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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08/04/24 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 (10)
  2. 2008/04/19 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 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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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7/12/06 포르토벨로의 마녀 ... 파울로 코엘료 (2)
  6. 2007/10/23 삶 ... 기다림 (2)
  7. 2007/06/09 눈먼 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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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08/29 지금 뭔가를 할 수 없다면, 영원히 뭔가를 할 수 없다

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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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 작가의 젊은 날을 사로잡은 한 문장을 찾아서 / 김연수 / 마음산책



길 가다가 지나가던 아낙네의 밭은기침 소리에도 이덕무는 눈물을 흘렸겠다. 그 슬픔의 내력을 어디에다 묻겠는가?

아이가 생기면 제일 먼저 자전거 앞자리에 태우고 싶었다. 어렸을 때, 내 얼굴에 부딪히던 그 바람과 불빛과 거리의 냄새를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받은 가장 소중한 것.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

나는 선천적으로 봄꽃에 대단히 취약한 유전자를 타고났다. 기점은 입춘부터다. 책상 앞에 붙여놓은 '立春大吉'이라는 글자는 내 마음에 첨가하는 이스트와 같다. 그때부터 마냥 봄을 기다리게 되는 마음은 우수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는데, 대개 그즈음이면 텔레비전에서는 "내일부터 비가 내리며 한 차례 꽃샘추위가 지나갈 예정입니다"라는 예보가 나오게 마련이고 해마다 어김없이 나는 그 멘트에 귀대 전날 밤, 옛 애인에게 바람맞은 휴가장병의 꼴이 되고 만다. 봄이라는 것에 입술이라도 있다면 전화를 걸어 왜 안 오느냐고 따져 묻기라도 할 텐데 그럴 리 만무. 결국 우수를 지나 경칩에 이르는 동안 내 마음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시들해진다. 내가 삶이라는 건 직선의 단순한 길이 아니라 곡선의 복잡한 길을 걷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그때다. 그게 사랑이든 복권 당첨이든, 심지어는 12시 가까울 무렵 버스를 기다리는 일이든 기다리는 그 즉시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은 하나도 없다. ... 하나 둘 꽃소식이 들려오는 것은 바로 마음이 푹 꺼져들어간 그날부터다. ... 그나마 삶이 마음에 드는 것은, 첫째 모든 것은 어쨌든 지나간다는 것, 둘째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

그즈음 창 밖을 내다보면 뭔가 지나가는 게 언뜻언뜻 눈에 보였다. 바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이었다. ... 당대에 최북은 위대한 화가로 죽은 게 아니라 실패한 화가로 죽은 셈이다. ... 그렇지만 그 오기는 과연 무엇인가? 화가가 자신의 눈을 찌르다니, 왜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파멸 속으로 뛰어드는 것일까?

큰 얘기에만 관심을 두던 20대가 지나고 나니 삶의 한쪽 귀퉁이에 남은 주름이나 흔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주름이나 흔적처럼 살아가다가 사라진다. 머리로는 그걸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니 책을 읽다가 문득문득 목이 메는 구차한 짓을 되풀이하는 셈이다. ... 구름의 모양은 바람에 따라, 바다의 빛은 햇살의 각도에 따라 순간순간 바뀌어갔다. 사이에 있는 것들, 쉽게 바뀌는 것들,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여전히 내 마음을 잡아끈다. 내게도 꿈이라는 게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는 마음을 잡아끄는 그 절실함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때 바라본 밤하늘을, 그때 느꼈던 따뜻한 고독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왜 누군가를 사랑하는가? 그건 우리가 살면서, 또 사랑하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 때로 너무나 행복하므로, 그 일들을 잊을 수 없으므로 우리는 살아가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나는 때로 너무나 행복하므로 문학을 한다. 그 정도면 인간은 충분히 살아가고 사랑하고 글을 쓸 수 있다. ...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청나라 사람 장조張潮는 이런 글을 남겼다. 꽃에 나비가 없을 수 없고, 산에 샘이 없어서는 안된다. 돌에는 이끼가 끼어야 제격이고, 물에는 물풀이 없을 수 없다. 교목엔 덩굴이 없어서는 안되고, 사람은 벽이 없어서는 안된다. ... 열흘 동안의 행복. 그 정도면 충분하다. 문학을 하는 이유로도, 살아가거나 사랑하는 이유로도.

삶의 여백이자 죽음의 적막을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어 귀를 때리는 한여름 매미소리를 역설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매미소리가 천지를 울리다가 문득 멈춘 상태. 그 찰나적인 상태가 바로 견딜 수 없는 삶의 여백이자, 죽음의 적막이니까. ... 혼자서만 살아가는 세상이라면, 운명이 굳이 지금 세상을 떠나라고 해도 그다지 아쉬울 것은 없으리라. 하지만 우리 모두에겐 남아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 일이 반복되는 한, 슬픔은 오랫동안 지속되리라. ... 시간은 그렇게 지속된다.

우리 삶이란 눈 구경하기 힘든 남쪽 지방에 내리는 폭설 같은 것. 누구도 삶의 날씨를 예보하지는 못합니다. 그건 당신과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잠시 가까이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나면 우리는 아마 다른 유형의 인간으로 바뀔 것입니다. 서로 멀리, 우리는 살아갈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을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 누구에게나, 무슨 일이거나 처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갓 태어난 아이의 눈과 귀처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시간이 있다. DJ 인혁의 강의를 듣던 그때가 바로 내게는 처음 마음이었다. 그런 처음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흘러나오는 모든 노래가 경이롭게 들린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 어차피 결과는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붙거나 떨어지거나. 생은 때로 그렇게 간단하다. ... 업무상 만나는 인간이란 참 서로에게 씁쓸한 존재다.

내가 서른 살 너머까지 살아 있을 줄 알았더라면 스무 살 그 즈음에 삶을 대하는 태도는 뭔가 달랐을 것이다. ... '10여 년 전의 일이 어제처럼 생생하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단 하루가 지난 일이라도 지나간 일은 이제 우리의 것도, 살아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하더라도 그 눈빛을 다시 만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발을 동동거리며 즐거움에 가득 차 거리를 걸어가던 그때의 그 젊은이와는 아주 다른, 어떤 사람이 됐기 때문이다. ... 항상 삶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구나. 스무 살, 그 무렵에 나는 '이제 그만 바라보자 / 저렇게 멀리서 반짝이는 섬들을'이라는 내용의 시를 썼지만, 이제는 그렇게 멀리서 바라보는 빛이, 마치 새로 짠 스웨터처럼, 얼마나 따뜻한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것 같아 가만가만 고개만 끄덕인다.

누워 있노라면 꼭 관 속에 넣어진 채 버스정류장 옆에 버려진 듯한 느낌이 드는 곳

친구는 잠시 말을 잊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내가 아는 한 김광석이 부른 노래는 그런 노래다. 그의 노래에는 청춘의 결정적 순간에만 맛볼 수 있는 설득력이 있다. ... 인생의 정거장 같은 나이. 늘 누군가를 새로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 데 익숙해져야만 하는 나이. 옛 가족은 떠났으나 새 가족은 이루지 못한 나이. 그 누구와도 가족처럼 지낼 수 있으나 다음날이면 남남처럼 헤어질 수 있는 나이. ... 그러다 누군가 김광석의 노래를 듣자고 말한다. 다들 좋다고 한다. 그리고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 내게는 슬픔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 청춘은 그런 것이었다.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가는 그 빛도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떠나버렸다.

때로 취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것, 그게 바로 젊음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취하고 또 취해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는 여름날 같은 것. 꿈꾸다 깨어나면 또 여기,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곳.

그 무엇이든, 그 누구든 10년만 열심히 한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 만큼 유명한 사람이 될 수 있어요. ... 10년이라고 했다. 아직 한 4년은 더 남아 있었다. 이백처럼 온 세상 사람들이 아는 그런 시인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거기서 끝나지 않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공부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멍청이. 그것보다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도 모르고. ... 열여덟 살의 11월에 나는 처음으로 그렇게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단순히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 사실 때문에 사랑했던 것이며, 사랑하지 못할까바 안달이 난 것이었다. 사실은 지금도 나는 뭔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하기만 하다. 그 모든 것들은 곧 사라질 텐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가장 견디기 힘든 경우는 어둠 속에서 멀리 불빛이 보일 때다. 그 불빛이 얼마나 정겨운지 당장이라도 뛰어가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꾹 참았다. 참아야만 했다. ... 어둠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제 몸으로 어둠을 지나오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어둡고 어두울 정도로 가장 깊은 어둠을 겪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조금만 지나면 다 나아지겠지. 그렇겠지. ... 어쩌자고 모든 것은 조금만 지나면 다 나아지는가? 어쩌자고 고통은 때로 감미로워지는가?

봄빛이 짙어지면 이슬이 무거워지는구나. 그렇구나. 이슬이 무거워 난초 이파리 지그시 고개를 수그리는구나. 누구도 그걸 막을 사람은 없구나. 삶이란 그런 것이구나. 그래서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자라는구나.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온 곳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이구나. 울어도 좋고, 서러워해도 좋지만,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해서는 안되는 게 삶이로구나.





원영언니의
"김연수의 책은 '청춘의 문장들'이 최고야. 책을 읽으면서 줄을 치기 시작하면 책 한권에 다 줄을 쳐야할 정도..."
라는 추천사를 듣고 바로 들어와 인터파크에서 검색해보고 품절이라
집 근처 홍익문고 가서 사들고 들어왔다.

조선시대 문인들의 글과 이백의 글, 그것들과 함께 했던 그의 청춘의 시간들, 그 속에서 깨달은 삶의 철학.

요즘들어 자꾸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글이 눈에 들어온다.
의도적인 것도 아니고, 모르고 접하는 것도 많은데
진중권의 말대로 우리의 역사가 근대와 전근대가 너무 짧은 시간에 뒤섞여 있어서
현재의 이러저러한 문제들이 나타난다면,
그 해답을 찾을 곳은 조선 지식인들 뿐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들이 어떤 생각, 어떤 철학, 어떤 고민을 가지고 살아갔는지 알아보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친철하게도 그들이 쓴 글을 해제해 놓은 책도 많이들 나오는 거 같고,
이 책처럼 그들의 글에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함께 정리한 책들도 많아지고,
점점 읽을 책들이 많아지는 게, 나쁘지 않다.

김연수의 말처럼 누군가에게 그의 가치를 알아주고, 그것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얼마나 기쁜 일일까.
나의 가치를 알아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은 책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던지는 그들.
그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이야기를 던지고 있다는 것이 기쁘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청춘은 지금 이 순간.
사라지기 전에 더 열심히 사랑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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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IStyle4 2008/04/25 11:16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많은것을 느끼게 하네요.
    모든것을 사랑해야 하고, 하루하루를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살아야겠어요.

  2. BlogIcon IStyle4 2008/04/25 11:16 address edit & del reply

    진아님 덕분에 마음이 좋아지네요.

    • BlogIcon 물결's 2008/04/26 03:57 address edit & del

      근데 막상 또 그렇게 살려고 하면 잘 안되는게 인생인거 같아요.
      그냥 노력하는거겠죠...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조금 더 나아져야지. ^^

      마음이 좋아지셨다니 다행이긴한데
      엄밀히 말하면 제 덕분이 아니라 김연수씨 책 때문이죠. ㅋㅋ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

  3. BlogIcon wicce 2008/04/26 01:49 address edit & del reply

    정말 김광석스러운, 우울한 나른함이 느껴지는 문장들이네요.
    책을 구해서 읽어보고 싶어져요. 잘 보고 갑니다.

    • BlogIcon 물결's 2008/04/26 03:59 address edit & del

      인터파크에 얼마전까지 품절이었다가, 며칠전에 다시 입고된거 같아요.
      빗소리랑 빗물위로 바퀴 굴러가는 소리랑 듣다보니
      김광석 노래 듣고 싶어지네요 ^^

  4. BlogIcon 하늘만큼~ 2008/04/27 20:18 address edit & del reply

    세상을 사는 방법은 참 단순한 것 같은데,
    주위에 흔들리고 첨 맘먹은대로 잘 안되고, 스스로 어렵게 만드는 거 같아요.
    덕분에 좋은 책 알게 되어 고맙습니다.
    마침 도서관에 책이 있네요. 내일 퇴근하는길에 빌려야겠어요.

    • BlogIcon 물결's 2008/04/28 00:18 address edit & del

      우리 집근처에도 도서관 있으면 좋겠네요... -_-

  5. BlogIcon 하늘만큼~ 2008/05/11 16:34 address edit & del reply

    책 잘봤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예전의 가치가 너무나 그리워지네요.
    주변사람들과 조금씩 다르게 살면서, 거꾸로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취직하고 나서야, 저를 조금씩 보게 되네요.
    제가 보는 책들이 좀 편협해서, (보다보면 알게모르게 한쪽으로 치우쳐있어요.) 진아님 덕분에 좋은 책 만나서 즐거웠어요.
    보고나서, 한자를 포함한 외국어공부가 하고 싶어졌네요. 원음대로 읽고 느껴보고 싶네요.

    • BlogIcon 물결's 2008/05/12 00:25 address edit & del

      한자 직접 해독하면서 읽어보고 싶죠.
      그게 사람마다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느낌도 달라지고...
      근데, 능력이 안되서... -_-
      남들이 잘 해석해 놓은 걸 훔쳐 읽을 뿐입니다. ^^

    • BlogIcon 물결's 2008/05/12 00:25 address edit & del

      참. 집 근처 도서관 발견했어요. ^^

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 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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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코레아니쿠스(Homo-Coreanicus)
: 인간 개조에서 토털 키치까지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 웅진 지식하우스


보수성은 이론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대부분 이론의 반성 없이 습관으로 존재한다.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는데도 그저 익숙하기 때문에 집요하게 존속하는 폭력들이 있다. 그것을 없애려면 우리 주위의 익숙한 모든 것들을 한 번쯤 낯설게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인의 신체는 고통 받고 있다. 하지만 고통도 익숙해지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법. 적어도 한 번쯤 낯설게 보기를 통해 한국인의 신체가 어떤 고통을 당하는지 느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권력이 국가에서 시장으로 넘어가면서 과거에 국가에 바치던 공적 충성의 의무가 한국과 일본에서는 고스란히 회사에 대한 사적 충성으로 옮겨졌다. ... "나는 왜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는가?" 어느 작가는 이렇게 물었다. 몰라서 묻는가? 거대한 것은 우리에게 분노할 자유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뭔가에 가로막힌 물이 제 갈 길을 찾아 우회하듯이, 분노의 흐름도 도전을 허용하지 않는 거대한 것을 피해 사소한 곳으로 흐를 수밖에.

'국가주의 코드' '시장주의 코드' '보수주의 코드'

'삶을 위해 일하는 문화'가 아니라 '일을 위해 사는 문화' ... 서구 사회의 느림은 게으름도 아니고, 비효율도 아니고, 경쟁의 배제도 아니고, 역동성의 결여도 아니다. 그저 속도의 다른 차원일 뿐이다. 그리고 삶은 전쟁이 아니다.

미래의 이익(interest)을 위해 순간의 격정을 억누르고 냉정하게 계산하는 근대인. 그런 인간을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 부른다. ... 호모 에쿠누미쿠스는 결국 소유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풍부한 정념을 희생해버린 존재다.

이성적 존재가 되려면 되도록 '감각으로부터 우리의 정신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 전근대의 정감적 인성과 근대의 합리적 인성. ... 한국처럼 근대화가 압축적으로 잔행된 사회에는 종종 전근대와 근대의 시간 축이 공시적으로 존재하게 마련이다. 이른바 '황빠'와 '황까'의 대결은 두 가지 시간의 대립이요, 두 가지 인성의 대립이다. ... 한국 사회는 이념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균열되어 있다.

졸부 근성을 지닌 상류층은 정신적, 문화적 격조가 아니라 아무나 살 수 없는 값비싼 '명품' 등으로 신분적 차이를 드러내려 하고, 대중은 경제적으로 무리를 해서라도 똑같은 명품을 구입하여 그 차이를 지우려 한다. 대한민국의 명품 문화는 취향의 표현이라기보다는 그 성격이 조선 후기 체면 문화를 상업화한 것에 가깝다. 한국식 자본주의의 천민성은 여기서 비롯된다.

한국에서는 위계적 사고가 언어 속에 뿌리를 박고 있다. ... 예절을 바라보는 수직적 관점과 수평적 관점은 정면으로 충돌한다. 수평적 예의는 수직적 무례로 간주되고, 수직적 예의는 수평적 무례를 낳는다.

늘 과도한 자극에 노출된 감각은 둔감해져 웬만한 자극에는 아예 불쾌감조차 느끼지 못한다. ... 자극의 강렬함과 반응의 강렬함. 한국은 뜨겁다. ... 과도한 자극은 감각기관을 파괴한다. 그것은 감각의 분화와 위계를 파괴하여 모든 감각을 그 원초적 상태, 즉 촉각으로 되돌린다.

아이가 사회로 나가는 것을 한국인은 '출세'로 이해한다. 가정에서 아이를 사회로 내보낼 때 중시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서로 편하게 더불어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남들의 위에 서느냐' 하는 것. 한마디로 사회화를 '공공의 규칙'이 아니라 특권적 지위의 문제로 사고하는 것이다. 그래서 떠드는 아이들을 제지하다가는 부모로부터 '당신이 뭔데 우리 아이 기를 죽이느냐'는 항의를 받게 된다. ... 한국에서 어른들은 아이만큼 유치하고, 아이들을 어른들마큼 노회하다.

죄책감의 문화는 유일신교에 문자문화의 산물인 내면화가 겹쳐질 때 성립하는 반성(reflexion)의 문화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 일본의 역사 왜곡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과거에 자신들이 했던 일이 드러나는 데에서 '수치심'을 느낄 뿐이다. ... 일본의 과거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들은 일본의 과거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양심의 목소리를 '자학사관'이라 부르곤 한다. ... 한국과 일본의 주체 형성이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자기반성의 능력을 갖춘 '개인'의 형성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남들의 눈길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성원'의 형성으로, 때로는 연대로만 책임을 지는 '대원'의 형성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 이런 의미에서 윤리를 형성하는 감정은 죄책감이 아니라 수치심이다. 신 앞에 떳떳하지 않은 이도 사람들 앞에선 부끄러울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성범죄의 신고율이 낮은 것은 아마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 이렇게 윤리가 타인의 눈에 맞춰져 형성된 사회에서는 죄도 드러나지 않는 한 떳떳하고, 죄가 아닌 것도 드러나는 한 부끄러운 것이 된다.

정치 성향과 관계없이 '심리적 태도'라는 면에서 평균적 한국인은 철저한 보수주의자라는 것. ... 한국인의 무의식에 깔린 더 큰 공포는 다른 데서 온다. 사회적 안전망의 결여, 지나친 경쟁의 강조, 점증하는 고용의 불안정성이야말로 한국인들이 가진 공포의 주된 근원이다. ... '그냥 사느냐, 더 잘 사느냐'의 문제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되는 곳에서, 사람들은 창의적으로 새 영역을 개척하기보다는, 이미 안전한 것으로 입증된 낡은 습관을 고집하게 된다. ... 과거에 한국인의 심성을 지배한 것이 '전쟁'의 공포였다면, 오늘날 한국인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시장'의 공포다. ... 생존의 공포는 개개인에게 '동일성(identity)'에 대한 열망을 낳고 결국 모두의 획일성으로 실현된다. 놀이의 기쁨은 '차이(difference)'에 대한 욕망에서 나와서 혁신과 창안으로 이어진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창의성이 생기지 않는다. 한국에서 창의성의 결여는 두개골 용적의 한계가 아니라 신체 전체의 한계. 그것은 인식론적 현상이 아니라 이제까지 한국인이 살아온 역사를 반영하는 존재론적 현상이다.

실재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가상이 드러서는 '시뮬라시옹'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 남이 하는 일에 과도하게 관심을 갖고, 부도덕한 자를 찍어 집단으로 조리돌림을 하고, 냉정하게 사실을 확인하기 전에 뜨겁게 '감동'부터 받고 싶어하는 이야기 문화는 전근대적 심성에 속한다.

문자문화에서 인터넷은 정보의 교류를 위한 망이나, 구술문화에서 인테넷은 관계 맺음의 망으로 기능한다. ... <문자문화와 구술문화>에서 월터 옹(Walter J. Ong)은 구술문화에서 대화는 '감정이입적' 성격을 띤다고 지적한다. 실재로 한국에서 논쟁은 '이성적'이라기보다는 '정서적'이며, 판단은 '논리적'이라기보다는 '감정이입적'이다.

발터 벤야민은 이미 '산만함'을 현대적 지각의 특성으로 들었다. ... '개인'이라는 말은 in+dividual, 즉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단위라는 뜻이다. 하지만 컴퓨터에 여러 개의 창을 열어놓을 때, 정신은 다양한 관심사로 분할이 된다. 이로써 전통적 의미의 '개인'은 해체된다.

21세기의 기술은 과거의 기술과 달리 '꿈꾸는 기술'이다. 꿈이 기술을 통해 현실이 되면, 기술은 예술이 되고, 상상력은 생산력이 된다. '꿈꾸는 과학 예술가'는 기술과 예술과 인문학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디지털 유리할 유희의 명인이다. 카리스마의 명령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군대식 신체가 아니라, 스스로 발명하고 창안하는 예술적 신체다.

이른바 '판타지 사극' 속에서 이미 있었던 사실(past)과 아직 없었던 환상(future)이 하나가 되어 시청자의 눈앞에서 시각적으로 현재화(present-ation)한다. 세 시간대의 공간적 융합 속에서 화살처럼 날아가는 선형적 시간의식은 무력해진다. 이는 역사주의에 기초한 진보의 위기다. 정치의식, 역사의식의 결여라는 신세대의 보수성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어떤 것이 '사실인 것'과 어떤 것을 '사실로 믿는 것'은 다르다. 대중들 역시 가상이 현실이기를 원했고, 이 대중적 염원이 매체들로 하여금 연극을 졸지에 현실로 둔갑시키게 했던 것이리라.

아우라의 파괴는 전면적이다. 교회에서 경건함에 젖고, 사찰에서 엄숙함을 느끼며, 자연이 내뿜는 숨결을 느끼고, 자연이 지르는 비명소리를 들으며, 유적에서 과거의 영욕을 느끼고, 거기서 보전해야 할 세계를 보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모든 신성과 모든 생명과 모든 문화는 슈퍼마켓 진열장에 나열된 깡통처럼 얼마든지 반복 가능하고, 얼마든지 복제 가능한 상품이 된다. 그러고 보니 대한민국은 교육부를 동시에 인적자원부로, 문화부를 동시에 관광부로 부르는 나라다.

백치미를 가진 것과 백치미를 연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명품 밝히는 여성 '인' 것과 그런 여성 '인 척하는' 것 역시 전혀 다른 일이다. 문제는 낸시에게서는 이 두 차원이 잘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 그의 존재가 주는 당혹감은 여기서 비롯된다. 많은 이들은 낸시의 경우 전자에 가깝다고 믿는 모양이다. 하지만 누가 아는가?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 것까지가 그의 전략일지. 아니면 이미 그는 그런 구분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 시대에 가 있는지.



신간 광고를 보고 바로 샀는데, 본사 사무실 책장에 꽂아놓고 여태 못읽었었다.
며칠전 오랜만에 본사에 갔다가 약속 시간이 남아서 읽기 시작했는데,
읽는 내내 불편했다.
'정말 그렇구나'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고,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라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고,
'난 아니야' 라고 애써 외면하는 부분도 있었다.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닌, 삶을 위해 일하고,
수직적 예의와 함께 수평적 예의를 구분하며,
나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야 하고,
남의 눈에 의한 수치심이 아닌, 자기 반성에 의한 죄책감을 느끼며,
정서적 논쟁이 아닌 이성적 논쟁을, 감정이입적 판단이 아닌 논리적 판단을 하고,
사실인 것과 사실인 척하는 것을 구분하며,
복제해서는 안되는 것들을 지킬 수 있는
철학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근데, 너무 어렵다. 어떻게 해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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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당신에겐 철학이 있습니까? ... 박이문

    Tracked from from 진아 2008/04/19 11:51 delete

    당신에겐 철학이 있습니까? / 박이문 작 / 미다스북스 어른들이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않는 것은 그들이 관습과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 아이의 경험은 경이驚異, wonder이며 그것은 반성으로 이어지고, 반성은 비판적 사고로 연결되며, 비판은 새로운 사유과 인식으로 통한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는 비록 박테리아의 유전자로부터 진화되었더라도, 그 원인이나 이유를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지만, 생물학적, 물리학적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

박정자 ... 뮤지컬 19 그리고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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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2. 1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박정자(모드 역), 이신성(헤롤드 역),  장두이 연출, 이충걸 각색


하루에 하나씩 새로움을
인생이란 새로움을 찾는 길이니까.
아무것도 영원하진 않지만

이해가 안되요.
그걸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려.

난 이미 살아버렸고, 넌 이제 삶을 시작하는거야.
넌 내가 심은 나무야. 더 자라야 해.

죽는 건 무섭지 않아. 살아있지 않는 게 무서울 뿐이지.

때가 되어 날아갈 때 노래할 기회를 놓치지마
.



박정자 선생님의 공연을 처음 봤는데.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고
박정자 선생님이 더 나이가 들어 정말 80세가 되면
아름다운 할머니 모드의 모습일 것 같았던...

박정자 선생님이 나오는 뮤지컬이라고만 알고 갔는데,
반가운 일들이 너무 많았던 공연...
페이퍼를 통해 알게 된 GQ 편집장 이충걸의 각색이었다는 거.
3년전 일때문에 만나서 한판 붙었던 배해선의 멋진 연기를 봤다는 거.
공연 중간 쉬는 시간에 초등학교 동창 정희를 만나고,
배우 장영남을 만나서 싸인 받고 바로 옆자리에 앉아 공연을 봤다는 거.

내일 모레는 서툰 사람들 보러 대학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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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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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 공지영 / 푸른숲


이상하게도 약한 모습을 자꾸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을 뭐랄까, 사랑하게 된다. 걱정하게 되고, 에잇, 왜 그렇게 못난 거야, 하면서도 머릿속에서 내쫓을 수가 없게 된다.

세상에 좋은 결정인지 아닌지, 미리 아는 사람은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어떤 결정을 했으면 그게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노력하는 일 뿐이야.

엄마는 정말 엄마에게 주어진 그 모든 운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들을 즐길 수가 있었던 것일까.

엄마라는 사람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 뭐랄까, 격의 없는 것, 자신이 나에 대해 가지는 사랑이 하늘로부터 받은 천부적 권리임을 굳게 믿는 자의 당당함 같은 것.

"어떤 순간에도 너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을 그만두어서는 안돼. 너도 모자라고 엄마도 모자라고 아빠도 모자라......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자람 때문에 누구를 멸시하거나 미워할 권리는 없어. 괜찮은 거야. 그 담에 또 잘하면 되는 거야. 잘못하면 또 고치면 되는 거야. 그담에 잘못하면 또 고치고, 고치려고 노력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수가 있는 거야. 엄마는...... 엄마 자신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냈어."

과거의 불행 때문에 나의 오늘마저도 불행해진다면 그건 정말 내 책임이다.

우리가 보는 것들 이면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감추어져 있는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때로 그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얼마나 치명적인가.

삶이란 건 참 이상하다. 어느 것도 지속되지 않는다. 슬픔도 기쁨도 노여움도 그리고 웃음도.

이상한 일이다. 무엇이든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가진다는 것은 세상을 바꾸어버리는가보다.

사랑하고 결혼하고 너희 같은 아이들 낳고 울고 웃고, 그리고 혹여 나쁜 결과가 오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어 ... 나중에 알았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는데 그건 시간이었어. 그 사람이 그 일을 당한 것과 나중에 훌륭한 은수자가 된 그사이의 시간. 우리에게는 베일에 싸여 있는...... 그러나 그가 온전히 혼자 견디어야 했을 그 시간."

엄마와의 생활이 익숙해지자 우리는 조금씩 틈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로에 대한 조심스러움, 서로에 대한 호기심, 서로에 대한 기대들이 어느 정도 충족되거나 그렇게 될 가망이 없다고 포기하자마자, 비로소 생활이라는 것이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괜찮다. 위녕,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아.

내가 그냥 나여도 된다는 그런 안도감은 아니었을까.

유치한 것이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한다. 밥이 그렇고 잔돈이 그렇고 아주 작은 따돌림이 그렇다.

실은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심판이 아니라, 때로는 정의보다는 사랑이고 이해라는 것

울고 웃고 죽고 살고. 산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이렇게 한순간에도 수많은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다. 뭐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싸우고 화해하고 근심하고 기뻐하며 울다가 웃는다...... 하지만 겪는 사람에게 그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었다.

"... 누가 그러더라구, 집은 산악인으로 말하자면 베이스캠프라고 말이야. 튼튼하게 잘 있어야 하지만, 그게 목적일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그게 흔들거리면 산 정상에 올라갈 수도 없고, 날씨가 나쁘면 도로 내려와서 잠시 피해 있다가 다시 떠나는 곳, 그게 집이라고. 하지만 목적 그 자체는 아니라고, 그러나 그 목적을 위해서 결코 튼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라고. 삶은 충분히 비바람 치니까, 그럴 때 돌아와 쉴 만큼은 튼튼해야 한다고..."

사랑한다고 해서 그걸 꼭 내 곁에 두고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란 걸 나는 이제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최선을 다해 존재함으로써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목적은 그다지 순수하지 않다.
문학작품으로서의 즐거운 나의 집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이 책이 나온다는 소식과 함께 몇번째 남편인가가 소송을 할꺼라는 기사들과
세번의 이혼을 하고 성이 다른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공지영의 사생활을 훔쳐보기 위함이었다.

책의 카피에 써있는...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처럼
대단한 가족의 의미를 원한다면, 영화 <가족의 탄생>이 훨씬 완성도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책을 순수하게 문학작품으로 읽은 사람들에게 가족을...
글의 시점인 큰딸 위녕이 표현하는 '그렇게 쉬운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라고 표현한 부분은 어느 정도 동감한다.

작가 공지영에 대해서 한가지 고백하자면...
내가 공지영을 탐탁치 않게 봤던 건... '잘난척'하는 것처럼 보여서였다.
다른 작가들의 책을 읽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녀의 책을 읽으면서는 왜 이렇게 잘난척하지? 라는 느낌을 받은건...
내가 느끼기에 '너희는 이런거 모르지?' 라는 느낌의 문체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정 부분, 내가 인정할 만한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마찬가지로 '또 잘난척 하는군' 이라는 느낌은 없지않지만,
이제, 그녀를 이혼을 세번 했다는 이유로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제멋대로 살았다고 욕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녀는... 나는 아직 한번도 하지 못한 결혼을 세 번이나 했고,
세 명의 아이를 낳아 키울만큼 뜨겁게 사랑하며 살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덧붙임.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에서 작가로 나오는 엄마가 언니랑 너무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디 글 안쓰는 데 가서 살고 싶다고 하거나,
하느님한테 기도한다고 하면서 큰소리 치며 따지는 거나,
말도 안되는 말로 어이없게 하는거나,
잘 웃고, 잘 울고 하는거 다...

내가 이 말을 했을때, 언니는 버럭 화를 냈다.
'내가 이혼 세 번한 여자처럼 보여?' 라고...
어찌나 유치하신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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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언니 2007/12/18 16:00 address edit & del reply

    일기에 자주 '언니'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 언니.. 참 괜찮은 사람 같아.. 난 잘 모르지만.. 왠지 그런 기분이 드네.. ㅡ.ㅡ;;;

  2. 민정 2007/12/18 21:59 address edit & del reply

    난 어쩐지 그 언니랑 잘 지내는 동생이 더 괜챦아 보이네...^^;;

  3. BlogIcon 물결's 2007/12/18 22:30 address edit & del reply

    그러니까요...
    전 그 언니보다 언니 주변 사람들이 훨씬 더 좋더라구요... ㅋㅋ

  4. 언니 2007/12/23 02:17 address edit & del reply

    이 책이 뭐가 좋다는 거냐? 난 전체적으로 좀... 아니었어.. 신문 연재라 급하게 쓴 흔적들이 너무 많이 눈에 띄고.
    그리고. 여자주인공이랑 나랑 뭐가 닮았다는건지. 나보다 좀 괜찮더만. ㅡ.ㅡ;

  5. 언니 2007/12/23 02:17 address edit & del reply

    책에 마구 줄 그었다. 정리하고 돌려주께.
    니가 빌려간 내 책에도 마구 줄 그어도 좋아.

    • BlogIcon 물결's 2007/12/23 11:58 address edit & del

      어... 어제 물어볼까 하다가 말았는데...
      살짝살짝 줄쳤는데... 마구마구 치도록 학지. ㅋㅋ

  6. 원영 2007/12/23 13:42 address edit & del reply

    나는 이런 글을, 폭력적 글쓰기라고 부른다.
    자신을 가십화하면서 합리화하고, 주위에 무례를 범하는 글쓰기.
    뭐, 그런 폭력적 글이 세계에 길이 남을 명작이 된다면야, 예술의 이름으로 용서가 될 터이지만
    그런 글은 대부분 쓰레기로 전락되어 환경 오염이나 시키니 말이야.
    게다가 이 글은, 화자를 딸애로 하는 교활함까지 갖추었으니,
    적어도 나한테는 참으로 삼류 소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지.

    이 소설은 미섭이가 재미있게 읽었는데
    마지막에 미섭이 <수준>에서 황당해하더군.
    소설의 화자가, 공부 별로 못 하는 캐릭터인 모양인데
    끝부분에 교대에 간다나 어쩐다나.
    교대 갈 실력이면, 전교 탑 수준이라면서, 속은 걸 분해하더군.

포르토벨로의 마녀 ... 파울로 코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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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벨로의 마녀 / 파울로 코엘료 / 임두빈 역 / 문학동네


"... 상처입고, 상처 때문에 죽거나 상처 때문에 더 강해지거나. 그게 더 좋아. 나는 태어날 때부터 전쟁터에서 자랐어. 아직 살아 있고. 그러니 누가 나를 보호해줄 필요는 없어."

그녀가 제발 떠나지 말아달라고 애원해주길 바랐다. ... 나는 싸구려 호텔에 묵으면서 매일 밤 기다렸다. 다시 시작하자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달라고 부탁하는 그녀의 전화를.

예수께서는 아테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답하셨겠지요. "내 딸아, 나 역시 바깥에 있단다. 오랫동안 그들은 내가 나의 집에 들어가게 놔두질 않는구나."

우리가 기쁘게 춤에 몸을 내맡기는 순간, 우리의 뇌는 통제력을 잃고, 대신 심장이 우리 몸을 지배하게 되지. 정점이 드러나는 건 오직 그 순간이라오. 물론 우리가 믿기만 한다면 말이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이 자기 자신과 좋은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이죠."

저 자신도 알지 못하는 방식을 통해, 기쁨이 전염됩니다. 열정이나 사랑 역시 전염되지요.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사시오. 그걸로 충분하다오.

이제 그녀는 어디 가면 나를 만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우리가 다시 만날 것이라고 씌어 있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중요한 건, 우리 삶에 개입할 운명을 따르고 우리 모두를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 마음을 정하는 것이다.

내가 그녀를 마치 지금 눈앞에 보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이유는, 우리 방랑자들에게 시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오직 공간만이 존재한다.

모든 폭풍우가 그러듯이 이것 역시 지나가리라. 맹렬할수록 더욱 빠르게.

"너는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사랑받는 아이란다."

"우리는 보편적인 욕망에 둘러싸여 있어요. 행복이 아니라 욕망에 말이죠. 욕망은 만족하는 법이 없죠. 만족되면 더이상 욕망이 아니니까요."

"당신이 올바른 길에 있다는 확신 말이죠. 아까 내가 말한 것, 기억하죠? 우리는 매 순간 각각의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말."

가능하다면 언제든, 우리의 현실을 벗어나는 행동을 해보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하지만 춤이 끝나면 우리는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죠. 실제 자신보다 더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 애쓰는 소심한 사람으로 말이죠."

명징해지세요. ... 집중하세요. ... 당신은 당신이 자신이라고 믿고 있는 바로 그 존재랍니다. ... 믿으세요.

"누가 당신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진 않았잖아요. ... 당신은 사랑을 배우지 않았어요. 단지 믿은거죠. 믿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예요."

당신이 원하는 게 뭔가요? 행복을 바라진 마세요. 그건 너무 쉽고 따분한 일이니까. 사랑만을 원한다고도 하지 말아요.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렇다면 무엇을 원하냐고요? 당신 삶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길 원하는거죠. 덫이 입을 벌리고 있지만 무한한 기쁨이 깃든 삶 말예요.

당신은 알아야 해요. 당신이 상대가 필요로 하는 사랑을 베푸는 입장이라는 것부터. 그러면 무슨 일이 생기든 생기지 않든 똑같이 만족스러울 거예요. 당신에게 사랑할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그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될 거예요. 이제 당신의 샘을 발견했으니 그냥 흘러가게 두세요. 그 샘물이 당신의 세계를 채울 거예요.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고 미리 안전거리부터 확보하려 들지마세요. 발걸음을 디디기 전에 확신을 얻으려고 기다리지 말아요. 당신은 당신이 주는 대로 받게 될 거니까. 이따금 전혀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곳에서 받을 수도 있지만요.

일단 '인식의 문'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자신의 '낯선' 행동에 익숙해지면, 그 문들을 열고 닫는 일은 쉬워진다.

내게 사랑은 모든 것이에요. 사랑은 욕망할 수 없어요.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죠. 사랑은 버릴 수도 배신할 수도 없어요.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죠. 사랑은 포로가 될 수 없어요. 쌓아놓은 제방 위로 넘쳐흐르는 강물이기 때문이죠. 사랑을 구속하려 애쓰는 이는 사랑의 젖줄을 끊어놓게 될 것이고, 그렇게 갇힌 물은 고여서 악취 풍기는 시궁창이 될 거예요. ... 당신은 늘 자신의 꿈을 접으려고 애써왔고, 그렇기에 당신 입에서 '나는 원한다'라는 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어요. '해야만 한다' '기대한다' '그래야 한다'라는 말들이 당신의 '원한다'는 말을 삼켜버렸기 때문이죠. ... 내 임무는 여러분을 일깨우는 거예요. 옛날에는 다스리는 자나 다스림을 받는 자 모두 신탁을 받아 미래를 점쳤죠. 하지만 미래라는 것은 현재에 내려진 결정에 영향을 받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변덕을 부리게 마련이에요. 페달을 계속 밟으세요. 그러지 않으면 자전거에서 떨어지게 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던 거야. 그 꿈에 나를 송두리째 맡겨버리면 되는 거였어. 그래서 고통받게 되면, 그냥 이를 악물고 견디면 돼. 고통은 곧 지나갈 테니까.

나는 내가 진실로 원하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후로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 외에는 어떤 문제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 내가 그곳에 있었던 이유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이 나 자신을 행복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 그런데 당신은 인간들이 그것을 원한다고 생각하나요? 스스로의 발걸음을 선택할 자유를?"
"나는 그렇게 믿어요. ..."

"하지만 시련의 순간이 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 조금 전에 당신이 한 말을 기억하세요. 당신은 사랑받고 보호받고 있어요."

세상에 내 딸의 행복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지요. 무엇 때문에 셰린이 그토록 어렵고 고통스러운 길을 걸어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엄마가 그 모든 걸 이해해야 하는 건 아니예요. 오직 사랑하고 보호할 줄만 알면 되지요.

사랑은 그저 사랑일 뿐이라는 것을.





신작 소설을 사보는 일은 거의 없는데,
일본 여행을 가면서 읽을 책을 준비하지 않은 탓에, 가판대 같은 공항 서점에서 겨우 찾은 책이 이 책이었다.

나 자신 보다는 남들의 시선에 신경쓰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은 그 꿈을 접어놓고
사랑을 하기 전에 사랑을 받고 싶다는 받아야겠다는 확신을 원하고
감성을 이성으로 통제하려는
그런 내 삶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남의 시선이 아닌 '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진정으로 원하는 꿈을 향해 나아가며,
사랑을 향해 열려있는,
머리 속 생각이 가슴 속 감정을 통제하지 않는...
그런 삶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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