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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 심윤경
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 심윤경 / 한겨레신문사
엄마는 오로지 침묵만이 살 길인 양, 말 못하는 두부 덩어리인 것처럼 웃지도 울지도 않는 늘 하나뿐인 표정으로 7년을 살아왔다.
우리 식구들은 아무도 서로에게 애정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 ... 영주의 갑작스런 행동을 처음 접했을 때 우리 식구는 모두 몹시 당황했다. 그리고 곧 그 신기한 행동에 걷잡을 수 없이 매료되었다.
이럴 때 서로 꾹 참고 조용히 넘어가는 법이 우리 집에는 절대로 없었다.
잠시 후 목욕물에 얼굴이 뽀얗게 부풀어오른 할머니가 들어섰다. 엄마는 다시 무표정한 가면으로 돌아갔다. 개다리소반에는 다시 밥과 김치찌개와 냉장고에 있던 묵은 반찬들이 차려졌다. ... "그래, 내가 그릇 찾아다놓고, 입단속시킬께. 떡 얻어먹고 또 야단까지 맞게 하면 되나. ... 그래 걱정 놓고, 얼른 다녀와. 아이구 노친네 그렇게 까탈이 심하실까."
"사실은요, 창피할 때도 있는데요, 제가 3학년 되도록 글씨도 모르는데 동생은 아직 어린데 다 아니까요, 저는 사실 창피한데요, 음음......, 엄마랑 아버지랑 되게 좋아하시거든요......, 할머니도 좋아하시구요, 동생이 글씨 읽고 나서는 엄마랑 아버지랑 한 번도 안 싸우셨어요. 얼마 전에는 엄마가 아버지 구두를 닦아놓으셨는데 제가 뛰어나가다가 밟아서 발자국이 났거든요, 그래서 할머니가 저더러 왜 어린 동생만도 못하냐고 그러셨는데요, 할머닌 원래 맨날 그러시니까 괜찮아요." ... 사실 나는 할머니한테 '영주 밑딱개'라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기분나쁠 것도 없었다. 그건 할머니가 나를 부를 때 꼭 이새끼야라고 부르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일이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아무 문제가 없는, 할머니가 노상 입에 달고 사는 말일 뿐이었다. ... 선생님이 물으시는 대로 조심스럽게 대답을 하면서 나는 뜻밖에도 후련한 감정을 느꼈다. 나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물어본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다들 착하고 똑똑한 영주, 미련 맞고 덜렁대는 동구라고만 생각했다. 커튼을 젖히고 무대 뒤편으로 가보면 그곳에는 아직 어리고 미숙한 영주, 생각 깊고 마음 넓은 동구가 있었다. 선생님이 지금 처음으로, 어두운 무대 뒤편에 쪼그리고 있는 착하고 멋진 나를 무대 위로 불러내려는 순간이었다.
아버지가 엄마를 좋아한다고?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가 엄마를 좋아한다면 그렇게 무심하고, 엄마의 약점을 가차없이 찌르고, 가끔 두들겨패기까지 할 턱이 없었다.
선생님이 어느 날 저녁, 웃는 얼굴로 나의 세상을 가득 채우고 하신 말씀이었다.
ㅁ은 '마음' 선생님은 내가 좀 수줍어하면서 "마음이요."라고 대답했을 때 좀 마땅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동구야, 눈에 보이는 물건이 좋아. 마음 같은 건 보이지 않으니까 나중에 생각이 잘 안 날텐데."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바꾸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왜 눈에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내 마음은 박 선생님과 똑같이 생긴, 눈에 보이는 '물건'이었다.
"나는 그게 안 쏘는 탱크인 줄 알았어요!"
선생님은 나를 보자 약하게 꿀밤을 때렸다. 아니 때리는 시늉만했다. 내 이마에 선생님의 오른손 가운뎃손가락 가운데 마디가 닿자, 물리적 접촉이 일종의 텔레파시의 매개 역할을 하는지 왜 이틀이나 학교를 안 왔니, 아픈 건 다 나았니, 선생님 보고 싶지는 않았니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나는 다시 공부 못하는 돌대가리 한동구가 되어 아무의 눈길도 받지 못하며 교실에 있는 65개 책상의 한 칸을 차지한 한 덩어리 까만 머리통으로 지내게 될 것이다.
나는 울면서 집에 돌아와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내가 도대체 얼마 동안 1학년이었던 거냐고 물어보았다. 엄마는 "1년"이었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때 1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를 확실하게 알았다. 나는 우리 반 친구들과 거의 평생을 같이 산 것처럼 느꼈었는데 그 엄청나게 긴 시간을 사람들은 "1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할머니는 평소엔 꽤나 깔끔을 떨지만 다 같이 외출할 일이 생기면 굳이 자신이 홀대받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가장 초라한 옷을 골라 입었다. 엄마의 깔끔한 인생에 할머니는 거의 재앙과도 같은 천적이다.
나는 섭섭한 마음을 애써 누르고, 선생님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인사한 후 <세계동물도감>을 받아들고 점퍼, 저고리, 내복의 소매가 차례로 푹 젖도록 하염없이 울면서 집에 돌아왔다.
나는 집에 돌아와 매우 울적한 상태로 여러 시간 동안 방에 틀어박혀 있었지만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 오늘만 거지 같은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아주 오랜 시간동안, 계속적으로, 벗어날 수 없는 거지 같은 날들이 계속되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사람들은 이런 걸 가지고 '절망'이라고 부르는게 아닐까.
"웃으니까 훨씬 보기 좋구나. 어린 애들은 울든지 웃든지 해야지, 영감처럼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으면 영 당황스럽거든."
"선생님, 저도 다 큰 어른이면 좋겠어요.!"
나는 담요를 뚤뚤 말아 고치를 틀고 어두운 동산 같은 삼촌의 등허리를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어떤 날은 집에는 영주가 있고 학교에는 박 선생님이 있는 것처럼 태연하게 삼촌과 저녁까지 먹고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문득, 지금 아버지가 나에게 한 말들도 아버지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버지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아버지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절대적인 권위가 오늘날 우리 가족 누구에게도 힘이 되지 못하고, 아버지가 애써 생각해낸 위로의 말이 엄마의 병을 낫게 하지도 못하고, 아버지가 애써 생각해낸 위로의 말이 엄마의 병을 낫게 하지도 못하고,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믿었던 할머니가 저렇게 한심한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을 책임지지 못하는, 아버지가 한 번도 그러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끔찍한 무력함일 것 같았다.
어른들은 어른들의 방식으로 살아간단다. 네 힘으로 당장 고칠 수는 없어. 중요한 건 네게 나중에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잘 하는 거야.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망설임 없이 이 한 몸을 던질 것이라 약속할 수 있지만, 어리석은 나는 몸을 던져 그들을 지켜야 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하나씩 하나씩 그들을 잃어갔다.
'누군가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는 그 사람이 왜 저러는걸까 하는 생각을 해봐. 모든 행동엔 이유가 있지 않겠니.' 행동의 이유를 생각한다. 앞으로 내가 명심해야 할 새로운 원칙이었다.
"이 집에 있으면 자꾸 생각이 나요." 아버지는 나의 대답에 깊이 공감했다. 이 집에 사는 한, 우리 중 누구도 영주에 대한 많은 환청과 환각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 아버지는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밥을 다 먹었다. 상처를 감추기 위해 태연한 척 애쓰는 맹수 같았다.
"지가 아파봤자 패륜을 당한 나보다 아팠겠냐만, 너 나 몰래 니 에미 보거든 이제 들어오라고 해. 아까운 병원비 축내지 말구. 저두 새끼 잃고 눈깔이 뒤집어져서 한 짓이라고 생각하구 내가 한 번만 봐줄 테니. 니 에미 오면 모실 동생이 준 그 달구새끼나 잡아서 푹 과야겠다. 온 식구가 국물이라도 마시고 나면 겨울 나기가 한결 수월하겠지. ... 야 이새끼야. 너는 니 에미라고 니 에미 잘난 줄만 알지? 니 에미는 그까짓 달구새끼 한 마리 못 잡아. 귀하게 자라신 몸이라구 웩웩 토하는 척이나 하구. 달구새끼 목 따구 털 뽑구 배 갈르구 다 내가 할 일이여. 너 봄가을루다 기생충 검사한다고 학교에서 똥 덩어리 떼어오라고 할 적에, 그거 잘난 니 에미가 해줬냐 내가 해줬냐? 니 에미는 만날 천날 새끼 위하는 척만 하지 드러운 꼴은 처다도 못 보는 위인이여. 잘난 척만 했지 세상 쓸데없는 게 니 에미여. 그거나 알아둬, 이 새끼야."
나와 노루너미에 가서 살자는 말에 흐뭇해서 할머니가 마음을 돌린 것인지, 아니면 원래 오늘쯤 못 이기는 척하고 엄마를 용서할 생각이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어제까지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일이 오늘 현실로 일어났다.
삼층 집 정원의 아름다움은 추운 날씨나 하늘을 찢는 번개도 끄덕 없이 이겨낼 수 있는 강건한 것이지만 시멘트 한 줌, 어느 난폭한 손목의 돌팔내질 한 번이면 곧바로 상처입을 수 있는 여리디 여린 것이기도 했다.
만세를 부르는 엿장수 아저씨를 서로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았던 할머니와 모실 할머니처럼, 영주와 나와 박 선생님은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지만 지금 같은 새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난 기본적으로 어느어느 문학상 수상작 이라고 나오는 책을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수많은 영화제와 수많은 문학상과 수많은 시상식들에서 수상을 받는 작품들이
순수하게 작품만으로 평가받는 것이 원칙이나,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아주 간혹, 어쩌면 그것보다는 더 자주 일어난다는 걸,
나도 모르는 사이, 이러저러한 평론과 이러저러한 기사와 이러저러한 소문들을 통해서 알아버렸고,
그래서 어떤 상을 받은 작품이라도 나에게 그 순수성을 인정받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에,
구지 내가 힘들여 그 순수성을 인정해야하는가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순수성을 인정하든말든 그들과는 아무 상관없을 것이기에,
나도 구지 힘들여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 책도 이런 작품이 있었는지, 이런 작가가 있었는지 전혀 모른 상태로 있다가
얼마전 언니가 권해줘서 받아든 몇권의 책들과 함께 우리집에 오게 되었고,
언니가 준 몇권의 책중에서도 제일 마지막으로 읽게 되었다. (서론이 너무 길군. ㅋ)
읽는 내내 아빠가 인쇄소를 하던,
가정집이랑 인쇄소랑 같이 연결된 망우동의 그 집이 생각났고, 할머니도 생각났다.
가끔 할머니가 집에 와 계시면 엄마와 아빠는 가끔 혹은 자주 싸웠고,
그 와중에 집안의 어떤 물건이 망가지기도 했던 것 같고,
할머니는 우리 집 누구에게도 하다못해 아빠에게도 다정하지 않았던 것 같고,
싸우다 못한 엄마가 나를 데리고 집을 나와서는 갈 데가 없어 길건너 담벼락 뒤에서 눈치만 보다가
내가 무섭기도 하고 춥기도 해서 울면서 엄마한테 집에 가자고 하자 어쩔 수 없이 집에 돌아왔던 거 같기도 하고,
아주 어릴때 가끔 밤에 끓어오르는 열 때문에 누워 빙빙 돌아가는 천정과 벽을 정신없이 보고 있던 나를
아빠가 업고 등이 땀에 다 젖도록 병원이란 병원의 닫힌 문을 두드리며 애 좀 살려달라고 했던거 같기도 하고,
어떤 날은 삼촌과 심하게 말다툼을 한 아빠가 방문을 걸어잠그고 우는 소리를 듣기도 했던 거 같고,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하나도 슬프지 않다고, 속이 시원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던 거 같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이 행복하다고, 즐거운 나의 집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고,
이렇게 살거면 가족이고 형제고 아무도 없이 그냥 각자 따로따로 사는게 더 낫겠다는 생각도 했었고,
다정다감한 할머니는 TV 속에만 있다고 생각했고,
초등학교 4학년이 되기 전까지 심각하게 내성적이고 말이 없었던,
심지어 엄마 아빠한테 혼날 때 조차도, 어떤 말에도 대꾸를 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방바닥만 쳐다보고 있다가,
제 풀에 지친 엄마 아빠가 혼자 말하고, 혼자 결론짓고, 혼자 반성하고 하는 동안도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랬던 나의 성격은 이런 가정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했었고,
사람들과의 관계맺기가 어려운 나의 성격의 심각한 결함의 이유를
가톨릭이라는 종교와 함께 보수와 가부장적이라고 생각했던 집안 분위기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그동안 일련의 과정을 통해,
책을 읽기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하고, 상담을 받기도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가족이 생기기도 하고, 혼자 나와살기도 하면서...
예전엔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
예전엔 용서할 수 없었던 것들이 용서가 되기도 하고,
예전엔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을 말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그때의 나의 모습과 우리 집의 모습과 우리 할머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동구네 집을 들여다보는게
그렇게 아프지만은 않았고, 춥지만도 않았던 건,
지금은 엄마도, 아빠도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고,
그땐 몰랐지만, 엄마 아빠가 힘들었지만, 나와 동생을 잘 키우려 애쓰셨던 걸 알고,
이제는 고맙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안 쏘는 탱크인 줄 알았다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동구의 순진함 혹은 순수함은
우리 모두 가지고 있었던, 그러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어쩌면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추억이겠지만,
그래도, 이 책을 통해 만나는 동구는 그런 순수함과 순진함 때문에
읽는 내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했다.
신인작가가 이런 문학상을 수상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건방진 생각이 들기도 했고,
다른 작품은 어떤 게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는데...
조만간 다른 책도 좀 찾아봐야겠다.
좋은 책 추천해준 언니님 감사합니다. ^^
<달의 제단>도 있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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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2008/05/01 14:36
그래도 달의 제단 읽을만 해..
어디서 본듯한 소설이긴 하지만.. 나의 아름다운 정원도 사실은 어디서 많이 읽은 듯한 이야기지 않니?
하지만.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 흔한 이야기긴 하지만 나름의 완성도가 있듯이.. 달의 제단도 관대하게 그 작품만 즐긴다는 생각으로 읽는다면 '나의 아름다운 정원'만큼 재밌고 마음을 움직이는 면도 있어..
달의제단도 집에 있다. 와서 가져가. 아니면 언제 내가 들고 가마. 그리고 짬뽕은 언제 먹냐? -
언니 2008/05/01 14:38
너의 어릴 적 이야기.. 좋네..
그리고 예전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이해되고.
예전에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 용서되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이 말할 수 있게 된 건..
너가 잘 나이들어 가고 있다는 증거다..
근데 언니는..
예전에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이 용서 안되고, 이제 더 많은 비밀이 생기고, 또 말해봐야 결국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어 버렸네..
나는 잘못 늙어가고 있는 중인가?
봄인데.. 얼굴 안본지 오래되었네. 보고싶다..-
물결's 2008/05/07 16:19
언니 여기에 올린 리뷰 그대로 복사해서 올린거야...
빌린책인거 인터파크에서도 알아.
그러니까... 순수하게 내용으로 선정되었다는 거지. ㅋㅋㅋㅋㅋ
(나 정말 이 어이없는 자신감 사고후유증인거 같어. ㅋ)
책 좀 추천해바. 책을 사야겠는데
빌려읽을 책과 사서 읽을 책을 좀 구분해야겠는데...
복잡하네.
신나게 사랑하는게 미안했던 시대 ... 오래된 정원
씨네큐브 광화문 1관 B열 64
바람에 불려 대기가 젖는다
내가 봄비라고 이름 짓는다
......
그래서 아침부터 그렇게 우굴쭈굴했구나.
그래도 싸온건 먹자. 배고프다.
......
하루하루 날짜 죽이는게 미치도록 지겨워서 그래요
......
내게 당신은 언제나 가물가물한 흔적일 뿐이었어요.
하지만 죽음을 앞에 둔 지금 내 인생에는 당신뿐이었다는 걸 느껴요. 여보. 사랑해요.
소설을 영화화할 경우,
원작을 읽은 사람들에게, 특히 그 원작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받기란 쉽지 않지만...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은
원작의 느낌에 감독의 시선이 잘 녹아든 것 같다.
영상이 참 아름다웠고,
주연과 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처음 영화화한다 그랬을 때 지진희와 염정아 캐스팅이 썩 마음에 와닿지 않았는데
지진희도 염정아도 화면속에 아주 잘 녹아있었고
영화를 보면서 발견한 신인 영작 역의 윤희석 ... 앞으로 눈여겨 볼 예정 ^^)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 편집과 연출도 참 좋았던...
약간 의외였던 것은 엔딩 크레딧에 올라오는 임상수 감독의 이름에서 살짝 새삼스러운 느낌
세상에 대한 조소 보다는 따뜻함이 느껴져서...
감독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구나 싶어서
좋았다.
(요즘 장진 감독은 예전에 비해 좀 쓸쓸해진 느낌...
그 나름 나쁘지 않지만... 무슨 일일까 싶어 좀 안타까운데...)
감기 기운이 점점 심해지는 몸을 이끌고 백만년만에 본 영화 ... 만족 ^^
-------------
임상수 감독은 80년대에 대학을 다녔지만 ‘데모판’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지금의 한국사회가 예전보다 좋아졌다면 80년대 운동권들이 무슨 역할이든 한 것이 아니냐”라면서도
“하지만 그들이 과도하게 미화되거나 신비화되는 것을 나는 거부한다”고 설명했다.
고 한다. - 세계일보 한준호 기자 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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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 2007/01/05 09:33
SBS 남상석 기자의 영화이야기
대부분 그대로 패스하는 뉴스레터들 중 본문을 읽어보는 몇 안되는 뉴스레터 중 하나.
오늘 아침 뉴스레터에 나온 오래된 정원 리뷰 칼럼.
http://news.sbs.co.kr/journalist/news_column_view.jsp?news_id=N1000204317 -
김경순 2008/04/06 00:09
한국영화도 많이 봐야겠어...
참 괜찮은 영화들이 많은거 같은데...
조폭들 나오는 영화들보다 흥행을 못하는거 같어... 안타깝군...
그런데 이거보고 나니 내사랑(?)의 스케일은 왜그래 작아 보일까? ^^
오래된 정원 ... 황석영
오랜 독거수의 특징은 감정의 표현을 빼앗긴다는 데 있었다. 우선 타인과 감정을 나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말을 잃고, 감정을 잊고, 추억조차도 표백되어버린다.
이게 사는 거여? 속이 헛헛허고 씁쓸해서 그런다 왜?
은결이라구. 햇빛에 강물이 반짝이는 걸 은결이라구 한다지.
하지만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사랑하는 이들의 일상은 언제나 새로운 출발이었다. 태어남이라든가 만남이라든가 싫증이라든가 넌더리라든가 이해라든가 죽음이라든가 미움과 노여움과 그리움이나 시시함, 그런 모든 것이 긴 장마철에 한무리씩 다가오던 끝없는 구름의 행렬처럼 차례로 스쳐 지나왔다. 기록영화에서 보았듯이 꽃봉오리가 움트고 꽃잎이 나오고 피어나고 활짝 피어나고 더 활짝 피어나 젖혀 지면서 끝에서부터 시들어 움츠러들고 드디어는 차례로 말라 떨어져 가지 끝에 간신히 붙은 꽃잎 하나 흐느적이다가 슬로우 모션으로 나부껴 떨어지는 광경. 그리고 필름은 거꾸로 돌아가며 다시 환원된다. 이 모든 출발들은 매순간 새로 시작되는 것 같다. 나는 때때로 세기말의 그림들처럼 불안하다. 이별 또한 새로운 출발이 될 테니까. 어쩌면 그는 내게서 자기를 빼앗아갈지도 모른다.
눈 들이 바라보면 꽃 핀 강산은 백두에서 한라까지 하나인데 당신들은 어떤 세상을 그리다 가셨나요.
그렇지만 어느 누군들 잊을 수 있으랴. 그들의 넉넉한 따뜻함과 시대 속에서 잊혀지고야 말 익명에도 당당했던 청춘을.
사람의 얼굴은 그냥 주전자나 물컵이나 사과 같은 정물이 아니거든요. 사람의 얼굴은 표정이에요. 마음이 투영되고 있는 그릇이지요. 그림을 그리는 자는 그걸 보아야 해요. 더구나 우리는 늘 함께 있잖아요.
이제 와 생각해보면 어떤 시련이나 고통이든 끌어안고 겪는 이에게만 꼭 그만큼 삶은 자기의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차례차례로 내놓거든요. 참으로 지당한 말씀.
사람 사는 게 뭐니. 결국은 삶의 절반은 세끼 밥먹는 데로부터 시작되었지. 정말로 손쉬운 것이었어. 처음엔 다같이 풀치마를 입고 살았을 거야. 태양이 떠서 저물고 다시 뜰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거나 아니면 사랑을 했겠지. 풀벌레들이 극성스럽게 울어대는 초저녁 무렵이면 그들은 눈을 맞추고 잠자리를 찾으러 갔어. 먼동이 트기 시작하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물가로 가서 조개를 줍고 숲으로 들어가 열매를 땄어. 하루 중에서 가장 최소한의 시간만을 먹을 것을 준비하는 일로 허비했지. 그리곤 놀았어. 남녀 사이에도 극성스런 소유욕이 없을 테니까 모든 아이들은 공동체가 함께 키우는 생명들이었을 거야.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미경아, 이 문디 가시나야, 사랑은 입술에 발린 루주처럼 혓바닥 위에 얹힌 말재간이나 추상적이고 거창한 짓이 아닐거야. 글쎄 즈네들이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간대. 웬만한 자극 가지고는 놀라지 않는 세월이니까 말들을 과격하게 해. 사랑은...... 전체의 절반은 밥 같은 몸이고, 절반의 절반은 끊임없이 들이쉬고 내쉬는 숨결 같은 일상이고, 절반 중에 그 나머지 절반은 주변의 이웃이 완성시켜준단다. 그렇게 늙어가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다들 절반도 못 가서 실패하고 그리고 노년은 쓸쓸한 각자의 고독이야. 절반의 절반까지만 가도 다행이고 거기서 못다한 건 후생에서나 다할까.
길은 언제나 돌아오기 위해서 있다. 누구도 끝까지 걸어간 이는 없다. 서 있던 자리에는 없어진 내가 있다. 나는 이미 그다. 나와 그가 이제 만난다. 달라진 것은 없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길.
지상에서 어느 때에나 사람들은 사랑을 했어요. 세상에 드러나는 모양이 시대마다 다르기는 했어도, 물살에 씻기어 닳아지고 부서지는 돌멩이처럼 일상에 시달리는 벗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회한에 잠기지 않기를 바래요. 지금 그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풍요로운 인생의 깊이를 존중하라고. 그리고 더욱 성숙한 사랑으로 지난날과 미래를 껴안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어요.
당신은 그 안에서 나는 이쪽 바깥에서 한 세상을 보냈어요. 힘든 적도 많았지만 우리 이 모든 나날들과 화해해요. 잘 가요, 여보.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알게된 '은결'님을 통해 읽게 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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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신나게 사랑하는게 미안했던 시대 ... 오래된 정원
2007/01/24 01:28
2007. 1. 4 20:30씨네큐브 광화문 1관 B열 64바람에 불려 대기가 젖는다내가 봄비라고 이름 짓는다......그래서 아침부터 그렇게 우굴쭈굴했구나.그래도 싸온건 먹자. 배고프다.......하루하루 날짜 죽이는게 미치도록 지겨워서 그래요......내게 당신은 언제나 가물가물한 흔적일 뿐이었어요.하지만 죽음을 앞에 둔 지금 내 인생에는 당신뿐이었다는 걸 느껴요. 여보. 사랑해요.소설을 영화화할 경우, 원작을 읽은 사람들에게, 특히 그 원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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