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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1/29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 조너선 사프란 포어 (2)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김연수 / 문학동네
사랑은 모든 인류를 유일한 존재로 만들고, 또 그러므로 이 우주는 유한할 수밖에 없다.
가장 육체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사랑은 그런 온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평소보다 약간 더 따뜻한 상태. 하지만 한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의 몸에서 전해지는 그 정도의 온기면 충분했다.
어두운 밤하늘에 수많은 전파들이 존재하듯, 외롭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에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을 것이라고 정민은 생각했다.
사랑은 입술이고 라디오고 거대한 책이므로. 사랑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게 말을 건네므로.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그 입술을 빌려 하는 말은, 바로 지금 여기가 내가 살아가야 할 세계라는 것이므로.
이처럼 지금의 사람들이 핸드폰, 블로그, 검색, 이메일 같은 단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시절의 사람들은 총격, 수류탄, 폭격, 사살 등의 단어에 노출돼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절의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불행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건 행복과 불행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문제였다. 습관이란 무의식중에 행하는 행동을 뜻한다. 폭력이 몸에 밴 사람은 폭력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바로 그 '인식하지 못함'이 그가 속한 세계를 폭력적으로 만든다.
밤마다 텅 빈 우주공간을 바라보며 우리만 살기에는 상당히 넓다고 생각해본 사람만이, 그래서 어딘가에서 날아올지도 모를 신호를 기다리며 전파망원경을 이리저리 돌려본 존재만이 그 레코드판을 들어볼 생각을 할 거야. ... 우리는 자신과 가장 닮은 사람과 연결되는 거야.
새로운 삶을, 새로운 현실을,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자신의 이름을 거부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야. 그래서 나는 망명이란 이름으로부터 도망치는 일이라고 생각해. 잔인한 현실을 꿈으로 만들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으니까. 현실을 꿈으로 만드는 첫번째 단계는 자신의 이름을 부정하는 일이야.
인생이 이다지도 짧은 건 우리가 항상 세상에 없는 것을 찾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라.
살아오는 동안, 그를 위해 슬퍼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까지 그는 그 누구의 슬픔도 아닌 사람이었다.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린 사람은 한기복이 처음이었다.
나는 행복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 행복을 찾기 위해 나는 온 세상을 떠돌아다녔으니까. 거기가 환하다는 이유만으로 마당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찾는 물라 나스루딘처럼. 찾아내는 순간, 그간의 모든 노력이 무가치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그 보물을. 찾아내는 순간, 나의 인생이 더없이 짧다는 사실만을 가르쳐줄 뿐인 그 보물을. 그리하여 내가 찾는 진정한 보물이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만을 가르쳐줄 뿐인 그 보물을. 어떻게 된 일인지 내 소망이 녹아들었음에도 그 꿈이 내게는 슬펐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하나씩 있는 것이므로 관심만 기울이면 서로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었다.
나는 다만 묻고 있을 뿐이야. 나만의 방식으로 모두에게 묻는 거야. 우리의 삶은 과연 다른 인류에게 기억될 만한 값어치가 있었는가. ... 존재가 없다면 다만 고통만 사라질 뿐인가? 그들의 부모는? 아내는? 아이들은? 그렇다면 캠프에서도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웃을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 그건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야.
나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던 그날부터 역사는 실시간 중계되기 시작했다고 생각해. 그렇게 되기 시작하면 우리는 눈을 떼지 못하고 시청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 그게 자본주의의 미디어가 하는 일이야. 우리를 역사의 시청자로 만드는 것.
하루에 사십이해일천이백만경 번 이산화탄소를 배출해내는 인간들로 가득 찬 이 지구에서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은 이 180이라는 숫자 때문이다. 인간만이 같은 종을 죽이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만이 웃을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180이라는 이 숫자는 이런 뜻이다. 앞으로 네게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날 테고, 그중에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일이 일어나기도 할 텐데, 그럼에도 너라는 종(種)은 백팔십 번 웃은 뒤에야 한 번 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이 사실을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된다.
"믿을 수 없다고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죠."
"물론이죠. 그래서 두려움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니까. 정민의 삼촌이 품게 된 몽상도 거기서 비롯했죠. 간단한 몽상이었어요. 과연 이 세계뿐인가? ... 바로 이 무렵에 중앙전신국에서 수류탄이 터지는 것을 직접 봤고, 청원경찰에게 폭행을 당하죠. 문제는 그게 우연한 폭행이었다는 점이었어요. 폭력에 관한 한 제비뽑기를 하는 사회인 거죠."
광주항쟁은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광주항쟁은 남한에 있는 모든 젊은이들을 우연한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 누군가는 그들에게 이게 우연한 세계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했는데,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유 없이 외로움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누군가가 그리워서 외로움에 시달리는 편이 훨씬 더 낫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 그해 가을, 나는 짐승처럼 한 인간의 체온이 그리웠다. 그리움의 본질은 온기의 결여였다.
그건 미안한 게 아니고 후회가 되는 일이지.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안나와 더 많이 사랑할 거야. 더 많이 키스하고 더 많이 포옹하고 더 많이 섹스할 거야. 아직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어둠 속에 머물다가 단 한 번뿐이었다고 하더라도 빛에 노출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평생 그 빛을 잊지 못하리라. 그런 순간에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됐으므로, 그 기억만으로 그들은 빛을 향한, 평생에 걸친 여행을 시작한다. ... 죽지 않는 한,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시시각각으로 열망할 테고, 그 열망이 다시 그를 치욕스럽되 패배하지 않는 인간으로 살아남게 할 테니까 말이다. 그가 살아남기를 열망했듯이 우리가 살았던 그 시절 역시 살아남기를 열망했다. 그 열망은 그의 것이기도 했고, 서서리 무너진 뒤에도 오랫동안 잔영이 남아 있던 그 시절의 것이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정확하게 아는 건 우리가 아니라 그 입체 누드사진 같은 사물들일 뿐이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책 표지에 있던 김연수라는 작가의 추천사를 보았을 때는
김연수란 사람이 누구지 했었다. 그가 작가라는 것도 몰랐을 때.
얼마전 어느 인터넷서점의 뉴스레터에서 유명작가들이 추천하는 책에 관한 내용이 있었는데,
그때 김연수란 사람이 작가라는 사실을, 그것도 유명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언니들에게 물어본 결과, 정말 유명한 작가이며, 그의 글들이 읽어볼만하다는 말을 듣고 주문한 책이 이 책이다.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얘기를
나와 몇년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작가의 시점에서
녹녹치 않았던 우리 현대사의 사건들과 함께 잘 풀어놓았다.
역사와 개인은 각각 제각각 따로 떨어져 외로운 것 같아도,
눈에 보이지 않는 실로 얼기설기 짜여,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러니 '아직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 때' '평소보다 약간 더 따뜻한 상태'의 온기를 나누며 살자는...
원영언니가 추천해준 '청춘의 문장들'을 읽어야겠는데,
인터파크에선 품절. 오랜만에 서점가서 책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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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니스트 2008/04/13 00:12
저도 예전에는 책을 한창 읽었는데, 요즘은 난독증이 생겼는지, 그림있는 책을 찾아요.
오늘은 잠깐 교보에 가서 이외수의 하악하악을 보았지요.
제가 생각했던 세계랑은 좀 달랐어요. 저도 김연수라는 분은 잘 모르는데,
도서관에서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진아 2008/04/13 22:57
그림있는 책도 좋죠...
전 그림 많은 책도 읽는데 시간이 오래걸려요. 그림을 너무 꼼꼼히 봐서 그런지... ^^
어제 위캔 가서 수녀님 뵙고 왔어요.. 내일 아름다운 가게 가신다면서요?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
기차니스트 2008/04/14 02:38
아, 다녀오셨군요^^
저는 답글다느라ㅋㅋ 아직까지 못자고 있네요.
내일 데이트하고, 아름다운 가게도 가고 이래저래 바쁘겠어요ㅋㅋ
글 올리는 문제는 어떻게 되었죠?? -
진아 2008/04/14 10:42
피곤해서 데이트 망치시는건 아니겠죠? ^^
일단 토욜은 만나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구요...
위캔에서도 저희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많이 궁금해하시더라구요 ^^
목요일쯤 따로 약속 정해서 카테고리며 등등 의논하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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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편지 ... 그 책에서
네가 있는 곳에 왜 나는 없는가 1963. 5. 21
사람들이 재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구나, 어쩌면 어리석은 짓일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면 무슨 말을 하겠니, 사람들이 서로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 좋고, 키스하고 우는 모습이 좋아, 초조함, 마음만큼 입에서 줄줄 쏟아지지 않는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을 다 담지 못하는 귀, 모든 변화를 다 잡아내지 못하는 눈을 보는 게 좋아, 포옹, 재회, 그리움의 끝이 좋아, 한쪽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공책에 쓰지, 이미 외우고 있는 비행 일정을 꼼꼼히 훑어보고, 관찰하고, 쓰는 거야, 잃고 싶지 않았으나 잃어버린 삶을 기억해 내지 않으려 애쓰지만, 기억해야 해, 여기 있으면 가슴 가득 기쁨이 차오른단다, 내 것이 아닌 기쁨일지라도,
'무(無)의 공간'
누구나 가끔씩 그냥 사라져버리고 싶을 때가 있잖니,
울고 싶었지만 울지는 않았어, 어쩌면 울었어야 할지도 몰라, 그방에서 우리 둘 다를 눈물 속에 익사시켜서, 우리의 고통에 종지부를 찍었어야 했다, 그렇게 했다면 우리는 이천 장의 백지 속에서 얼굴을 묻은 채 둥둥 뜬 모습으로, 아니면 내 눈물이 증발하고 남은 소금 밑에 묻힌 채 발견되었을 거야,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왜 도움을 청하는 대신, 볼 수도 없으면서 그 많은 잡지와 신문들을 부탁했을까, 그것이 그녀 나름대로 도움을 청하는 방식이었을까?
어느 가을 오후 헛간 벽이 무너졌어 - "낙엽 한 장이 결정적이었어." 애나 아버지가 한 농담이었지 - 이튿날 그는 책꽂이를 가져다가 벽을 새로 만들었어, 그래서 책 자체가 안과 밖을 분리하게 됐어. (새로 얹은 지붕은 책이 비에 젖지 않도록 보호해 줬지만, 겨울에는 책장들이 얼어붙었다가, 봄이 오면 한숨 같은 소리를 내쉬었단다.) 그는 그 공간에 양탄자와 작은 소파 두 개를 갖다 놓고 응접실처럼 꾸몄어, 저녁이면 그곳에서 위스키 한 잔과 파이프 담배를 즐기며 책을 빼내 벽에 난 구멍으로 시내를 바라보기를 좋아했지.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누구나 다른 이로부터 바라는 것은 오로지 그것뿐이다, 사랑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랑이 존재한다는 인식,
우리가 살아야만 한다는 것은 치욕이야, 하지만 우리 삶이 단 한 번뿐이라는 것은 비극이란다, 인생을 두 번 살 수 있다면 한 번은 그녀와 함께 보냈을 텐데.
나는 살아갈 수가 없어, 노력해 봤지만 할 수가 없다. 그 말이 쉽게 들린다면, 산이 그저 산인 것이나 마찬가지야. 네 어머니도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나 그녀는 살기를 선택했고, 살았어,
나의 감정들
나는 그에게 내 눈이 별로라고 말했어. 그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랐거든. 우리는 아파트 안에서 그 안에 들어갈 수는 있어도 존재할 수는 없는 안전한 장소들을 만들었어.
그를 위해서라면 뭐든 다 했을 텐데. 어쩌면 그게 내 병이었는지도 몰라.
그의 마음속 어디에도 내가 없다는 것을 알았어.
나는 울기 시작했어.
그의 앞에서 울어보기는 처음이었어. 사랑을 나누고 싶었어.
나는 그에게 여러 해 전 우리가 처음으로 무의 공간을 만들었을 때부터 내가 알아야 했던 것을 물어봤어.
우리는 뭔가요? 존재인가요 무인가요?
나는 그가 표를 사려고 줄 서는 모습을 보았어.
생각했지, 대체 언제 그가 떠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할까?
그에게 어떻게 부탁할지 아니면 어떻게 얘기할지 그것도 아니면 어떻게 애원할지 알지 못했어.
난 갑자기 부끄러워졌단다. 부끄러워본 적은 별로 없었는데 말이야. 수치심을 느낀 적이야 많았지. 부끄러움은 자기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고개를 돌릴 때 느끼는 감정이지. 수치심은 원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고개를 돌릴 때 느끼는 감정이고,
나는 어떻게 하면 덜 느낄 수 있는지를 배우는 데 평생을 바쳤어.
날이 갈수록 느끼는 감정들이 줄어들었지.
이런 것이 늙어간다는 것일까? 아니면 늙는다는 건 뭔가 더 나쁜 것일까?
슬픔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면, 행복으로부터도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단다.
나는 그에게서 공책을 빼앗았어. 꼭 책이 울고 있는 것처럼 책장 위에서 눈물방울이 굴러 내리고 있었지.
당신이 나에게 상처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게는 상처예요. 우는 얼굴을 보여주세요.
그난 손을 내렸어. 한쪽 뺨에 '예'가 거꾸로 찍혀 있었지. 또 한쪽 뺨에는 '아니요'가 거꾸로 찍혀 있었어.
나는 그의 몸에 손을 얹었어. 그를 만지는 건 항상 내게 아주 큰 의미가 있었지. 그건 내가 사는 이유였어. 이유는 결코 설명할 수 없었지만. 손끝을 살짝 대는, 아무것도 아닌 접촉이라도 좋았어. 그의 어깨에 손가락을 댄다든가. 같이 버스에 끼어 앉아 있을 때 허벅지 바깥쪽이 맞닿는다든가.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난 그런 접촉이 필요했어. 때때로 우리의 작은 접촉들을 꿰매 한데 이어놓는 상상을 해보았단다. 사랑을 나눌 때는 몇 번이나 서로의 손끝이 상대의 몸을 스칠까? 왜 누구나 사랑을 나누는 것일까?
아무도 이 문장을 가리키지는 않았지, 당신을 사랑해요.
그 주위에는 길이 없었어. 우리는 그것을 기어올라 넘을 수도 없었고, 끝이 나올 때까지 걸어갈 수도 없었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배우는 데 한평생이 걸렸다니 한스럽구나, 오스카. 다시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다르게 살 텐데.
내 삶을 바꿀 거야.
피아노 선생님에게 키스를 할 거야. 그가 비웃어도 좋아.
침대에서 메리와 함께 팔짝팔짝 뛸 거야. 바보 같다 해도 상관없어.
못생긴 사진들을 보내버릴 거야. 수천 장이라도.
순간들 사이의 빈틈으로 여러 해가 지나갔지.
그들에게 말했어. 가.
너희들 모두.
가.
그러자 그들은 갔단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어.
77년생이 썼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
이 책을 읽다 보면 초현실주의 화가가 되어 그림을 그리고 싶어진다.
책장 틈으로 시내를 바라보는 눈,
책장 위로 굴러내리는 눈물방울,
베개 밑으로 연결된 배수구,
가슴에 생긴 멍,
큰 호주머니에 담긴 지구,
끊어진 전화선 양쪽 수화기에서 한쪽은 알파벳을, 한쪽은 숫자를 뱉어내는 입,
다문 입 속에 가득한 단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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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 조너선 사프란 포어
2007/01/29 01:39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Extremely Loud & Incredibly Close / 조너선 사프란 포어 / 송은주 역 / 민음사믿을 수 없게 슬픈 날이었지만, 엄마는 정말,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어떻게 엄마한테 그 말을 해줄까 궁리하고 또 궁리했지만, 어떤 방법을 생각해 봐도 다 이상하고 어색했다. 엄마는 내가 만들어준 팔찌를 끼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기분이 최고로 좋았다. 나는 엄마에게 장신구 만들어주는 걸 아주 좋아했..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Extremely Loud & Incredibly Close
조너선 사프란 포어 / 송은주 역 / 민음사
믿을 수 없게 슬픈 날이었지만, 엄마는 정말,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어떻게 엄마한테 그 말을 해줄까 궁리하고 또 궁리했지만, 어떤 방법을 생각해 봐도 다 이상하고 어색했다. 엄마는 내가 만들어준 팔찌를 끼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기분이 최고로 좋았다. 나는 엄마에게 장신구 만들어주는 걸 아주 좋아했다. 그러면 엄마가 행복해한다.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 또한 나의 레종 데트르다.
엄마는 아직 스크래블 게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거울을 볼 때가 아니라든지. 필요 이상으로 전축을 크게 틀어놓으면 안 된다든지. 그런 일은 아빠한테도 옳지 않고, 나한테도 옳지 않았다. 하지만 전부 마음속에 묻어두었다. 엄마에게 아빠의 메시지로 목걸이, 발찌, 달랑거리는 귀걸이, 머리 장식 등등 다른 모스 부호 장신구들을 만들어주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뉴욕의 모든 베개 밑에서 저수지로 이어지는 특수 배수구를 발명했다. 사람들이 울다가 지쳐 잠이 들 때마다 눈물이 전부 같은 곳으로 흘러가게 되면, 아침마다 일기예보관이 눈물 저수지의 수위가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뉴욕이 무거운 부츠를 신고 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있겠지. 그리고 진짜로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난다면 - 핵폭탄이나, 아니면 적어도 생화학 무기 공격이나 - 엄청나게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울리며 모두를 센트럴 파크로 불러들여서 저수지 주위에 모래주머니를 쌓으라고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페인 박사님은 말하길 자기 감정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셨어요. 가끔씩은 스스로에게 휴식을 주어야 한대요."
더 큰 호주머니가 있어야 해. 나는 잠자리에 누워 사람이 잠들기까지 평균적으로 걸리는 시간이라는 7분을 헤아리며 생각했다. 거대한 호주머니, 우리 가족, 친구들, 심지어 리스트에 없는 사람들, 한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보호해 주고 싶은 사람들 모두를 감싸고도 남을 만큼 큰 호주머니가 있어야 한다. 구(區)와 도시들을 위한 호주머니, 우주를 다 감쌀 호주머니가 필요하다.
"정말로 근사한 건요, 그 여자가 죽은 코끼리의 울음소리를 그 코끼리의 식구들한테 들려줬을 때의 반응이었대요." "어땠는데?" "코끼리들이 기억하고 있더래요." "그래서 코끼리들이 어떡했다니?" "스피커로 다가가더래요."
"인간은 얼굴을 붉히고, 웃음을 터뜨리고, 종교를 갖고, 전쟁을 하고, 키스를 하는 유일한 동물이에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키스를 많이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인간다워지는 거라고요."
부츠가 어찌나 무거운지 우리 밑에 기둥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외로운 이가 내가 살아온 동안 죽 바로 가까이에 살고 있었단 말인가? 진작 알았더라면 위층으로 올라와 친구가 되어주었을 텐데. 아니면 장신구라도 좀 만들어주든가. 유쾌한 농담도 해주고. 아니면 탬버린 콘서트라도.
"그런 얘기를 꼭 해야겠니?" "네." "지금?" "네." "왜?" "제가 내일 죽을지도 모르잖아요?" "넌 내일 죽지 않아." "아빠도 그 다음 날 돌아가실 줄은 모르셨죠." "너한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아빠한테도 일어나지 않을 거였어요."
"엄마는 행복해질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는 중이야. 웃으면 행복해지지."
마룻바닥에서 잠들었던 모양이다. 잠에서 깼을 때, 엄마는 내 셔츠를 벗기고 내가 파자마로 갈아입도록 거들었다. 틀림없이 엄마가 내 멍을 다 봤을 것이다. 나는 어젯밤 멍 자국을 거울에 비춰보며 개수를 세어봤다. 마흔한 군데였다. 그중에는 큼직한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작았다. 엄마 때문에 멍이 드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어쩌다 멍이 들었느냐고 물어봐주고(엄마도 알고 있을 테지만), 내게 미안해하고(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깨달을 테니까), 괴로워하고(적어도 그중 몇 개는 엄마 탓이니까), 죽어서 나를 홀로 남겨두는 일이 절대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멍을 볼 때 엄마 눈에 떠오른 표정조차 볼 수가 없었다. 셔츠를 주머니처럼, 혹은 해골처럼 머리에 뒤집어써서 얼굴을 덮고 있었으니까.
"네가 말한 것들을 어떻게 해낼 생각이니?" "마음속 깊은 곳에 제 감정을 묻어둘 거예요." "감정을 묻어둔다니, 무슨 뜻이지?" "아무리 많은 감정이 생겨도, 밖으로 드러내지 않겠다는 거예요. 꼭 울어야겠다면 속으로 울 거예요. 피를 흘려야 한다면, 멍들게 하는 거죠. 미쳐버릴 것 같다 해도 세상 사람들한테는 입을 꼭 다물 거예요. 말해 봤자 아무 소용없어요. 남들의 인생까지 구렁텅이에 빠뜨릴 뿐이예요." "하지만 네가 마음속 깊이 네 감정을 묻는다면, 넌 진짜 네가 아니게 될 거야. 그렇지 않겠니?"
살아남은 수천 명의 사람들은 희망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고문을 당한 거야. 로슈비츠 다리 밑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내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어. 계속 생각해야 해. 계속 생각하면 살 수 있어. 그러나 살아남은 지금, 이제는 생각이 나를 죽이고 있단다. 나는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 그날 밤, 붉은 화염 덩어리 검은 물 같던 하늘, 전부를 잃기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내가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었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단다.
"글쎄, 아무리 둘째가라면 서러울 비관주의자라도 센트럴 파크에서 단 몇 분만 있어보면 현재 이외에 뭔가 다른 시제를 경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마련이지. 그렇지 않니?" "그런 것 같아요." "어쩌면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고 있거나, 왔으면 하는 것을 바라고 있는지도 몰라. 아니면 그건 공원이 움직이던 날 밤 꾸었단 꿈의 나머지 조각일지도 모르고, 우리는 그 아이들이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고, 그 아이들이 바랐던 것을 바라는지도 몰라."
누군가를 사랑한 사십 년의 세월이 호치키스와 테이프로 남다니.
우리 둘만 남았어. 너하고 나.
우리는 거실에서 게임을 했지. 넌 장신구를 만들었어. 목도리는 끝도 없이 길어졌어. 우리는 공원을 산책했지. 우리 위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천장처럼 우리를 찍어누르는 것.
"상상을 멈추고 싶다니까요. 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만, 그것만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층 사이에 낀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빠가 죽어간다는 상상은 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아빠가 건물 밖으로 기어 내려오려고 애쓰는 모습을 상상할 필요도 없을 거고요. 폴란드 사이트에서 어떤 사람이 그러고 있는 동영상을 봤어요. 아니면 식탁보를 낙하산 대신으로 쓴다든가 말이에요. '세계의 창'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몇몇이 진짜로 그랬던 것처럼요. 죽는 방법도 가지가지였어요. 전 아빠가 그중 어떤 식으로 돌아가셨는지 알아야 한다고요.
그 애가 너에 대해 알아내려고 애쓰는 동안, 난 그 애에 대해 알아내려고 애썼어, 그 애는 너를 찾으려 하고 있었어. 네가 나를 찾으려 했던 것과 똑같이 말이야, 그 생각을 하면 이미 조각났던 내 마음이 더 작은 조각들로 산산이 부서졌어, 왜 사람들은 자기가 전하려는 뜻을 그 순간에 말할 수 없을까?
그날 밤 네 어머니와 난 내가 돌아온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을 나누었어, 마지막 같지가 않았어, 난 애나에게 마지막으로 키스한 적이 있고, 우리 부모님을 마지막으로 보았고, 마지막으로 얘기를 했지, 왜 모든 것을 마지막처럼 대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까, 가장 한스러운 것은 미래를 너무 많이 믿었다는 거야,
하지만 아빠가 나를 마지막으로 껴안아 주었을 때 그것이 영영 마지막인 줄 몰랐던 것처럼, 이번에도 역시 몰랐다. 절대 미리 알 수 없는 일이니까.
광대무변한 우주 대부분이 암흑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얘기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우리가 결코 볼 수도, 들을 수도, 냄새 맡을 수도, 맛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들이 깨지기 쉬운 균형을 좌우합니다. 그것이 삶 자체를 좌우합니다. 무엇이 진짜일까요? 무엇이 진짜가 아닐까요? 어쩌면 이런 질문은 하지 말아야 할, 옳지 않은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삶을 좌우할까요?
내가 삶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을 만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당신이 발명을 결코 멈추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쩌면 당신은 아예 발명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언니가 몸을 옆으로 웅크렸어.
내가 말했어, 언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언니가 말했어, 내일 말해도 되잖아.
내가 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한번도 말하지 않았지.
그녀는 내 언니였어.
우리는 한 침대에서 잤어.
그 얘기를 할 기회가 한번도 없었어.
언제나 그럴 필요가 없었어.
아버지 창고의 책들이 한숨을 쉬고 있었지.
언니의 호흡을 따라 내 주위의 시트가 오르락내리락 거렸어.
언니를 깨울까도 생각했어.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어.
그날 밤만 밤이었던 건 아니니까.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겠니?
나는 몸을 모로 누이고 언니 옆에서 잠들었지.
너에게 지금까지 전하려 했던 모든 이야기의 요점은 바로 이것이란다, 오스카.
그 말은 언제나 해야 해.
사랑한다,
할머니가.
나는 침대에서 나와 내복 바람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아직도 소파에 앉아 있었다. 책을 읽지도, 음악을 듣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엄마가 말했다. "깼구나."
나는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팔을 벌리고 말했다. "무슨 일이니?"
나는 엄마에게 달려가 말했다. "난 입원하기 싫어요."
엄마는 나를 끌어당겨 내 머리를 엄마의 부드러운 어깨에 얹고 꼭 안아주었다. "넌 입원하지 않을 거야."
"곧 좋아질 거라고 약속할게요."
"넌 아무 문제 없어."
"행복한 보통 아이가 될 거예요."
엄마는 내 목 뒤를 손가락으로 감쌌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열심히 노력했어요. 아무리 해도 그보다 더 노력할 수는 없을 거예요."
"아빠도 너를 아주 자랑스러워하실 거야."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렇고말고."
9.11 사건이나, 이라크 전쟁이나, 김선일 사건이나,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이나, 성수대교 붕괴사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걸프전, 히로시마 원폭투하, 제2차 세계대전, 아우슈비츠 들을 말할때
우리는 그 사건들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 사건들이 발생하게 된 원인과 그 사건들이 있었던 그 시간과, 그 사건들로 인한 결과에 관한 논의에서
그 일을 겪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내가 겪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일을 겪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사건이 어느 누군가에게 일어났던 뉴스에나 날법한 그런 일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슬픔이라고 이야기한다.
살아간다는 건 죽은 것보다 무시무시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야하고,
그렇게 살아가면서...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인듯... 후회하지 않을만큼...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도록...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모두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너에게 말을 걸겠다.
너에게서 돌아오는 답이 다시 자리비움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너에게 다시 말을 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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