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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사랑한다고 말하기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 조너선 사프란 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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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Extremely Loud & Incredibly Close
조너선 사프란 포어 / 송은주 역 / 민음사


믿을 수 없게 슬픈 날이었지만, 엄마는 정말,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어떻게 엄마한테 그 말을 해줄까 궁리하고 또 궁리했지만, 어떤 방법을 생각해 봐도 다 이상하고 어색했다. 엄마는 내가 만들어준 팔찌를 끼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기분이 최고로 좋았다. 나는 엄마에게 장신구 만들어주는 걸 아주 좋아했다. 그러면 엄마가 행복해한다.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 또한 나의 레종 데트르다.

엄마는 아직 스크래블 게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거울을 볼 때가 아니라든지. 필요 이상으로 전축을 크게 틀어놓으면 안 된다든지. 그런 일은 아빠한테도 옳지 않고, 나한테도 옳지 않았다. 하지만 전부 마음속에 묻어두었다. 엄마에게 아빠의 메시지로 목걸이, 발찌, 달랑거리는 귀걸이, 머리 장식 등등 다른 모스 부호 장신구들을 만들어주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뉴욕의 모든 베개 밑에서 저수지로 이어지는 특수 배수구를 발명했다. 사람들이 울다가 지쳐 잠이 들 때마다 눈물이 전부 같은 곳으로 흘러가게 되면, 아침마다 일기예보관이 눈물 저수지의 수위가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뉴욕이 무거운 부츠를 신고 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있겠지. 그리고 진짜로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난다면 - 핵폭탄이나, 아니면 적어도 생화학 무기 공격이나 - 엄청나게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울리며 모두를 센트럴 파크로 불러들여서 저수지 주위에 모래주머니를 쌓으라고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페인 박사님은 말하길 자기 감정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셨어요. 가끔씩은 스스로에게 휴식을 주어야 한대요."

더 큰 호주머니가 있어야 해. 나는 잠자리에 누워 사람이 잠들기까지 평균적으로 걸리는 시간이라는 7분을 헤아리며 생각했다. 거대한 호주머니, 우리 가족, 친구들, 심지어 리스트에 없는 사람들, 한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보호해 주고 싶은 사람들 모두를 감싸고도 남을 만큼 큰 호주머니가 있어야 한다. 구(區)와 도시들을 위한 호주머니, 우주를 다 감쌀 호주머니가 필요하다.

"정말로 근사한 건요, 그 여자가 죽은 코끼리의 울음소리를 그 코끼리의 식구들한테 들려줬을 때의 반응이었대요." "어땠는데?" "코끼리들이 기억하고 있더래요." "그래서 코끼리들이 어떡했다니?" "스피커로 다가가더래요."

"인간은 얼굴을 붉히고, 웃음을 터뜨리고, 종교를 갖고, 전쟁을 하고, 키스를 하는 유일한 동물이에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키스를 많이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인간다워지는 거라고요."

부츠가 어찌나 무거운지 우리 밑에 기둥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외로운 이가 내가 살아온 동안 죽 바로 가까이에 살고 있었단 말인가? 진작 알았더라면 위층으로 올라와 친구가 되어주었을 텐데. 아니면 장신구라도 좀 만들어주든가. 유쾌한 농담도 해주고. 아니면 탬버린 콘서트라도.

"그런 얘기를 꼭 해야겠니?" "네." "지금?" "네." "왜?" "제가 내일 죽을지도 모르잖아요?" "넌 내일 죽지 않아." "아빠도 그 다음 날 돌아가실 줄은 모르셨죠." "너한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아빠한테도 일어나지 않을 거였어요."

"엄마는 행복해질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는 중이야. 웃으면 행복해지지."

마룻바닥에서 잠들었던 모양이다. 잠에서 깼을 때, 엄마는 내 셔츠를 벗기고 내가 파자마로 갈아입도록 거들었다. 틀림없이 엄마가 내 을 다 봤을 것이다. 나는 어젯밤 멍 자국을 거울에 비춰보며 개수를 세어봤다. 마흔한 군데였다. 그중에는 큼직한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작았다. 엄마 때문에 멍이 드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어쩌다 멍이 들었느냐고 물어봐주고(엄마도 알고 있을 테지만), 내게 미안해하고(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깨달을 테니까), 괴로워하고(적어도 그중 몇 개는 엄마 탓이니까), 죽어서 나를 홀로 남겨두는 일이 절대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멍을 볼 때 엄마 눈에 떠오른 표정조차 볼 수가 없었다. 셔츠를 주머니처럼, 혹은 해골처럼 머리에 뒤집어써서 얼굴을 덮고 있었으니까.

"네가 말한 것들을 어떻게 해낼 생각이니?" "마음속 깊은 곳에 제 감정을 묻어둘 거예요." "감정을 묻어둔다니, 무슨 뜻이지?" "아무리 많은 감정이 생겨도, 밖으로 드러내지 않겠다는 거예요. 꼭 울어야겠다면 속으로 울 거예요. 피를 흘려야 한다면, 멍들게 하는 거죠. 미쳐버릴 것 같다 해도 세상 사람들한테는 입을 꼭 다물 거예요. 말해 봤자 아무 소용없어요. 남들의 인생까지 구렁텅이에 빠뜨릴 뿐이예요." "하지만 네가 마음속 깊이 네 감정을 묻는다면, 넌 진짜 네가 아니게 될 거야. 그렇지 않겠니?"

살아남은 수천 명의 사람들은 희망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고문을 당한 거야. 로슈비츠 다리 밑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내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어. 계속 생각해야 해. 계속 생각하면 살 수 있어. 그러나 살아남은 지금, 이제는 생각이 나를 죽이고 있단다. 나는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 그날 밤, 붉은 화염 덩어리 검은 물 같던 하늘, 전부를 잃기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내가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었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단다.

"글쎄, 아무리 둘째가라면 서러울 비관주의자라도 센트럴 파크에서 단 몇 분만 있어보면 현재 이외에 뭔가 다른 시제를 경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마련이지. 그렇지 않니?" "그런 것 같아요." "어쩌면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고 있거나, 왔으면 하는 것을 바라고 있는지도 몰라. 아니면 그건 공원이 움직이던 날 밤 꾸었단 꿈의 나머지 조각일지도 모르고, 우리는 그 아이들이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고, 그 아이들이 바랐던 것을 바라는지도 몰라."

누군가를 사랑한 사십 년의 세월이 호치키스와 테이프로 남다니.
우리 둘만 남았어. 너하고 나.
우리는 거실에서 게임을 했지.   넌 장신구를 만들었어.   목도리는 끝도 없이 길어졌어.   우리는 공원을 산책했지.   우리 위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천장처럼 우리를 찍어누르는 것.

"상상을 멈추고 싶다니까요. 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만, 그것만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층 사이에 낀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빠가 죽어간다는 상상은 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아빠가 건물 밖으로 기어 내려오려고 애쓰는 모습을 상상할 필요도 없을 거고요. 폴란드 사이트에서 어떤 사람이 그러고 있는 동영상을 봤어요. 아니면 식탁보를 낙하산 대신으로 쓴다든가 말이에요. '세계의 창'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몇몇이 진짜로 그랬던 것처럼요. 죽는 방법도 가지가지였어요. 전 아빠가 그중 어떤 식으로 돌아가셨는지 알아야 한다고요.

그 애가 너에 대해 알아내려고 애쓰는 동안, 난 그 애에 대해 알아내려고 애썼어, 그 애는 너를 찾으려 하고 있었어. 네가 나를 찾으려 했던 것과 똑같이 말이야, 그 생각을 하면 이미 조각났던 내 마음이 더 작은 조각들로 산산이 부서졌어, 왜 사람들은 자기가 전하려는 뜻을 그 순간에 말할 수 없을까?

그날 밤 네 어머니와 난 내가 돌아온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을 나누었어, 마지막 같지가 않았어, 난 애나에게 마지막으로 키스한 적이 있고, 우리 부모님을 마지막으로 보았고, 마지막으로 얘기를 했지, 왜 모든 것을 마지막처럼 대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까, 가장 한스러운 것은 미래를 너무 많이 믿었다는 거야,

하지만 아빠가 나를 마지막으로 껴안아 주었을 때 그것이 영영 마지막인 줄 몰랐던 것처럼, 이번에도 역시 몰랐다. 절대 미리 알 수 없는 일이니까.

   광대무변한 우주 대부분이 암흑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얘기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우리가 결코 볼 수도, 들을 수도, 냄새 맡을 수도, 맛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들이 깨지기 쉬운 균형을 좌우합니다. 그것이 삶 자체를 좌우합니다. 무엇이 진짜일까요? 무엇이 진짜가 아닐까요? 어쩌면 이런 질문은 하지 말아야 할, 옳지 않은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삶을 좌우할까요?
  내가 삶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을 만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당신이 발명을 결코 멈추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쩌면 당신은 아예 발명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언니가 몸을 옆으로 웅크렸어.
내가 말했어, 언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언니가 말했어, 내일 말해도 되잖아.
내가 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한번도 말하지 않았지.
그녀는 내 언니였어.
우리는 한 침대에서 잤어.
그 얘기를 할 기회가 한번도 없었어.
언제나 그럴 필요가 없었어.
아버지 창고의 책들이 한숨을 쉬고 있었지.
언니의 호흡을 따라 내 주위의 시트가 오르락내리락 거렸어.
언니를 깨울까도 생각했어.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어.
그날 밤만 밤이었던 건 아니니까.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겠니?
나는 몸을 모로 누이고 언니 옆에서 잠들었지.
너에게 지금까지 전하려 했던 모든 이야기의 요점은 바로 이것이란다, 오스카.
그 말은 언제나 해야 해.
사랑한다,
할머니가.

나는 침대에서 나와 내복 바람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아직도 소파에 앉아 있었다. 책을 읽지도, 음악을 듣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엄마가 말했다. "깼구나."
나는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팔을 벌리고 말했다. "무슨 일이니?"
나는 엄마에게 달려가 말했다. "난 입원하기 싫어요."
엄마는 나를 끌어당겨 내 머리를 엄마의 부드러운 어깨에 얹고 꼭 안아주었다. "넌 입원하지 않을 거야."
"곧 좋아질 거라고 약속할게요."
"넌 아무 문제 없어."
"행복한 보통 아이가 될 거예요."
엄마는 내 목 뒤를 손가락으로 감쌌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열심히 노력했어요. 아무리 해도 그보다 더 노력할 수는 없을 거예요."
"아빠도 너를 아주 자랑스러워하실 거야."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렇고말고."



9.11 사건이나, 이라크 전쟁이나, 김선일 사건이나,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이나, 성수대교 붕괴사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걸프전, 히로시마 원폭투하, 제2차 세계대전, 아우슈비츠 들을 말할때
우리는 그 사건들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 사건들이 발생하게 된 원인과 그 사건들이 있었던 그 시간과, 그 사건들로 인한 결과에 관한 논의에서
그 일을 겪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내가 겪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일을 겪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사건이 어느 누군가에게 일어났던 뉴스에나 날법한 그런 일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슬픔이라고 이야기한다.

살아간다는 건 죽은 것보다 무시무시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야하고,
그렇게 살아가면서...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인듯... 후회하지 않을만큼...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도록...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모두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너에게 말을 걸겠다.
너에게서 돌아오는 답이 다시 자리비움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너에게 다시 말을 걸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