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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의 은희경이 본 삶, 사랑 ... 새의 선물 /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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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 / 은희경 / 문학동네


진짜 나는 '보여지는 나'가 아니라 '바라보는 나'이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강요를 당하고 수모를 받는 것은 '보여지는 나'이므로 '바라보는' 진짜 나는 상처를 덜 받는다. 이렇게 나를 두 개로 분리시킴으로써 나는 사람들의 눈에 노출되지 않고 나 자신으로 그대로 지켜지는 것이다.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에는 이쁘고 좋기만 한 고운 정과 귀찮지만 허물없는 미운 정이 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언제나 고운 정으로 출발하지만 미운 정까지 들지 않으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고운 정보다는 미운 정이 훨씬 너그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확실한 사랑의 이유가 있는 고운 정은 그 이유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지만 서로 부대끼는 사이에 조건 없이 생기는 미운 정은 그보다는 훨씬 질긴 감정이다. 미운 정이 더해져 고운 정과 함께 감정의 양면을 모두 갖춰야만 완전해지는 게 사랑이다. ... 어쩌면 미운 정이란 고운 정보다 훨씬 더 얻기 힘든 무르익은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엄마에게나 나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기를 원치 않았다. 건드려질 때마다 아픔을 느끼는 상처를 갖는다는 것은 내 삶에 대한 스스로의 조절능력을 상실하는 거였다. ...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아버지는 엄마의 존재보다 더 강도 높은 극기의 대상이다. 엄마가 죽었기 때문에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는 절망이 동반된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희망을 동반하고 있기에 이겨내기가 훨씬 더 힘들다.

종구는 인생의 동반자가 아닌 단지 모험의 동반자였다. 누가 인생의 동반자와 더불어 모험을 하겠는가.

이상한 일이었다. 그 순간 내 눈앞에는 기둥에 묶인 채 울고 있는 한 어린아이가 떠올랐다. 그애는 울고 있었다. 제 눈앞에서 엄마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애는 울고 있었다. 제 눈앞에서 엄마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애는 운다. 아니다, 울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마 울지 않았을 것이다. 울었다면 엄마는 되돌아와서 아이를 묶었던 끈을 풀고 아이보다 더 크게 오열하며 아이를 다시 가슴에 품었을지도 모른다. 울고 있는 아이라면 아마 두고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불안 때문이었을까. 아줌마처럼 강인한 사람은 아무리 힘든 삶이라도 자기가 익히 아는 일은 어떻게든 이겨나갈 자신이 있다. 그러나 새롭게 닥쳐올 일에 대해서는 불안하고 자신이 없다. 그것이 아줌마처럼 자기 생에 대한 의지는 강하되 자기 생을 분석할 줄 모르는 사람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바라보는 나'가 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현석오빠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가만히 갖다 댄다. 그러자 내 입술이 오빠의 입술에 닿은 것이 아니라 때마침 눈물이 가득 고인 오빠의 눈시울을 눌렀다는 듯이 곧바로 따뜻한 눈물이 오빠의 뺨을 타고 내려온다. 나는 손바닥으로 그 눈물을 닦아주고는 가만히 그 어두운 방을 나온다.

대체 우리들이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나라는 존재의 진실에 얼마나 가까운 것일까.

그러나 라디오에서 그렇게 독려해대는데도 불구하고 70년대에 대해 굳이 기대나 희망을 따로 품어야 할 필요는 느껴지지 않았다. ... 방학이 가까워지자 나는 방학계획표를 짰다. 그 계획표에 짜여진 내용을 어쩌면 거의 다 지킬 것이다. 이렇게 삶에 성실하면 그만이지 거기에 더해 무슨 꿈을 가진단 말인가.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95년 지금으로부터 13년전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 <새의 선물>

언니 말대로 재미있었다.
슬프기도 했고, 유쾌하기도 했고,
잘 만들어진 60년대 배경의 주말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재미가 있었다.
이 책을 95년에 읽었다면, 난 아마 은희경이라는 작가에 대해
그 당시 한참 인기를 끌던 신경숙과는 또 다르게 좋아했을 것 같다.
13년이 흐른 지금 은희경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해졌다.
이 책에서처럼 60년대와 90년대가 별반 다르지 않듯, 2000년대도 크게 다를 것은 없는지.

요즘 나온 은희경의 소설 하나 추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