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역사 10장 - 유리의 시대 :
유리 시대에 사람들은 자신의 일부가 대단히 부서지기 쉽다고 믿었다. 어떤 사람들에게 그것은 손이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넓적다리였다. 자기 코가 유리로 만들어졌다고 믿는 이도 있었다. 유리 시대는 석기 시대에서 좀 더 진화한 다음이었고, 진화적인 교적 단계로서 연민을 낳는, 새로운 의미의 '부서지기 쉬움'을 인간관계에서 도입했다. 사랑의 역사에서 이 시대는 비교적 짧아서, 한 세기 정도에 불과하다. 이그나시오 다 실바라는 의사가 사람들을 소파에 눕히고 문제의 신체 부위를 정신이 바짝 날 장도로 세게 때리고 절대 유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치료법을 고안해냈다. 그렇게 진짜 같던 해부학적 환각도 서서히 사라졌다. 우리가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지만 포기할 수도 없는 것처럼 흔적만 남았다. 때때로 유리 시대는 늘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다시 떠오르면서, 유리 시대가 침묵의 시대처럼 완전히 끝난 건 아니라는 걸 넌지시 일러준다.
사랑의 역사 첫 장 - 침묵의 시대 :
인간이 처음으로 사용한 언어는 몸짓이다. 사람들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이 언어에는 원시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것 가운데 손가락과 손목의 가는 뼈들을 움직여서 만들어내는 끝없는 배열로 표현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몸짓은 복잡하고 풍부하며, 완전히 사라지고 말 절묘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침묵의 시대에 사람들의 소통은 더 많았다. 결코 더 적지 않았다. 단순히 생존만을 위해서라도 손은 거의 언제나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었다.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순간은 오직 잠들었을 때다. 언어의 몸짓과 생명의 몸짓은 구분되지 않았다. 예컨대 집을 짓거나 저녁을 준비하는 노동은 '사랑해'나 '진심이야'라고 하는 기호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표정이 있다. 큰 소리에 두려워하면서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가릴 때도 무언가가 말해지는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이 떨어뜨린 것을 주우려고 손가락을 사용할 때도 무언가가 말해지는 것이다. 심지어 손이 쉬고 있을 때도 무언가가 말해지는 것이다. 물론 오해도 있다. 콧등을 긁으려고 한 손을 올릴 때 우연히 연인과 눈을 맞추게 된다면 그 연인은 그 몸짓을 '너를 사랑하는 게 잘못 되었다는 걸 지금 깨달았어.' 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런 실수는 가슴을 찢어놓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일이 쉽게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또 다른 사람들의 말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착각하지도 않기에 종종 상대의 말을 끊고는 자기가 제대로 이해했냐고 묻곧 한다. 사람들에게 말할 이유를 주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바람직할 때도 있다. '용서해줘, 그냥 콧등을 긁은 것뿐이었다. 물론 널 사랑하는 게 늘 옳다는 걸 알아.' 이런 실수가 자주 벌어지면서 용서해달라는 몸짓을 가장 단순한 형태로 진화했다. 그저 손바닥을 내보이면 '용서해줘'라는 뜻이 된다.
하나의 예외만 제외하면 이 최초의 언어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이 최초의 언어에 대한 모든 지식의 기초가 되는 그 예외란 일흔아홉 개의 화석 몸짓들 모음이다. 이것은 문장 일부를 표현하는 손짓의 흔적으로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작은 도서관에 남아 있다. 그 중에는 '비가 내릴 때 가끔'이나 '이 모든 해가 지난 후에' 혹은 '내가 널 사랑하는 게 잘못이었어?'라는 의미의 손짓들도 있다. 1903년 모로코에서 아르헨티나의 의사 안토니오 알베르토 데 비에드마가 오아틀라스 산맥을 등산하던 중에 어떤 동굴에서 일흔아홉 개의 손짓이 새겨진 혈암을 발견했다. 그는 몇 년에 걸쳐 연구를 하고 나서 갑자기 돌에 새겨진 주먹과 손가락의 섬세한 움직임을 해독할 수 있었다. 그는 곧 페스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죽어가면서도 내내 잠자고 있던 천 개의 몸짓을 이루며 새처럼 손을 움직였다.
큰 모임이나 파티에서 혹은 멀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옆에 있을 때 당신의 손은 팔 끝에 어색하게 늘어져 있다. 자신의 몸이 너무 낯설게 느꼈을 때 슬픔에 압도되어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건 정신과 몸, 뇌와 가슴, 안팎의 구분이 훨씬 적었던 때를 당신의 손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손짓의 언어를 완전히 망각한 것은 아니다. 말할 때 손을 움직이는 습관이나 박수 치는 것, 또 뭔가를 가리키거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것 모두 고대 몸짓의 유물이다. 예컨대 손을 잡는 것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느낌을 함께 기억하는 방식이다.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우리는 서로를 이해시키기 위해 상대의 몸에 손짓을 보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사랑의 역사 - 감정의 탄생 :
감정은 시간만큼 오래된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나뭇가지 두 개를 문질러서 처음으로 불을 피웠던 순간이 있듯이, 처음 기쁨을 느낀 순간과 처음 슬픔을 느낀 순간도 있었다. 얼마동안 새로운 감정이 계속 만들어졌다. 욕망과 후회는 일찍 태어났다. 고집스러움을 처음 느꼈을 때 그것은 연쇄반응을 일으켜서 한편으로는 분노를, 또 한편으로는 소외와 고독을 만들어냈다. 환희의 탄생은 엉덩이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리는 움직임으로 시작되었다. 번갯불은 처음으로 경외의 감정을 만들었다. 아니면 알마라는 소녀의 몸일지도 모른다. 논리적이지은 않지만, 놀라움의 감정은 즉각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사물에 익숙해진 후에 생겨났다. 시간이 충분히 지나고 누군가가 처음으로 놀라움의 감정을 느꼈을 때 어딘가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처음으로 향수의 고통을 느꼈다.
때로 사람들은 어떤 기분을 느끼지만 그것을 나타내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감정은 감동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묘사하고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잡으려는 시도나 마찬가지였으리라.
느끼기 시작한 후 사람들의 욕망은 커져갔다. 그들은 더 많이, 더 깊이 느끼고 싶어 했다. 때로 상처가 되더라도 상관없었다. 사람들은 감정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새로운 감정을 들춰내려고 애썼다. 여기에서 예술이 태어났을 수도 있겠다. 새로운 종류의 즐거움이 만들어지고 또 새로운 종류의 슬픔도 만들어졌다. 있는 그대로의 삶에 대한 영원한 실망과 예기치 않았던 유예의 안도감, 그리고 죽음의 공포.
지금까지도 모든 감정들이 전부 존재한다고는 할 수 없다. 아직도 우리의 능력과 상상력을 넘어서는 감정들이 있다. 아직 아무도 작곡하지 않은 음악이나 아무도 그리지 않은 그림, 또는 예상하거나 측량하거나 묘사하기도 불가능한 무언가가 일어나고, 전혀 새로운 감정이 이 세계에 들어올 때도 있다. 그리고 그때 감정의 역사에서 수백만 번째로, 그의 가슴이 요동쳤고, 그 충격은 온전히 받아들였다.
사랑의 역사 14장 - 줄의 시대 :
그렇게 많은 단어들이 사라졌다. 그 단어들은 입술을 떠나 용기를 읽고 목적 없이 헤매다가 낙엽처럼 도랑으로 모여들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 단어들의 합창 소리가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아름다운소녀였어제발가지마나도내몸이유리로만들어졌다고믿어아무도사랑해본적이없어내가웃긴다고생각해용서해줘......
한때 한 가닥 줄을 이용해서 단어들을 인도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그 단어들은 목적지를 향해 가다 말고 비틀거릴 것이다. 수줍어하는 사람들은 주머니에 작은 줄 뭉치를 넣고 다녔다. 큰 소리로 지껄여대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런 줄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남들이 자기 말을 귓결에 듣는 데 익숙한 사람들도 타인에게 어떻게 자기를 이해시켜야 할지 모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줄을 사용하는 두 사람 간의 물리적은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거리가 좁을수록 줄이 더욱 필요하기도 했다.
줄의 끄트머리에 컵을 붙이는 관행은 훨씬 뒤에 통용되었다. 이것은 귀에 조가비를 갖다 대고 이 세상의 최초의 표현 가운데 아직도 남아 있는 메아리를 들어보겠다는 누를 수 없는 욕망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또 말한다. 미국으로 떠난 한 소녀가 대양을 가로질러 풀러놓은 줄의 끄트머리를 움켜쥔 한 남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이 세계가 커지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사라지지 않게 해줄 정도의 줄이 부족해지자 전화가 발명되었다.
어떤 줄로도 말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 경우에 어떤 모양의 줄이라도 한 사람을 침묵하게 만든다.
사랑의 역사 18장 - 천사들 사이의 사랑 :
혼자 있기 : 인간의 삶과 마찬가지로 천사들도 가끔 서로 싫증이 나서 혼자 있고 싶어 한다. 천사들이 사는 집은 혼잡하고 또 갈 만한 곳도 없어서 이런 순간이 되면 천사는 그저 눈을 감고 팔로 머리를 감싼다. 한 천사가 이렇게 행동하면 다른 천사들은 그가 자신을 속이고 혼자 있으려 한다는 걸 이해하고는 발꿈치를 들고 주변을 살살 걸어다닌다. 또 그를 도와주기 위해 마치 그가 거기 없다는 듯이 그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연히 그에게 부딪히면 이렇게 속삭인다. "내가 아니었어."
더 좋거나 더 나쁘거나 : 천사들은 결혼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너무 바쁘고, 또 서로 사랑에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처음으로 한 손을 내 갈비뼈 아래 닿았을 때의 기분이 어떤지 모른다면 사랑할 기회가 있겠는가?)
니콜 클라우스의 사랑의 역사 보다... 그 안에 나오는 '사랑의 역사' 라는 이 책이 더 눈길을 끌었던...
'보고듣고 > 책장.넘기는.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처받지 않은 척 하지 말것 ... 키친 / 요시모토 바나나 (3) | 2007.05.16 |
---|---|
타인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가능한가? ... 타인의 고통 / 수전 손택 (4) | 2007.03.25 |
사랑, 끝나지 않는 ... 사랑의 역사 / 니콜 클라우스 (0) | 2007.03.06 |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편지 ... 그 책에서 (3) | 2007.01.29 |
지금 당장 사랑한다고 말하기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 조너선 사프란 포어 (2) | 2007.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