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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아버지로서의 권리와 의무, 그 이전에...



1.
죽어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시대의 아이콘 고 최진실


그녀의 죽음 당시, 사흘내내  장지를 지키던 조성민을 보면서
나는 그래도 살부비며 살았던 정이란게 있구나, 그에게도 먼가 미련이 남았나보다 했었고,
그의 그런 모습이 참 아련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채 한달이 안되어 그의 이름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사람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군. 하며
뻔한 내용일 그 기사들을 읽어보지도,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또다시 그녀를 이용해, 쓰레기 같은 기사를 양산하고 있는 언론의 작태가 짜증나기도 하고,
구지 나까지 관심을 기울여, 그녀가 쉬지 못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나만의 양심이기도 했다.


2.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자극적인 제목의 책도 읽지 않았고,
어느 영화기자 왈, 손예진이 너무 예뻐서 기존 책에서의 페미니즘적 주제를 부각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작용했다는 말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때도 가히 이해가 되어, 구지 극장을 찾아서 볼 생각이 없었으나,
영화를 보여주겠다는 어떤 남자의 제안에
액션영화는 싫고, 내가 보고싶었던 영화는 주제가 무거워 부담스러울거 같아서 골랐던 영화가 이 영화였다.
적당히 유쾌하게 적당히 눈요기하며 적당히 가볍게 볼 수 있을 거 같아서...

사랑하는 여자를 연애의 무덤으로 데려가기 위해 결혼을 조르는 남자.
그와의 결혼생활'도' 만족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다른 남자'도' 사랑하게된 자유로운 영혼의 여자.
결혼 생각은 없었지만, 그녀의 설득에 의해 이중결혼을 하는 또 다른 남자.
갈등은 아이에서 촉발된다.
남자에게는 그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가 중요하다. 나의 아이인지, 그놈의 아이인지.
애초부터 '그녀의 아이' 혹은 '우리의 아이'라는 개념은 없다.
영화는 그녀 없이 살 수 없는 두 남자가 그녀와 아이가 있는 외국 어딘가로 가서 행복한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으로 끝난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어떤 남자가 아주 흥분한 목소리로 '저게 말이 돼? 난 절대 이해할 수 없어.'를 연발했고,
나와 같이 영화를 본 남자도 '니가 결혼했는데, 남자가 저렇게 또 결혼하겠다면 넌 어떻게 할꺼야?' 라고 물으며,
여자나 남자나 다 똑같으며, 아까의 그 남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말도 안되는 영화라는...

내가 살아가는 이 나라가 특별히 가부장적이라고 압박을 받으며, 그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며 살아온 인생은 아니지만,
이런 순간 문득문득 마음이 답답해진다.
내가 이해한 이 영화의 주제는 일부일처의 지금의 결혼제도를 일처다부제로 바꾸자가 아니다.
남성 중심적인 시각, 혹은 남자를 우선으로 하는 모든 인식과 제도를
남성, 여성으로 나누어 한쪽에 편중되지 않는 시선으로 보는 것... 그렇게 다시 한 번 들여다보자는...

그런 점에서, 이 영화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자꾸 생각하게 된다는 점에서...
(물론 기대감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테고, 어쩌면 책이 더 괜찮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영화 포스터의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자신 있어?'라는 카피는 잘못 뽑았다는 생각과 함께,
영화 홍보를 맡은 사람도 영화에 대한 이해는 없었다는 생각도 들고...)


3.
아버지의 권리를 주장하기 이전에...






지난주, 지하철 가판대에서 오랜만에 시사인을 사들었다.
이번주 특집 1. '싱글맘'의 끝나지 않은 사투.
고 최진실의 가족과 조성민의 공방을 다루고 있다. (기사 보러가기)

서구의 경우 자녀 중심적 관점은 친권 문제를 따질 때 가장 핵심적인 고려 요소이기도 하다. 친권과 양육권이 분리돼 있지 않은 미국과 영국에서는 친권.양육권자를 결정할 때 '자녀의 최선의 이익'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명시돼있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 친권 문제를 다룰 때는 여전히 자녀의 이익보다 부모 권리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 시사인 61호 (2008/11/15) 특집 '싱글맘'의 끝나지 않은 사투 중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권리와 의무'라는 단어는 어딘지 차갑다는 느낌이 있다.
그들의 관계는 '권리와 의무'보다 우선하는 '사랑'으로
'권리와 의무'에 포함되는 모든 것들이 정리가 되거나 혹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그러나, 이혼이 많아진 요즘, 이 '부모로서의 권리와 의무'가 종종 문제가 된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 어머니를 잃어도, 그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친권은 인정되고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못한 어머니가 남편을 살해하고, 그 정황이 모두 인정된다해도, 
그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친권은 인정되지 않는...
어머니에게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강요되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아버지에게는 무조건적인 사랑보다는, 그에 우선하는 권리가 먼저 인정되는...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는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이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져,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고,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며, 고개숙인 남자들이 많다고 해도,
그래도 우리 사회는 아직 전근대적이다.
(혈연 중심적이라고도 하는데, 그 말은 인정할 수가 없다. 아버지의 피만 피고 엄마의 피는 물인가,
왜 아버지의 피는 아버지의 아버지인 할아버지에게로 연결되는데,
왜 어머니의 피는 어머니의 어머지인 외할머니에게로는 연결되지 않는가...
제대로된 혈연 중심이라면 아버지의 피와 함께 어머니의 피도 동등하게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의 피만 더 진한건 아닐테니...)

남자와 여자, 이전에 하나의 개체로서의 '사람'이다.
자녀도 마찬가지로 아버지에게 혹은 어머니에게 소속된 무엇이 아닌, 그들의 행복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다.


한때 사랑했던 여자와 헤어졌고,
그녀와 헤어지면서 친권을 포기했으며,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까지 주장했고,
헤어진 후, 단 한 번도 만난 적도, 보고싶었던 적도 없었던 아이들.

조성민이 정말로 그 '아이들의 복지와 행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아버지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며, 보도자료를 뿌리고 인터뷰를 하며 언론플레이를 하기 이전에,
그 아이들의 상처를 먼저 돌봐주었어야 하는게 아닐지...
그 아이들이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을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했어야 하는건 아닌지...
그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최선의 행복을 보장해주고자 하는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줬어야 하는건 아닌지...
 

싱글맘의 사투는 죽어서도 끝나지 않은 채 지리하게 연장되고 있으나,
그래도 언젠가는 끝날 그녀들의 사투가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녀, 권리와 의무를 따지기 이전에
모두가 조금씩은 행복해질 수 있도록, 그 중에서도 자녀들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세상이 되기를...

모든 싱글맘들에게 희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