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고듣고/책장.넘기는.소리

마음 ... 연애시대 / 노자와 히사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연애시대 1,2 / 노자와 히사시 / 신유희 역 / 소담출판사


둘이 함께 살아가는 기쁨이란 앨범을 넘기는 일이 아니야. 둘이서 옛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고.
좀 더 즐거운 일이 앞으로도 많이 일어날 거라고 꿈꾸는 일이야.

술에 강한 나는 저렇게까지 취해 망가진 적이 없었는데. 워낙 리이치로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지.
그렇기때문에 리이치로의 어깨를 베개삼는 것이 얼마만큼 편안한지도 몰랐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참 쓸쓸한 일이었다.

연애라는 건 좀 이기적인 거야. 제삼자의 행복을 바라고 당장 눈앞의 상대와 올릴 결혼이 10년이든 15년이든 행복하게
지속될 수 있다니, 그건 네가 연애를 너무 쉽게 보는 거야.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눈앞의 상대를
위해 행복해지고 싶다는 이기적인 감정이 아니면 결혼은 오래 지속할 수 없어. 세월이 제 아무리 여과시켜도 변하지 않을
한 점의 이기심을 관철시키는 일이 필요해. '너를 행복하게 해줄께.'라는 말 뒤에 '내가 행복하지지 않으면 너도 행복해
질 수 없다.'는 신념이 따르지 않으면 같은 상대와 반평생을 함께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연애는 그런 거야. 전 남편이라는 우산에서 다른 우산으로 옮겨 쓰는 거. 그래가지고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달라지는 게 없을 거야. 우산을 받치지 않고 한 번쯤은 흠뻑 젖어서 추위든 불안함이든 그런 걸 겪어봐야 하지
않을까.

문제의 핵심은 언제나 마음이었다.

과연 8년 후의 나도 이 여자처럼 모든 면에서 자리잡은 느낌을 주는 성숙한 여인이 될 수 있을까. 눈 밑의 점 때문인지
몰라도 눈빛에 절제된 우수가 어려 있었다. 그러나 사물을 온통 비관적으로 바라본다거나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서른을 넘긴 독신 여성치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그 정도의 안정감을 주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밤바다에 내던져진 인간이 반짝이는 부표를 붙잡고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그런 고독감이 밀려들었다.

"악에게 굴복하지 말고 선으로써 악을 이겨내십시오......"

행복이란 쑥스러워하면 안 되는 것 같다. 정신연령을 15세 정도 낮춰 즐기지 않으면 손해인 거다.

"우리 말이야."
가사를 몰라서 허밍으로 부르게 됐을 때쯤 하루가 말했다.
"거리감이라는 걸 잘 몰랐던 남녀였던 거 같아."
"거리감?"
"항상 강한 남자와 강한 여자로 있고 싶었으니까, 서로가 정말 힘들거나 슬플 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랐어. 상처 입은
사자가 서로 상처 부위를 핥아주는 것처럼 우린 왜 못했을까."
"자존심이었겠지."
"저런 바보 같은 여자에게는 위로받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
"바보 같은 여자 아니야, 너는. 너무 완벽한 아내였어."
"그래서 더 자신의 약점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 아냐?"
"시비 걸지 마."
"시비 거는 거 아니야. 알고 싶을 뿐이야."
고개를 돌려서 하루를 보았다. 화가 난 눈은 아니었다.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눈이었다.
"자존심이 아니라면 신뢰였겠지. 하루는 힘들겠지만 반드시 자신의 힘으로 다시 일어나 줄 거야, 라는 신뢰. 내 쪽은
내 쪽대로 괴로움이 있었으니까. 내 일만으로도 벅찼는지 몰라......"
"당신이 힘든 건 내가 해결해 주고, 내가 힘들면 당신이 해결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야."
... (중략) ...
"나한테 두 번 다시 너 같은 여자는 나타나지 않겠지."
"나타나지 않아도 돼. 이런 여자는 한 명으로 충분하잖아. 계속 있어 줄 테니까."
"어디에?"
"당신이 보이는 곳. 하지만 당신은 날 볼 수 없는 곳에."

"평안한 행복을 그 손으로 붙들기 바란다. 알았지, 하루?"

가랑눈이 춤추고 있었다. 훗카이도를 얼리는 가혹한 한파가 곧바로 남하해서 우리들의 거리에 내려온다.
그것은 눈을 뿌리고 길 위에 얼음 덫을 깔아, 한데 엉켜 미끄러지는 우리를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루가 다치치 않도록
재빨리 내가 밑에 깔려도, 누구 한 사람 칭찬해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에게 작은 상처 하나 나지 않게 한 걸, 난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살아 나가자, 하루.
살다가, 살다가, 어느 한쪽이 먼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별의 말은 소중히 담아 두기로 하자.


------------------------------------------
노자와 히사시의 연애시대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노자와 히사시의 97년작.
소설책 자체가 그대로 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등장인물의 캐릭터, 적절한 에피소드와 지문, 그에 맞는 대사와 독백,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6년 봄
좋은 원작에 좋은 연기와 좋은 연출과 좋은 음악으로 만들어진 좋은 드라마로 기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