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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지금은 그녀들을 애도할 때이다.


2년전, 이은주가 자살을 했다.
드라마 '카이스트'에 나올때부터 눈여겨봐왔었던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몇 안되는 매력적인 여자배우 중 한명이었다.
그녀가 영화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좋았고, 인터뷰하는 목소리도 좋았고, 가볍지 않은 그녀의 이야기들도 좋았다.
그래서,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한 것에 대해서,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궁금했다. 왜 그런 선택을 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자살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서.
쏟아져나오는 기사?들을 실시간으로 계속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 기사?들에 추측성 보도만이 난무했을 뿐,
그녀를 진심으로 애도하며,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볼만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3주전, 유니가 자살을 했다.
회사 여직원이 '콜콜콜' 뮤직비디오를 봤냐며 보내준 동영상으로 그 뮤비를 보며
그 전 다른 섹시컨셉의 여자 가수들보다 더 큰 가슴과, 더 찐한 춤과, 더 노골적인 가사로
대중의 시선을 한 몸에, 최대한 빨리 받아보고자 몸부림치는 그녀에 대해 딱 그 수준의 천박함으로 매도했고,
'그렇고 그런, 닳고 닳은, 저급의 여자 연예인'으로 그녀를 나의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그녀가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잊고 있던 그녀가 생각 났고, 관심이 생겼으며, 미안했다.
2년전과 다르지 않게, 아니 그 보다 더 노골적으로 허접쓰레기 같은 기사들이 쏟아져나왔고,
그 수준을 넘지 않는 악플과 냉소 또한 여전했다.

어제, 정다빈이 자살을 했다.
김래원이 출연했던 '옥탑방 고양이'와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드라마에서 그녀를 보며
나에게 그녀는 아직 '배우'라기 보다, '귀여운 여자 연예인' 이었고
그녀가 '귀여움'을 버리고, '예쁜' 연예인이 되기 위해, 성형을 하고 나타났을 때
'평범하게 예쁜' 그녀보다 '귀여운' 그녀가 더 나았다고,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그녀를 안주삼아 몇번 씹었었다.
그런 그녀가 자살을 했고, 유니와 마찬가지로 미안했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빈소를 찾는 연예인들의 패션 화보같은 사진들이 쏟아져나오고 있고,
3주전과 동일한 수준의 기사와 악플은 그대로 난무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살이 장난이냐며, 왜이렇게 무책임하고, 나약하냐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게임을 하듯, 사람들의 흥미꺼리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 허접쓰레기 같은 기사를 쏟아내고,
어떤 사람들은 그 기사에 악플을 달고,
어떤 사람들은 이제 이 모든 책임을 악플러에게 돌리고 있다.

죽기 전에도, 죽은 후에도,
여전히 대중의 심심한 일상을 채워주는 흥미꺼리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외롭고 쓸쓸한 그녀들이 불쌍하고,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

자살할 이유가 있고 없고, 남자친구가 누구며, 미니홈피에 어떤 말들을 남겼는지,
그녀와 주변인들의 사생활과 인권은 무시된 채 제공되는,
그 정보의 사실성 조차도 보장되지 않은 채 쏟아져나오는 허접쓰레기 같은 단편적인 기사를 수집하고,
딱 그 수준의 단편적인 판단을 하고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대고, 악플을 달기 이전에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그 죽음이 절박한 심정으로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에 대해,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 옆에서 손을 내밀어주지도 못하고, 어깨를 빌려주지도 못한 우리에 대해,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달라고, 어깨를 빌려달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이해받지도 못한 그들에 대해,
먼저 진심으로 가슴 아파해야하지 않을까...
진심으로 그들의 명복을 빌어줘야하지 않을까...

지금은 그녀들을 애도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