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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듣고/책장.넘기는.소리

시대의 변화, 그러나 ... 열녀문의 비밀 / 김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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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문의 비밀 상,하 / 김탁환 / 민음사



보이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는 건 사실이니까.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소중한 것들이 참으로 많다네. 상하사방(上下四方)을 우(宇)라 하고 왕고래금(往古來今)을 주(宙)라 하니, 그 모두를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금상께서는 항상 중심을 강조하신다. 해가 밝게 빛을 발하면 천하 어둠은 사라지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서책을 읽고 외우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라네. 더 중요한 배움은 서책을 덮은 후부터 시작되지.

명분이 옳다고 모든 일이 순리대로 흘러가지는 않네. 세상 만사가 명분을 따라 돌아간다면 명나라가 청나라에 짓밟혀 패망할 까닭도 없지.

훌륭한 사람은 술에 취하면 착한 마음 드러내고 조급한 사람은 술에 취하면 가막수리처럼 사나운 기운 내뿜는다 했던가.

침묵이 나비처럼 떠돌았다. 눈을 감고 고개를 약간 든 김진은 만남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자넨 무슨 일이든 덤비려고만 들어 문젤세. 바둑은 두지 않음을 고상하게 여기고 거문고는 타지 않음을 묘하게 여기며 시는 읊조리지 않음을 기이하게 여기고 술은 마시지 않음을 흥취롭게 여긴다 했으이. 고요히 머물며 하지 않음의 아름다움을 되새기도록 하게나.

우리 사이는 뭐랄까, 나비와 꽃에 비길 수 있겠죠. 나비 날아들땐 세상 무엇과 바꿀 수 없을 만큼 기쁘고 머무는 동안에는 어찌 할 바 몰라 마음만 바쁘다가 훨훨 떠나 버리고 나면 그립고 애틋한 꽃의 심정을 아시나요?

서책이나 사물을 접하기 전에는 편견이 없는지 스스로 돌아보았으며, 살피기를 마친 후에는 처음부터 되짚어 실수를 줄였다.

가을 산은 수척하고 겨울 산은 싸늘하며 봄 산은 산뜻하고 여름 산은 물방울 떨어지는 듯하다고 하였던가.

담헌 선생도 연암 선생도 또 우리들도 마찬가지였던 것같으이. 기회만 오면 새 세상을 만들어 보이리라. 머리로는 이미 열두 번도 더 조선이란 나라를 탈바꿈시켰지. 세상은 그리 쉽게 변하는 법이 아닐세. 오히려 우리가 품은 열정이 더 빨리 쇠진할 테지.

좋은 것 아름다운 것 멋진 것만 찾아 헤맬 때도 있었지.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 안에 상처를 내는 것도 나쁘진 않아. 이 가슴 속 비명을 혼자 듣는 거라네.

일찍이 이덕무는 공부를 농사에 비겨 이른 흥미로운 글을 지은 적이 있다. 종이와 벼루는 농토이고, 붓과 먹은 쟁기와 호미며, 문자는 씨앗이고, 생각(意思)은 농사일에 익숙한 늙은 농부이고, 팔과 손가락은 농우(農牛)며, 책이나 권축(卷軸)은 창고나 상자며, 연적은 관개(灌漑)다. 농토, 쟁기, 호미, 종자, 창고, 상자, 관개는 근심할 것이 못 되지만 힘겨운 일은 오직 농사일에 익숙한 늙은 농부를 얻는 것이다.

그때 벌써 김진은 백탑 아래에서 키운 꿈이 깨어질 수밖에 없음을 어렴풋이 감지했던 것 같다.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는 매우 높았고 그 방법 또한 참신했지만, 그것은 오직 삼고성(三古聖, 문왕, 무왕, 주공 등 주나라의 세 성인)에 비견되는 정조 대왕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 대왕께서 우리 계획을 꺾고 우리 앞길을 막는다면 곧바로 암흑천지다. 우리나 삶은 휘청대는 외줄 타듯 하루하루 위태위태하다.



백탑파 시리즈의 두번째 책.
<방각본 살인사건> 이후 5년의 시간이 흐른 후, 적성에서 일어난 열녀문과 관련된 이야기.
<방각본 살인사건>이 백탑파들의 생각과 이상을 나타냈던 거라면.
<열녀문의 비밀>은 대감집 종부라는 여성을 통해
시대의 변화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가 받아들일 수 없었던 생각을
백탑파를 아끼지만, 그들의 생각을 모두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정조를 보여준다.

역시 아래는 열녀문의 비밀에 나왔던 좋은 우리말과 고사성어
(근데, 옮겨 적다보니 드는 생각은...
유독 여인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표현들이 참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적으로 여인의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았던 민족이었거나,
김탁환 선생님이 유독 여인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단어를 좋아하시거나...^^)

동포(同袍) : 옷을 서로 바꿔 입으며 괴로움을 함께 나눈 벗
붙박이별 : 북극성
지음(知音) : 참된 벗
두어() : 책만 읽고 활용할 줄 모르는 사람
만수받이 : 남이 귀찮게 굴어도 좋게 받아 주는 일
지닐총 : 기억력
멱서리 : 짚으로 결어 쌀이나 소금을 담는 그릇
유질지우(惟疾之憂) : 자식을 걱정하는 어버이 마음
저퀴 : 사람에게 지피어 앓게 한다는 귀신
간잔지런히 : 술에 취하여 눈이 게슴츠레하게 눈시울이 맞닿을 듯함
침어낙안지용(沈魚落雁之容) : 부끄러워 물고기도 가라앉고 기러기도 땅에 떨어질 만큼 아름다운 얼굴
실몽당이 : 실을 꾸려 감은 뭉치
경신년 글강 외듯 : 누누이 부탙ㄱ함
청담어(淸淡語) : 청고하고 담박한 말
구순하게 : 의가 좋아 화목하게
아퀴 : 일의 갈피를 잡아 마무르는 끝매듭
메지 : 일이 끝나는 마디
도사리 : 자르는 도중에 떨어진 풋과일
곧은불림 : 자기의 죄상을 사실대로 말함
대갈마치 : 온갓 어려운 일을 겪어 아주 야무치게 보이는 사람
음감(陰鑑) : 달빛 아래 생긴 이슬을 받는 그릇
가마무트름 : 얼굴이 가무스름하고 보기 좋게 토실토실함
연수(煙樹) : 연기나 안개에 싸여 멀리 보이는 나무
취허(吹噓) : 샘이 마를 때 물고기들이 서로 습기를 뿜어주는 일
나비잠 : 갓난아기가 머리 위로 두 팔을 벌리고 자는 잠
두름손 : 솜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