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 요시모토 바나나 / 김난주 역 / 민음사
<키친>
하지만 너, 지금은 힘들어. 힘들다는 것을 알려줄 사람이 주변에 없으니까, 내가 대신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
정말 홀로서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뭘 기르는 게 좋아. 아이든가, 화분이든가. 그러면 자신의 한계를 알 수 있게 되거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 뭐 다 그렇지. 하지만 인생이란 정말 한번은 절망해봐야 알아. 그래서 정말 버릴 수 없는 게 뭔지를 알지 못하면, 재미라는 걸 모르고 어른이 돼버려. 난 그나마 다행이었지.
<만월>
'왜 그러는데?' 라고 묻자, 유이치는 정색하고, '요 한 달 동안 내내 그런 말 들었어. 가슴을 저미는 말이야.'
'그래 ...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말해, 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다만, 이렇게 밝고 따스한 장소에서, 서로 마주하고 뜨겁고 맛있는 차를 마셨다는 기억의 빛나는 인상이 다소나마 그를 구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언어란 너무 노골적이라서, 그런 희미한 빛의 소중함을 모두 지워버린다.
세계는 딱히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쁜 일이 생길 확률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나혼자서는 결정할 수 없다. 그러니까 다른 일에는 대범하게, 되는 대로 명랑하게 지내는 편이 좋다, 고.
앞으로도, 즐거운 일과 괴로운 일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가령 유이치가 없어도.
<달빛 그림자>
그 옷 감상으로 입는 거니? 라고 묻자 그는, 그런 게 아니야.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현실은 현실이지, 라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차분해진다고. ... 나나 히라기는 요 두 달 사이에, 십여 년을 살명서 한번도 지어본 적이 없는 표정을 짓게 되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것을 아쉬워하지 않으려 싸우는 표정이었다. 문득 떠올라 불현듯 고독이 밀려오는 어둠 속에 서 있다 보면 알게 모르게 그런 표정이 되고 만다.
혹 그녀가 거짓말쟁이고, 가슴 설레며 달려간 내가 어리석었다 해도 상관없다. 그녀는 내 마음에 무지개를 보여주었다. 뜻밖의 일을 기대하는 설레임이 되살아나, 내 마음에 바람이 들어왔기 때문에, 설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둘이서 나란히 차갑게 빛나는 강물의 흐름을 바라보면 기분이 좋으리라. 그것으로 족하다.
'감기는 말이죠' 우라라는 속눈썹을 약간 내리깔고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이 가장 힘들 때예요. 죽는 것보다 더 힘들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마 더 이상은 힘들지 않을 거예요. 그 사람의 한계는 변하지 않으니까. 언젠가 또 감기 걸려서, 지금처럼 아플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본인만 건강하면 평생, 없을 거예요. 그래,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지겨워서 넌더리가 날 수도 있겠지만, 이까짓쯤 하고 생각하면 덜 힘들지 않을까?'
'정말 백 년에 한번 꼴로, 우연히 겹치고 겹쳐서 그런 일이 생기는 경우가 있어요. 장소도 시간도 정해져 있지않죠. 알고 있는 사람들은 칠석 현상이라고 해요. 큰 강이 있는 곳에서만 생기죠. 사람에 따라서는 전혀 보이지 않아요. 죽은 사람이 이 세상에 남긴 사념과, 남은 사람의 슬픔이 서로 반응했을 때 아지랑이가 되어 보이는 거예요. 나도 처음 봤죠.'
히토시. ... 손을 흔들어주어서, 고마워요. 몇 번이나 몇 번이나, 흔들어준 손, 고마워요.
드라마 히트를 가끔 보는데, 하정우가 고현정한테 사귀자고 하면서 이 책 얘기를 한다.
키친에 주인공들이, 사랑도 그들을 구원하지 못할 것을 알지만 그들은 함께 있기로 한다면서
그러니 함께 있자고.
그래서 사보게 된 책인데. 나쁘지 않았다.
타이틀인 키친 보다는 달빛 그림자가 더 좋았던...
99년 출간된 책이라 그런지 번역이 좀 껄끄러운게 좀 걸렸지만
인생은 즐거운 일과 슬픈 일과 행복한 일과 괴로운 일이 반복되고,
그러면서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치유하면서 살아가야한다.
상처받지 않은 척, 아프지 않은 척, 괜찮은 척 하지 말 것.
그런데, 칠석 현상이라는 거 정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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