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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듣고/책장.넘기는.소리

사랑, 끝나지 않는 ... 사랑의 역사 / 니콜 클라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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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 The History of Love / 니콜 클라우스 / 한은경 역 / 민음사



나는 남들에게 나를 보이려고 애쓴다. 밖에 나갔다가 목이 마르지도 않은데 주스를 살 때가 있다. 가게에 손님이 너무 많으면 잔돈을 다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러면 5센트와 10센트 동전이 사방으로 굴러간다. 나는 무릎을 꿇는다. 무릎을 꿇는 건 힘든 일이고 다시 일어나는 건 더욱더 힘든 일이다. ... 그저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는 날 죽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외로움, 그것을 전부 받아들일 만한 내장은 없다.

살아있는 한 다시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지 않겠노라고 맹세하던 소년이었던 그 남자가 자신의 약속을 지킨 건, 고집이 세거나 그녀에게 충실해서가 아니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3년 반이나 숨어서 지낸 마당에 그의 존재조차 모르는 아들을 향한 사랑도 숨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인이 그러라고 부탁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이목에서 완전히 사라진 사람이 하나쯤 더 숨기는 것이 그다지 대수였겠는가?

밖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나를 안방으로 불러 안아주고 사방에 뽀뽀를 하고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너무 사랑해." 내가 재채기하면 엄마는 말한다. "괜찮니?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 내가 일어나서 티슈를 가지러 가면 또 말한다. "널 이렇게 사랑하니까 내가 갖다줄께." 숙제를 하려고 펜을 찾으면 엄마가 말한다. "내걸 써라. 널 위해서라면 뭐든 줄께." 다리가 근질거리면 엄마가 말한다. "여기니? 안아줄께." 내 방에 올라갈라치면 엄마가 부른다. "뭘해줄까? 널 이렇게 사랑하는데." 그러면 늘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실제로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덜 사랑해 주세요라고.

사실은 기다리는 것을 이미 오래전에 포기해 버렸다. 그 순간은 이미 지나갔고, 우리가 살 수도 있었을 삶과 우리가 살아온 삶 사이의 문이 우리 면전에서, 아니, 내 면전에서 꽝 닫혀버렸다.

오늘 조금 더 행복해졌다고 해서 조금 더 슬퍼졌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아. 넌 매일 둘 다 조금씩 더해져.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이 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또 가장 슬프다는 거지.

누가 나에게 선물을 준 건 너무 오랜만이었다. 행복의 느낌이 내 가슴을 찔렀다. 아침마다 일어나서 손으로 따뜻한 찻잔을 감싼다. 비둘기가 날아가는 것을 본다. 내 인생의 말년에 브루노가 나를 기억해 준다.

리트비노프는 진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웠다.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같이 사는 것이다. 그건 코끼리와 함께 사는 것과도 같았다. 그의 방은 작았다. 아침마다 화장실에 가려면 진실 옆을 간신히 돌아가야 했다. 팬티를 입으러 옷장에 갈 때는 진실이 그의 얼굴에 주저앉지 말기를 기도하며 진실 아래로 기어가야 했다. 밤에 눈을 감을 때면 진실이 위에서 배회한다고 느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게 바로 이런 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 없이도 살아가는 법을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

내 몸무게에 눌려 쪽마루가 삐거덕댔다. 사방에 책들이 있었다. 펜과 파란 유리 화병, 취리히의 돌더그랜드 호텔의 재떨이, 녹슨 풍향계의 화살, 작은 놋쇠 모래시계, 창턱에 말라붙은 연이펑게, 망원경, 촛대로 사용되는 빈 포도주병, 거의 끝까지 녹은 양초.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만져보았다. 결국 남는 건 물건뿐이다. 그래서 나도 어떤 것도 버리지 못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내가 이 세계를 축적하는지도 모른다. 죽고 나면 나의 물건들을 전부 합한 것이 내가 살았던 삶보다 더 큰 삶을 암시하리라는 희망 때문에.

숲에서 살았던 때가 있다. 아니 숲들에서, 벌레를 먹었다. 곤충도 먹었다. 입에 넣을 수 있는 건 뭐든지 먹었다. 멀미가 나기도 했다. 뱃속은 엉망이 되었지만 씹을 게 필요했다. 웅덩이에 고인 물을 마셨다. 눈도 핥아 먹었다. 손에 쥘 수 있는 건 무엇이나 먹었다. 농부들이 마을 어귀에 세워둔 감자 창고에 몰래 들어가기도 했다. 겨울에는 약간 따뜻해서 숨어 있기 좋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쥐들이 있다. 쥐를 날로 먹었냐면, 맞다, 그랬다. 몹시도 살고 싶었고,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녀였다. 사실 그녀는 나를 사랑할 수 없노라고 말했다. 그녀가 안녕이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영원한 안녕을 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스스로 잊게 만들었다. 이유는 모른다. 계속 자문하면서도 그렇게 했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쓴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와이프가 쓴 책.
들은 얘기로 둘이 서로 이 책들을 쓰면서 발간되기 전에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문체나 기법 같은 것들이 비슷해서, 보여주지 않았다는 말은 못 믿겠다.
암튼... 묘한 미스테리 멜로 드라마 같은 소설인데,
책의 구조가 책 속에 책이 있고, 그 책과 관련된 사람들이 엉키고 설켜
책을 읽으면서 인물배치도를 머리 속에서 그리면서 보느라 너무 힘들정도.
책을 보면서 라빠르망 이라는 프랑스영화 생각이 났는데,
역시나 이 책도 완성되기 전부터 영화화가 계약이 되었다고... 언제 나오게 될지 모르지만 기대됨.
책은 엄청나게. 를 먼저 읽어서 그런지 그렇게 뜨거운 느낌은 좀 덜했고,
밑줄 친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부분부분 꽤 괜찮았다는 느낌이 다시 떠올랐다.

그나저나 이 책에 나오는 사랑의 역사 라는 또 다른 책이 더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