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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다

마니산 등반


 



2008. 10. 14
마니산 등반 (등산 아님)

등산(登山) : 운동, 놀이, 탐험 따위의 목적으로 산에 오름
등반(登攀) : 험한 산이나 높은 곳의 정상에 이르기 위하여 기어오름


9월에 진행했던 프로젝트 때문에
행사장 답사로 강화도 마니산을 다녀온 후배가
올라갈 때는 힘들었지만, 올라가보니 너무 좋더라며
혹 기회가 있으면 꼭 가보라는 얘기에
마침 강화도에 예쁜 팬션을 발견해서 가는 김에 마니산을 올라가봐야겠다 했다.

운동화를 가져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짐을 하나라도 줄이자는 차원에서,
그리고, 마니산 머 동네 뒷동산보다 조금 높겠지. 라는 만만한 생각에
운동화를 내려놓고, 평소 편하게 신고 다니던 신발을 신고 출발.

펜션에서 나올 때 나의 차림을 본 펜션 주인이
그 신발 신고 가냐길래, 편한데요 라고 씩 웃고는 그냥 나왔다.


펜션이 함허동천과 가까워서 그쪽 등산로를 이용해야지 하고는 걷기 시작했는데,
평일이어서였는지, 메인 등산로가 아니어서였는지,
간혹 내려오는 사람만 몇 보이고,
올라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이, 혼자 올라가다보니 어느 순간,
등산로라 하기엔 좀 험한, 길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는... 그래서 살짝 무서운 느낌이 들어서,
더 올라갈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겁이 많은 성격 탓에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길이 아닌 것 같은 그 쪽에서 내려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어서
길이 맞구나 하며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올라가면서 생각보다 험한 산세에,
내려올때는 이쪽길로 못 내려오겠다. 참성단까지 가서 계단형으로 되어 있다는 주 등산로로 내려가야겠다 했다.

함허동천쪽 등산로로 어느 순간 꼭대기 인 듯한
강화도를 둘러싼 바다가 좌우로 내려다 보이는 곳엘 올라섰다.

아, 이런 경치 때문에 올라가보라고 한거였구나 싶은...
바다와 중간중간 섬들이 그야말로 그림처럼 펼쳐진,
근데, 그 풍경이 앞뒤좌우로 펼쳐진,
어느 산에 올라가서도 볼 수 없었던 풍경이 펼쳐졌다.

힘들게 들쳐메고 올라온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물 한 모금 마시고 보니,
거기서부터 참성단까지가 바위로 된 산의 능선.
겹쳐진 바위들 위에 쇠파이프들이 2m 정도 간격으로 박혀있고, 두꺼운 밧줄이 연결된...
뒤돌아 가지는 못하겠고, 편하지만 헐거운 신발을 신고, 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정말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한 20분인가를 서있었던거 같다.
(그때 마침 전화가 와서 이기도 했지만,
전화통화를 하는 중에도 계속 그 능선을 바라보며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했다.)

정신차리자, 신발이 벗겨지지 않게 발에 힘을 주고, 밧줄을 쥔 손에도 힘을 주고
으쌰으쌰 하며 앞으로 조금씩 가는데,
반대편에서 오던 등산화 신은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지나가며 다들 한마디씩 하셨다.
'아니, 그 신발을 신고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요?'
'참성단까지 가기 힘들텐데...'
'등산화를 신고 왔어야지...'

그렇게 가고 있는데, 뒤에서 오시던, 아주 능숙해보이던 어떤 아저씨...
'혼자 왔어요?' 하시더니 '길동무해드릴까요?' 하시길래
평소 같았으면 '아뇨, 괜찮아요.' 하며 새침한 척했을텐데,
그날은 정말 '그래 주시겠어요? 감사합니다.' 라고 넙죽 부탁을 드렸다.
본인이 끼고 계시던 장갑도 벗어주시고,
앞서가시면서 올라가기 힘들땐 손도 잡아주시고,
답답해 보이셨는지 '왜 꼭 참성단까지 가야해요?' 하시길래
'올라온 길로는 못내려가겠어서요.'
'그래도 기본 체력이 있네요.' 하시길래
'네? 감사합니다.' 하며 열심히 쫒아갔다.
암튼, 그분 아니었으면, 그날 산에서 못내려왔을지도...
(성함도 모르지만, 그 분께 감사...^^)




이 사진이 참성단에서 찍은, 내가 등반을 했던 바위로 된 능선


그렇게 힘들게 참성단까지 가니
기분이 참 좋았다.
외부 상황과 관계없이 스스로의 의지로 먼가 이루었다는 느낌.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성취감.

참성단에서 내려오는 길은 경사진 계단길이었고,
그 길을 내려오면서부터 벌써 종아리도 땡기고, 발에 물집도 잡혔고,
그후 한 일주일을 절둑거리며 걸어다녔지만
그래도 휴가기간 뭔가 의미있는 걸 했다는 느낌이 꽤 오래 남아있었다.


그래서 지금,
사람들에게 마니산 등반을 추천 중.
단, 등산화 꼭 신고!!




이 신발이 그날의 등반때 신었던 빨간 플랫슈즈.
교통사고로 높은 굽의 신발을 신을 수 없었던 나에게 몇개월간의 편안함을 안겨주고,
그날의 등반 이후, 신발 바닥이 닳아버려 버려져야했던.
저렇게 편한 신발을 하나 더 사야하는데, 저거처럼 맘에드는 신발이 안보인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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