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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제발, 두 번 죽이지 마라

<한겨레21> 516호 '만리재에서' 전문


김선일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조국의 품에 안기던 날, 미국에서는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화씨 9/11>이 개봉됐다. 마치 김씨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라도 하듯, 우여곡절 끝에 개봉된 <화씨 9/11>은 개봉 첫날부터 매진사태를 빚었다고 한다. 과연 자신들이 일으킨 명분 없는 침략전쟁 때문에 김씨가 희생됐다고 생각하며 영화를 본 미국인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그래도 극장가가 썰렁했다는 소식보다는 흥행이 성공적이라고 하니 약간의 위안이 되는 게 사실이다.

무어 감독의 용기와 매진 사태의 의미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는 사이, 미국의 한 방송사가 여지없이 분위기를 깨뜨린다. 뉴스쇼 프로그램에서 "살고 싶다"고 절규하는 김선일씨 모습을 담은 화면을 보여주면서 진행자와 출연자들이 "덜 떨어진"(retarded) 친구라며 깔깔대는 장면을 방영한 것이다.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다. 미군의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포로학대 사건이 폭로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라크 전쟁을 바라보는 미국 사회의 두 얼굴과 동시에 마주치게 된다. 이성과 광기의 표정이 겹쳐진 그런 얼굴을.

그럼에도 [화씨 9/11]의 원작인 [이봐, 내 나라를 돌려줘!]에서 무어 감독이 전쟁과 테러를 저주하고 평화를 갈망하는 외침은 음미해볼 대목이 적지 않다. "테러와의 전쟁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나 북한이나 시리아나 혹은 우리가 결국 침공으로 마무리지을 어떤 지역에 대한 전쟁이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음울한 충동에 대한 전쟁이어야 한다. ... 테러의 땅에 봄날이 왔고 우리는 전 지역에 테러의 싹을 키우고 있다. 이것이 세계를 안전하게 만드는 방법인가? 진정한 안보는 미국과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기본 욕구와 더 나은 생활에 대한 꿈을 충족시킬 수 있을때 가능하다."

무어 감독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영화와 책으로 부시 일가의 비리를 폭로하고 전쟁과 테러의 위험성을 고발했지만 김선일씨의 절규와 비교하면 한가롭게 느껴질 뿐이다. 김씨는 참수 직전까지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다. 오직 살아 돌아가야 한다는 목숨을 건 절규여서 더욱 그렇다. "제발, 대통령님! 제발, 부시! 제발, 노무현 대통령! 이라크에서 나가주십시오. 나는 살고 싶습니다. 한국에 가고 싶습니다.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제발 저를 도와주십시오."

무어 감독은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막기 위해 자신의 예술혼과 명예를 걸었고, 김선일씨는 한국군 파병과 자신의 목숨을 맞바꿔야 했다. 이제 무어 감독은 대박을 터뜨린 영화 덕분에 세계 평화의 전도사라는 칭송을 들으며 맹활약하겠지만, 김선일씨는 테러의 잔혹함을 고발한 채 쓸쓸히 우리 곁을 떠나갔다.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많은 빚을 안겨준 채... 그의 죽음을 두고두고 되새겨봐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가족들이 50억과 국립묘지 안장을 요구했다고, 아들 목숨 팔아먹는 사람들이라고
네티즌들이 이번엔 유가족들을 향해 욕을 하고 나섰다.
사람 하나 죽은게 무슨 순교라도 되는 거냐고 이젠 촛불집회 소리도 지겹단다.

도대체 능력없고 비열한 나라에게 버림받고 죽은 사람의 목숨값이 그럼 얼마면 된다는 소린가
1억? 10억? 50억은 절대 안된다?
100억을 준단들, 외통부 건물에 아들의 뼈를 묻는들, 그 부모의 가슴에 박힌 상처가 사라질 것인가

제발 부탁이건데, 한번 죽은 사람 또 죽이지 마라.
그렇지 않아도 이 땅에서 숨쉬는 것조차 진저리치게 싫은 사람들이다.
단 한번만이라도 입장을 바꿔서들 생각해봐라.
내 동생이 내 가족이 혹은 내가 그 입장이라면 나에게 그런 일이 닥쳤다면......

파병 찬성 하면, 직접 가라.
내 목숨은 소중한데, 나와 관계없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목숨은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와 관계없는 사람이어도,
어느 누군가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아들이고, 동생이고, 남편이다.

다른 사람의 상처로 나의 행복을 꿈꾸지 마라.
누군가, 나의 상처로 행복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