에 커서 이 에미한테 효도할 마음이 있으모, 우리 어무이 젋을 때 우리 믹이고 공부시킬라고 눈을 너무 버렸으이 눈에 좋다 카는 이 약 드이소 하고 눈에 좋다는 약이나 사온나." 어머니가 눈부리 아릴 때면 눈을 비비고 곧잘 하는 말씀이었다.
"맞아유. 미국과 소련으 체면 살리는 대리 전쟁을 치르는 사이 녹아나기는 우리 민족과 이 강산뿐이었수. 양쪽 다 다른 나라가 만든 무기루 열심히들 싸웠수. 그래두 통일이나 됐다믄 모를까, 삼백만 넘어 희생자를 내구서두 이렇게 휴전이 되구 보니 말루다 표현할 수 없는, 증말 기막히는 엄층난 상처만 남기구, 명분을 그 어디서두 찾을 수 없는 전쟁이 되구 말았잖수. 허무한 생각두 들구, 안타까운 마음뿐이라우." 준호아버지가 자신의 쇠갈고리 손가락을 어루만졌다.
"... 사람이란 모름지기 남으 눈에, 그 사람 행실 참 이뿌다, 이래 보여야 한데이. 그러자모 사람이란 모름지게 정직과 부지런을 제일로 앞세워야 하는 기라."
"니는 이 집안 장자 아인가. 니가 참아야제."
"... 메칠 물마 묵으미 굶어본 사람은 안다. 죽는 것도 힘든 줄은 굶어본 사람만이 알지러."
입대 영장을 손에 쥐자, 입대.제대.직장 구하기.결혼, 그래서 처자식 먹여살리기의 뻔한 내 앞날이 떠올랐다. 나는 그만 암담해져 빨리 늙은이가 되어 내게 기대를 거는 모든 이들의 눈길로부터 무관심의 대상으로 남고 싶었다. 먹고 잠잘 곳만 있다면 공원이나 길거리에 하릴없이 소일하는 늙은이야말로 진정 부러움의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정기사 그늠을 욕질하고서 불쌍한 준호네 돈을 울궈내겠다고 내 가게도 아닌 가게를 세까지 내주다니. 돈에 환장들린 년이 따로 없구나. 어쩌다 내가 이렇게 낯짝 두꺼분 년이 됐을꼬. 더러운 세월이여......"
어머니는 한번 뱉은 말은 늘 모질게 실천했으므로, 밥을 굶기겠다면 반드시 굶기는 분이셨다. 오늘 저녁 일 끝내고 니 매 좀 맞아야겠다고 말씀하시면, 그날 밤 어머니는 반드시 숯포대 매를 들었다.
"아저씨, 그래도 고정독자 안 떨구는 배달원은 나밖에 없다구요. 말이 확장이지, 먹구 살기두 힘든 이 겨울철에 신문 새로 보는 집이 어디 쉽습디까." 한주의 대답은 늘 그렇게 막힘 없이 시원했다.
쓰레기통에 내다버린 꽁꽁 언 국수가락을 떨리는 손가락으로 집어올릴 때,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지만 나는 부끄러웠고 뺨으로 더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쨌든 먹어야 살고, 앞으로 이런 찌꺼기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옥마음을 먹었다.
"넌 학교를 다니지만 나는 어디 그럴 형편이 되니. 당장 내가 안 벌면 세 식구가 굶구 어머니 약값은 누가 대. 신문 배달이란 아무리 오래 한들 다리품이나 팔지, 그게 어디 중뿔난 기술이라두 되니. 나이 먹어 배달 자리두 떨려나게 되면 내꼴이며 집안이 뭐가 되겠니. 그래서 마침 일자리가 난 김에 인쇄소로 옮기는 거야. 그래서 인쇄 기술자가 될 테야." ... 한주 어머니는 휴전 네 해 뒤에 돌아가셨지만 그 죽음 역시 원인을 전쟁 탓으로 돌린다면, 이 땅에 알게 모르게 전쟁의 잠복성 종기를 오장육부에 오래 여투어두다 끝내 그 종기의 독성으로 죽게 되는 목숨이 그 얼마나 되랴. ... 그는 기름때 믇은 작업복에 얼굴조차 검정 인쇄물을 묻힌 채 신문 배달 시절처럼 덧니를 보이며 씩 웃곤, "니는 쫄병 아닌가. 내가 돈을 버인께 막걸리 한 되 사지" 하고 경상도 사투리를 흉내내먀 반갑게 맞아주었다. ... 나는 지금도 내 대구 생활의 출발을 돌이켜볼 때, 겁 많은 나에게 용기를 주고 가난 속에서도 구김살 없이 씩씩하게 '더러운 세상'을 곧잘 뚫고 나가던 소년 가장 한주를 잊지 못한다. 특히 신문 배달원으로 나의 취직 자리를 주선해줄 때, 보급소장 손씨 앞에서, "길남이를 한번 믿어보세요" 하던 말고,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그 성경 구설은 그뒤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나는 누나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노므 자슥 집 떠나니 입 하나 줄어 앓는 이 빠진 듯 속이 시원하다." 어머니가 이런 말을 하시지 않았느냐, 내가 집으로 돌아오면 반쯤 죽여놓겠다고 욕질을 안 했느냐, 양단 옷감의 피가 말끔히 씻겨 표가 나지 않게 되었느냐, 재봉바늘이 찔린 어머니 손가락은 어찌 되었느냐. 그러나 입술이 떨어지지 않아 나는 아무 말도 묻지 않고 기계실 쪽으로 한눈을 팔았다. ... "신문 배달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어무이가 고깃국 끓여놓으실 거야. 니 밤새 밥도 몬 묵고 배고프겠데이. 내 도시락 안 묵고 가져왔어. 배달하다가 어데 한갓진 데서 묵어." ... 신문 배달을 마치고 나는 장관동 긴 골목 중간쯤, 준호아버지 가게가 저만큼 보이는 데까지 가서 오랫동안 망설였다. ... 어둠이 내릴 때까지 나는 이런저런 궁리를 했다. 누나나 길중이가 나를 찾으러 나온다면 그들 눈에 띄는 곳에 서 있다 못이기는 체 따라 들어가야지. 그런 마음을 먹었으나, 우리 식구는 아무도 가게 앞에 얼쩡거리지 않았다. 식구가 밥상 주위에 둘러앉아 내 걱정을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맛있게 저녁밥을 먹는 정경이 떠올랐으나, 누나에게 흰소리를 쳤단 만큼 나는 내 발로 집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 아침 밥상을 받자, 콩나물과 대파 건더기 사이에 쇠고기 기름이 동동 뜨는 고깃국이 내 밥그릇 옆에만 놓여 있음을 알았다. 그뒤로도 그렇다, 그렇지 않다며 변덕이 죽 끓듯 했지만, 그 순간만은 내가 어머니 아들임을 마음 깊이 새겼다. 목이 메어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고, 어머니는 여전히 아무 말씀이 없었다. ... 내 가출을 두고 끝내 가타부타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음으로써 더 아픈 마음의 회초리를 맞고 있던 나는 통나무 도막을 열심히 쪼개고 신문 배달을 하는 일만이 어머니 환심을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니가 제임스 그 대위를 마음에 찍어 파티에 그 요란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참석한 줄은 내가 다 안다. 내 속에서 나온 자식 속을 내가 왜 몰라. 그러나 미국으로 가기 전까지는 절대 몸을 주어서는 안돼. 이혼 수속을 끝낸 증서를 보기 전에는 비행기를 타서두 아니 돼. 한 번 결정으로 너 인생은 모든 게 끝장이 난단 말이야. 냉정하고 신중하게. 그 한 번 결정을 후회 없이 마무리지어야 한다. 인생으 결정적 승부는 꼭 한 번이라구 책에두 씌어있는 말이니라."
보증금 오만 환에 월세 삼천오백 환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지난 여름 우리 형제를 그렇게 굶기면서도 어머니가 몫돈을 오만 환이나 모았다는 데 적이 감탄했고, 한편으로는 지독하다고 속으로 어머니를 욕질했다.
언니가 이 책을 읽어보라고 줄 때만해도...
앞부분 읽다가만 책을 보고, 이 책 먼저 꼭 읽어보라고 할때 까지만해도...
몇년전에 이미 드라마화됐었고, 이미 그 시절을 영상화한 드라마들를 통해서 보아왔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
그저그런 어려운 시절의 이야기가 알콩달콩 하게 펼쳐진 책이겠거니 생각해서,
이 책 읽는 걸 정말 무슨 숙제처럼 생각했었다. 빨리 읽어치워야지.
그런데...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집안의 장자 노릇을 하는 길남이와, 아픈 어머니때문에 공부도 못하고 일찍 생업에 뛰어든 친구 한수의 모습에서
우리 아빠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냥 고리쩍 이야기,
설이나 추석때, 혹은 할아버지 기일에 집에서 간단히 연도하면서 들려주시던,
매번 똑같은 아빠가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에 관한 이야기들, 그리고 아빠가 살아온 인생 이야기들...
맏이는 아니었지만 맏이의 역할을 해야했고,
공부도 못하고 인쇄소에 들어가 인쇄기술을 배워야했고,
녹녹치 않은 인생이 힘들어 위장병에 걸려 병원에 실려갔을 때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생각했다던
45년 해방동이인 아빠가 살아온 인생이 내가 '아빠는 우릴 이해하지 못해요'라고 얘기해버리기엔 만만치 않다는 것,
아빠의 인생이 이제서야 조금 이해가 되고, 아프고, 눈물이 났다.
'더러운 세월'을 견뎌낸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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