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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깨달은.이의.가르침

내가 세상이고, 세상이 곧 나임을 아는 것. 그래서 만물의 아픔도 곧 나의 아픔이 되는 것



* 성도의 의의

청정한 마음으로 세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제법실상을 깨닫다
- 제1선 : 옳고 그림, 선악을 깨닫다.
- 제2선 : 선악의 구별을 넘어서다. (선악시비 분별은 자기의 업식에서 생김)
- 제3선 : 모든 존재의 실상이 청정히 빛난다. (고뇌, 번뇌, 고통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것이 사라졌다는 생각조차 없는 청정함 그 자체)
- 제4선 : 니르바나(해탈)

하늘과 인간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고, 다시는 어두움읭 세계에 들지 않는 부처의 세계, 여래의 세계를 선포하다

모든 중생의 고통이 한 눈에 들어온다.
- 관세음보살 : 세상의 신음소리를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것


* 연기법(緣起法)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연관 되어 있다.
- '밥'에서 이 밥이 내 앞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사람들의 정성과 노고, 또 태양과 땅과 미생물들까지 유형 무형의 모든 작용을 함께 보는 것 
- 눈에 보이는 것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모두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깨달은 자는 천하 만물이 연관되어 한 몸임을 알고 보니, 만물의 아픔은 바로 자신의 아픔이다 (동체대비보살도)
내 몸에 난 상처처럼 그대로 아픔으로 느껴지는 것.
- 약육강식의 세계관은 세계와 나를 별개로 떨어뜨려서 보기 때문
- 다만, 신체의 각 부분들처럼 각각의 역할이 다른 것 : 세상은 하나의 몸이고, 그 몸에서 각각의 역할부담이 나눠져 있음
- 과보를 알고 마음의 원망과 미움 없이 기꺼이 받아들인다 : 지었기 때문에 받은 것을 알아야 한다. 기꺼이 받을 것
- 시간의 연관됨은 인연법, 공간의 연관됨은 연기법

인간끼리 서로 싸우면 바로 멸해짐
인간끼리 협조한다고 해도 다른 생물이나 자연과 함께 협조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잠시 연장될 뿐 끝내 멸해짐
사람 뿐 아니라 모든 자연과 함께 연관됨을 알고 모두와 협조하면 살 수 있다.
연기론적 세계관에 입각해서 세상을 보아야 한다.


* 법열(法悅) : 깨달음의 기쁨

이 세상이 버릴 것도 취할 것도 없이 그대로 소중하다는 기쁨을 만끽하심 (7주간)
- 보리수나무를 무념무상으로 응시 (일체 바라는 마음이 없이 응시)
- 보리수나무 곁을 한 발, 한 발 걸으심 (행선 行禪)
- 보리수 북편에서 명상을 하시는데 몸에서 빛이 남 (방광 放光)
- 한 바라문을 만남
   : 바라문의 법을 묻기에 생각과 말과 행동이 모두 청정한 것이 바라문의 법이라 하심
   : 교만한 마음(마음에 상을 가지고 있는 것)때문에 그냥 떠나버림 (청정함이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혈통과 경전에 있다고 생각함)
- 무차란드 용왕이 부처님 몸을 감아서 보호
- 두 상인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으나 법을 듣겠다는 마음이 없었음
   --> 스스로 마음을 내지 않으면 법의 실상을 볼 수 없음

설법을 위해 말이 필요하지만, 말은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에, 문자에만 집착해서는 안된다. 그 안에 담긴 마음과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보림 : 깨닫고 나서, 어떤 상황에서도 일체에 여여한지 점검하는 것.

자기 분별이 깨져야 깨달음의 길에 들어갈 수 있다.
내 생각에 맞는 사람을 찾아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내 생각을 버려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내 눈을 뜨지 않으면 스승이 눈 앞에 있어도 알아볼 수 없다.



2010 정토불교대학 - 부처님의 일생 6강 '성도의 의의'
2010. 7. 6 / 서초법당



어젯밤, EBS '지식채널e' 담당 PD였던 김진혁 PD ( @madhyuk )로부터의 트윗
- 우리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절망합니다.
  그러면서 한 사람의 인생을 손에 쥔 채로 언제든 바꿀 수 있다는 걸 잊고 지내죠. 바로 자기 자신 말입니다.

그의 트윗을 RT 하며 내가 덧붙인 한 마디
- 나를 바꾸는 것과 세상을 바꾸는 건 연결되어 있죠. 내가 세상이고 세상이 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